서울성모병원의 국제진료센터에는 의사 면허증을 소지한 러시아인 코디네이터가 있다. 다른 병원에서는 보통 통역이 가능한 간호사들이 코디네이터를 담당한다. 러시아에서 오는 의사들도 대부분이 한국에서 연수를 받은 후 다시 러시아로 돌아가는 사람들이다. 이 때문에 러시아인 의사 코디네이터 ‘베체슬라브 라보브카’의 행보는 눈에 띈다.
수많은 카레리나 씨들은 의사 코디네이터가 입원부터 퇴원까지 환자를 모니터해준다는 점에 끌려 라보브카 씨를 찾아온다. 의사출신인 라보브카 씨가 직접 문진을 하면서 환자에게 정확하고 경제적인 진료계획을 세워준다는 입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환자가 과잉진료 받지 않도록 진료계획 수립
어릴 때 학교에서 한국말을 배운 것이 인연이 돼 여기까지 오게 됐다는 라보브카 씨는 지난 2005년 서울성모병원에 들어왔다. 왜 그 많은 병원 중에 성모병원이었을까? 라보브카 씨는 “여러 병원을 다녀봤지만 마음으로 진료하는 병원이 바로 여기더라”며 성모병원을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생명 봉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나간다는 성모병원의 슬로건이 그의 마음에 와닿은 것으로 보였다. 그는 2002년부터 2004년까지 펠로우십을 통해 송명근 교수에게 지도를 받은 적도 있는 흉부외과 의사다.
러시아 환자가 병원을 찾을 때 라보브카 씨의 역할은 뭘까? 그는 “어느 병원이나 진료는 다 가능하지만, 의사자격을 갖춘 코디네이터로서 내 역할은 환자가 과잉 진료를 받지 않게 조정하고 비용대비 큰 효과를 볼 수 있게끔 계획을 세워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가 진료스케쥴을 잡을 때 꼭 필요한 검사만을 설정해서 신속한 검사를 제공하고 비용을 과다하게 지불하지 않도록 환자 만족에 최선을 다한다는 그의 표정에는 자부심이 서렸다.
◆환자유치 핵심은 러시아 현지와의 네트워크
성모병원이 러시아 의사까지 영입하며 러시아 환자를 유치하는데 적극적인 이유는 최근 러시아 환자의 증가율이 가파르게 상승세를 잇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과 복지부 등이 발표한 외국인환자유치현황 등에 따르면 작년 러시아 환자의 증가율이 재작년 대비 최고 167%까지 오르는 등 상승세가 가파르다. 최근 한 병원은 작년 같은 기관과 비교해 러시아 환자가 457%가 증가했고 매출액도 1500% 늘었다고 밝혔다.
라보브키 씨는 이같은 현상에 대해 “한국이 지리적으로 러시아와 매우 가까운 것도 이점이지만 무엇보다 수술 후 러시아로 돌아간 후에도 진료의 연속성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네트워크가 형성돼있다”고 말했다. 특히 성모병원의 경우는 암 환자가 한국에서 수술을 받더라도 러시아로 돌아가 항암치료를 연속해 받을 수 있도록 현지와의 의료협력이 활성화 돼있다는 설명이다.
◆문화적 배려와 비용 경쟁력 갖춰야
해마다 늘어나는 러시아 환자들이 병원에 제기하는 불만은 없을까? 라보브카 씨는 러시아 환자에 대한 문화적 배려와 흉부외과 수술 등의 가격, 이 두 가지 문제를 앞으로의 과제로 꼽았다.
그는 “러시아 환자들이 가장 애를 먹는 부분이 바로 식사문제”라고 지적했다. 병원에서 러시아 환자들을 위해 식단을 준비는 해놓지만 입맛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아 실제 이용률은 낮다는 것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러시아 환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싱가폴의 병원에서는 일식ㆍ중식ㆍ유럽식ㆍ인도식 등 다양한 메뉴를 준비해 세심한 부분까지 환자를 고려하고 있었다.
또 한가지 문제점은 흉부외과 수술 등에서 외국인 환자가 치러야 하는 비용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러시아의 심장질환자들은 이스라엘과 싱가폴 등의 나라로 의료관광을 많이 떠난다. 그곳의 장점은 의료의 질이 매우 높으면서도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환자가 이스라엘로 갈 경우 2000만원의 비용으로 심장수술을 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현재 두배 이상이 들어 앞으로 환자 수가 감소할 여지가 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라보브카 씨가 있는 국제진료센터에는 한달에 약 50여명의 러시아 환자가 다녀간다고 한다. 심장질환, 비뇨기과 질환, 암, 건강검진 등 다양한 유형의 환자들을 일일이 모니터하며 마음으로 진료하고자 최선을 다한다는 그의 행보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