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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창간기고]무작정 상대를 비하 • 비방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올 8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선거과정에서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발언을 하는 경우 최고 당선무효까지 이르게 할 수 있는 법안을 처리하였다. 정치적 이득을 위해 수십 년간 지속되어온 영남과 호남간의 지역 간 감정대립과 호남 차별뿐 아니라 최근 특정 도시들을 비하하는 단어들이 일베 등의 커뮤니티를 통해 급속도로 전파되며 발생하는 각종 사회적 병폐를 막기 위한 의미 있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관련된 뉴스를 보면서 정치권만큼이나 의료계 역시 서로 상대방을 비방하거나 음해하는 것을 막기 위한 특별한 계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호남 갈등만큼이나 심각한 것이 의료계 내 한의와 양의의 갈등이기 때문이다.

양의와 한의의 갈등은 생각보다 오래전 우리나라 아픔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대한제국 시절 한의사 지석영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인 관립의학교의 교장을 역임하고 황실 내부 의원에 양의와 한의가 함께 진료할 만큼 대한 제국 시절까지는 갈등이 부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제의 침탈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일제가 민족혼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한의를 의생으로 격하시키면서 한의에 대한 제도권의 차별과 갈등이 시작된다. 이후 일제 36년간 일제와 양의는 서로의 공통된 목적의식 속에서 한의를 비과학, 보약장사로 치부시켜왔다.

이것은 광복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일제 잔재가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채 이루어진 대한민국 건국은 1948년 대한민국 의료법에서 한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1951년 겨우 한의사를 대한민국 의료인으로 포함시키긴 하였으나 이름 석 자만 포함되었을 뿐 실제 의료법상 업무범위에서 한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이후 대한민국 한의사의 역사는 제도권 내 잃어버린 한의사의 제 역할을 찾아가기 위한 싸움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항상 양의는 한의를 무시하고 억압해왔다. 1970년대 한의사들은 가운을 입을 수 없다고 주장한 양의의 모습은 이를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대한민국이 현대화를 이룩하는 과정 속에서 한국 문화와 한국 고유의 과학기술을 부끄러워하고 역 차별해 온 우리 사회 전반적인 모습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양의로 대표되는 서양의 발전된 문명과 비교해 볼 때 한국에서 발전해온 의학인 한의학은 무언가 촌스럽고 감춰야 할 것으로 우리도 모르게 생각되어 온 것이다.

따라서 1990년대까지 한의와 양의의 모습은 양의와 한의의 갈등이라기보다는 대한민국 사회가 양의를 대표하여 한의를 무시해왔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욱 적합하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1990년대부터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1988년 올림픽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이 자신감을 갖기 시작하고 그 동안 잊고 지냈던 ‘한국’을 다시 찾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한의사라는 집단의 회원 수가 수천에 이르면서 전문직인 의료인 중 하나의 모습으로 국민들 앞에 보여지기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시대상이 한 장으로 압축되는 대학 입시 배치표에서 한의대 입시 점수가 상승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93년, 96년 한약분쟁을 거치며 한의사와 한의대에 대한 인기가 절정에 달한다.

양의와 한의의 갈등은 이때부터 표면화된다. 양의사들로서는 무시의 대상이던 한의사가 어느새 견제해야 할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의사들 역시 양의사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한의사들에게 양의사는 내가 가지 ‘못한’ 길이 아닌 내가 가지 ‘않은’ 길일뿐이기 때문이다.

이후의 갈등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알고 있는 것들이며 창피한 일들뿐이다. 양의사들은 한약 먹으면 간이 나빠진다, 암이 퍼진다, 유산한다는 거짓말을 환자들에게 서슴없이 기계적으로 내뱉는다. 한의사라는 표현 대신 한방사라는 표현을 양의사들의 공식단체인 대한의사협회에서 쓸 정도다. 심지어 한방사라는 표현은 애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한방무당, 한무당이라는 표현까지 거침없다.

한의사들 역시 양의에 대해 항생제만 주고 수술하려고만 하다가 괜히 애꿎은 사람만 죽일 뿐이라며 양의사들을 양방백정이라고 비하하기 일쑤다.

이래서는 모두 국민들에게 부끄러울 따름이다. 이름만으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몇몇 커뮤니티나 의사들의 인식 및 언어 수준이 별 차이가 없다.

그래서 정개특위의 지역감정 발언 처벌이 상당히 흥미를 끈다. 의료계에도 이러한 논의가 필요한 지경이다.

진료과정에서 양의는 한의에 대해, 한의는 양의에 대해 언급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식적인 수준의 환자에 대한 티칭이 아니라 사실이건 말건 무작정 상대를 비하하고 보는 식의 상호비방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한의원 가면 치료해줄 수 없다, 한약 먹으면 책임 못진다는 식의 발언은 환자에게는 협박으로 다가오는 말들이다. 서양의학은 근본치료를 할 수 없다, 우선 양약부터 끊으라는 말 역시 환자들에게는 혼란스럽기만 할 뿐이다.

환자들에게는 똑같은 의사선생님들이다. 병이 나으면 더 이상 다른 병원에 갈 필요가 없다. 그래서 양의사들은 한의진료를 이용해서 병을 고친 환자는 볼 수가 없다. 한의원에서 병이 나은 환자는 그 질환으로는 양방병원에 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의사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니 서로에 대한 불신만 쌓일 수 밖에 없다.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것을 모르는 것은 의료인으로써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자신이 뭘 모르는지조차 모르면서 환자를 기만하여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원천차단 하는 것은 의사가 할 수 있는 최악의 행동