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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88올림픽 방불 ‘피부과올림픽’ 일궈내

은희철 대회장 “연평도사건 등 난관 극복해 유치 성공”


88올림픽 유치를 방불케 한 ‘세계피부 올림픽’의 유치가 드디어 서울에서 개막됐다.

24일 서울코엑스에서 개막한 ‘세계피부과학술대회’의 은희철 대회장(서울의대)은 이번 대회를 유치한 것을 두고 “수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해외공관을 통한 간접적인 로비와 지역별 적극적인 호소를 통해 이뤄낸 쾌거”라며 “그간 북한의 핵실험, 연평도 사태, 일본 대지진 등의 여파가 있었지만 고되게 이겨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국제학술대회의 개최지 선정을 위한 최종 결선 투표에서 한국은 런던-로마와 치열한 경합전을 벌였고 그 결과 한국이 105표의 몰표를 받아 개최지로 선정됐다. 이는 로마 72표, 런던 26표를 크게 따돌린 결과다.

지금은 꿈이 아닌 현실이 됐지만 세계피부 올림픽으로 불리는 세계피부과학술대회를 유치하겠다는 은희철 교수의 꿈은 어제오늘 일이 아닌 지난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 당시 영국 문화원 장학생으로 옥스퍼드 근처에 있을 무렵, 은희철 교수는 세계피부과학회 이사로 일하고 있었던 윌킨스 교수의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당시 윌킨스 교수는 세계피부과 학술대회를 두고 “어떤 의사든 최소한 10년 전 자국 피부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나서기 전에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말을 잊지 않았던 은희철 교수는 2년 후 도쿄대회에서 “한국도 이 대회를 개최하겠다”는 꿈을 품었다.

이후 베를린과 뉴욕, 시드니, 파리에서 순차적으로 대회가 열리는 동안 대한피부과학회 총무로 있던 은희철 교수는 세계피부과학회 이사들을 개인적으로 만나 유치에 관한 여러 사전정보를 취득해 학회에 보고했다.

이같은 자료 수집을 바탕으로 피부과학회는 2002년 파리에서 열린 20차 세계피부과 학술대회에서 “22차 대회를 한국이 유치하겠다”며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본격적인 유치 준비에 뛰어들게 된다.

은희철 교수는 “한국이 공식적으로 출마를 선언할 당시 싱가포르와 일본은 굉장히 당황했었다”고 회상했다. 아시아 지역에서 유치할 수 있는 절호의 시기였으며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아시아 국가는 몇십 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공식 출마를 선언한 후에는 일본과 영국, 이태리가 경선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일본은 한국 피부과학회의 간곡한 호소와 부탁으로 경선 참여를 철회했으며 싱가포르도 자국 내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출마를 접었다. 이제 남은 것은 영국과 이태리였는데 그즈음 발생한 것이 바로 북한의 핵실험이었다.

이 때문에 조직위원회는 한 차례 고비를 겪게 된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국제적 신임도가 위태해져버린 것.

은희철 교수는 “많은 이들이 런던과 로마가 대결하리라고 예상했지만 우리는 세계피부과연맹에서 아프리카 나라를 돕는 프로그램에 참석하는 등 더 적극적인 시책을 들고나왔다”며 “핵실험에 개의치 않고 지속적으로 유치를 추구하고 있다는 확신감을 주었다”고 술회했다.

이후 은희철 교수는 공식적인 유치제안서를 “마치 딸자식을 보내는 심정”으로 한쪽의 오점도 없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수없이 교정을 거듭한 후 발송했으며 각국의 투표자 명단이 도착한 후에는 지역별 국가별로 분석한 후 개개인을 공략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구사했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해외공관을 통해 간접적인 로비도 이뤄졌다.

투표 이틀 전에는 투표인단을 개별적으로 접견하며 피부과의사들이 당번을 서면서까지 설득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결국 투표당일, 최종 투표결과 런던 26표, 로마 72표를 크게 따돌리고 서울은 105표로 완승을 거두며 일차투표에서 최종 개최지로 선정이 되는 순간에 이르렀다.

연평도 사태에 일본 지진까지, 가슴 쓸어내린 은 교수

그렇지만 난관은 연이어 앞을 가로막았다. 핵실험 여파에도 의연하게 대처했던 조직위원회는 학술대회의 등록일을 얼마 남기지 않고 터진 연평도 사태에 또다시 가슴을 쓸어내렸다.

게다가 일본에서 대지진이 연달아 일어나면서 우리나라와 일본의 지정학적 위치가 멀다는 점 등을 홍보하는 데 애를 먹기도 했다.

핵실험에서부터 연평도 사태, 일본 대지진까지 사태가 잇달아 터지다보니 심지어는 부스를 설치하는 업체로부터 “자국에서 한국으로의 여행이 금지되면 비용을 지불할 수 없다”는 협박 아닌 협박까지 받게 됐다. 연평도 사태가 일어난 시점은 홍보 부스의 설치를 취소할 수 없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은희철 교수는 “우리나라가 그만큼 취약하다는 걸 보여주는 반증”이라며 “정부로부터 절대적인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다사다난한 과정을 숨가쁘게 달려온 끝에 유치하게 된 세계피부과 학술대회에서 그는 경제적, 학문적 이득은 물론 세계피부과이사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대회유치를 위한 홍보에서 우리나라가 이제는 경제나 스포츠 분야 이외에 과학이나 의학에 기여할 때라고 역설했으며 우리에게도 이같은 역량이 있음을 다각도로 호소한 것이 적중했다”며 이번 학술대회를 순조롭게 마무리할 것이라고 거듭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