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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의료중재원 조정개시율 절반 이하…제역할 하나?

[기획] 불가항력 보상 등 의료계 외면, 소비자원과 업무 중복도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원장 박국수)이 설립 3주년을 맞았지만 평균 조정 개시율이 43%로 절반에도 못 미쳐 연간 예산 129억여원을 투입해 운영되는 정부 기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중재원은 의료사고의 특성을 고려해 법적 소송 전 전문적인 분쟁조정을 통해 의료 피해자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구제하고 의료인의 안정적인 진료환경을 조성한다는 목적으로 지난 2012년 4월 설립됐다.

하지만 손해배상 대불금 조항, 무과실 분만사고에 대한 보상재원을 의료기관에 떠넘기는 불가항력 의료사고 피해보상 제도 등 불합리한 제도로 인해 의료계의 큰 불만을 사며 시작부터 삐걱거리더니 예상했던 대로 의료기관의 참여가 크게 부족한 것이다.

설립 3년이 지났지만 실질적인 조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설립 취지마저 무색하게 하는 중재원의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살펴봤다. [편집자 주]


의료기관의 60% 조정 불참, 대형병원이 더 외면

지난해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기선 의원(새누리당)이 중재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 분석 결과, 중재원은 지난 2012년 개원 후 2014년 7월까지 총 3021건의 조정 신청을 접수 받았지만 이중 조정 개시가 된 것은 40.8%(1234건)에 그쳤다.

조정 개시 되지 못한 1684건 중에서는 특히 의료기관의 참여 거부 사례가 높아 ▲1298건(77.1%)으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은 ▲의료기관의 무과실 주장 363건(21.6%), ▲합의 19건(1.1%), ▲소제기 4건(0.2%) 등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많은 사람이 이용하고 난이도 높은 의료행위를 하는 대형병원일수록 조정 참여를 거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급종합병원이 599건 신청에 449건이 불참해 불참비율이 75%를 차지했고 ▲종합병원 64.8%, ▲치과병원 59.0%, ▲의원급의료기관 56.3%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중재성공률 1년에 1건, 중재기관 맞나?

어렵사리 조정이 개시돼도 1년에 1건 만이 중재 결정돼 성공률은 0.2%에 불과한 실정이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당시 보건복지위 소속이었던 김미희 전 의원은 “중재원이 개원 3년 동안 단 3건만 중재처리를 한 것으로 드러나 중재기능을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중재원은 지난 2012년 조정개시 192건 중 1건, 2013년 551건 중 1건, 2014년 637건 중 1건만을 처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원 이래 3년 동안 단 3건만을 조정해 성공률이 0.2%밖에 되지 않은 것. 이쯤되면 중재원의 필요성마저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김 의원은 “의료사고 현황 파악조차 되지 않아 책임을 다하는지 의문스럽다”면서 “이 같은 상황에서 의료사고 문제를 해결하고 사고예방대책을 세울 수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의료계 외면 핵심은 손해배상 대불금 제도·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도

의료계가 중재원의 분쟁 조정을 외면하는 핵심이유는 무엇보다 위헌 논란까지 불러일으킨 손해배상 대불금 제도와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도에 있다는 지적이다.

손해배상 대불금 제도란 의료분쟁중재원의 조정을 거쳐 손해배상금이 확정됐으나 요양기관이 배상금을 지불하지 못한 경우, 중재원이 이를 대신 지급한 뒤 나중에 해당 요양기관으로부터 돌려받는 제도다.

중재원은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금 재원으로 31억 4357만원을 책정했는데 이를 보건의료기관개설자가 부담토록 명시하고 건보공단이 요양기관에 지급해야 할 요양급여비용의 일부를 가져가는 방식으로 징수토록 해 의료기관들의 불만을 샀다.

사실 손해배상 대불금 제도는 이미 지난해 4월 25일 헌법재판소로부터 합헌 결정이 난 상태. 헌재는 당시 “의료기관 개설자에게 대불금 재원을 분담토록 한 의료분쟁조정법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헌재는 “대불금은 의료분쟁제도 시행 초기 재원 적립에 우선적 목표가 있고 이후 추가로 징수할 비용은 결손을 보충하는 정도에 불과해 의료기관들이 초기에 지불하는 수준으로 정기적·장기적으로 징수할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위임 필요성과 예측가능성이 모두 인정되어 분담 금액과 납부방법 및 관리 등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는 해당 조항이 포괄위임입법금지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손해배상 대불금 제도가 합헌 결정이 났지만 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이 깊은 의료기관의 참여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히 어려운 일. 대불금 중 집행된 금액도 극히 저조한 실정이다.

문정림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감에서 “불합리한 손해배상금 대불금 제도를 전면 재검토해야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중재원의 비효율적 운영을 지적했다.

당시 문 의원이 중재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6월말 기준 손해배상금 대불금 32억 398만원 중 0.14%인 4629만원만 집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그는 ”집행금액이 0.14%에 불과한 손해배상 대불금제도가 계속 운영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라면서 ”사업연도 총 매출액의 2%를 매해 적립하는 손해배상준비금 제도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의료인이 충분히 주의의무를 다해 과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불가항력으로 인한 분만사고 피해액의 30%를 보상하게 하는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 제도도 의료기관들이 중재원을 외면하게 하는 큰 이유다.

중재원은 분만 실적이 있는 의료기관에 한해 이미 지난 3월 2일부터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보상재원 분담금’을 미납한 산부인과 232곳을 대상으로 강제적으로 징수를 시작한 상태.

이에 대한 의료계의 불만은 매우 크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관계자는 “최고 3천만원 범위 내에서 의료사고 피해를 보상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뇌성마비나 기형아 출산 등은 말 그대로 불가항력에 의한 것인데 이를 의료기관에서 보상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하는 한편 “이는 3천만원 갖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소비자원과 업무중복…조정건수 떨어지고 인력은 3배 예산은 10배

10건 중 7건의 의료분쟁을 성립하는 소비자원과의 업무 중복도 문제가 되고 있다.

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위원장 정병하) 역시 의료분쟁 조정 업무를 하고 있는데 오히려 중재원의 조정 건수가 소비자원보다 적은데 반해 인력은 소비자원의 3배이고 예산을 10배 이상 쓰고 있어 국민혈세 낭비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

지난 1월 소비자원에 따르면 소비자원에 접수된 의료분쟁 사건은 총 806건. 이중 660건의 조정이 성립됐고 405건은 의료기관의 과실이 인정됐다.

특히 의료기관이 조정 결정을 받아들여 종결된 360건 중 251건이 성립돼 무려 69.7%의 성립율을 자랑했다.

더욱이 소비자원에서는 3억원을 초과하는 고액 사건 조정까지 성립되고 있어 3배의 인력과 10배의 예산을 쓰는 중재원보다 더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인재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해 10월 보건복지부 국감에서 문형표 장관에게 “중재원과 소비자원의 업무가 상당 부분 중첩되는데 양립할 필요가 과연 있는지 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문 장관은 “필요하다면 검토해보겠다”라고 공감을 나타내면서도 “중재원은 피신청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조정이 개시되지 못하는 한계가 있어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료기관 참여의무 없는 중재제도 한계…그렇다고 억지로 참여 강제?

중재원의 조정에 의료기관의 불참비율이 높은 것은 무엇보다 의료기관의 참여의무가 없는 중재 제도의 한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오제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해 3월 환자 측이 분쟁 조정을 신청하면 의료기관의 동의가 없어도 조정절차를 개시하는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의료계 반응은 싸늘하다.

대한의사협회는 “강제조정보다는 불합리한 대불금 조항,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도 등 불합리한 제도 개선을 통해 의료기관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중재원, 중재 안되니 ‘감정’에 치중?

의료기관의 참여도가 워낙 낮다보니 중재원은 감정에 치중한 모습이다. 하지만 정부나 환자들은 중재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중재원 의료사고 감정단은 감정위원 99명과 자문위원 192명, 조사관 18명 등 총 309명을 두고 있다. 설립 첫해인 2012년 130건을 감정하고 2013년 493건, 2014년 822건으로 감정 건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는 상태.

특히 2012년에 6건에 불과했던 수탁 감정 건수는 2013년 117건으로 급증하더니 2014년에는 286건으로 두 배가 넘었다.

중재원은 지난 15일 개최한 3주년 세미나 주제를 아예 ‘의료분쟁 해결을 위한 감정의 역할’로 잡았다.

최근 2대 의료분쟁조정중재원장으로 취임한 박국수 원장은 이날 세미나에서 “의료분쟁은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감정에 의해서 좌우된다”고 강조하며 중재원의 역할 확대를 꾀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복지부 정영훈 의료기관정책과장은 “중재원의 본연의 임부는 조정중재로 중재원이 감정에 치중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의문이다”라는 입장을 보였다.

특히 “중재원은 조정중재에 우선적으로 힘을 쏟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며 “감정에 치우치면 의료분쟁 신청인과 피신청인을 조정중재하는 역할을 잘 못할 수 있다”고 지적함으로써 국민 혈세로 운영되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설립 취지를 돌아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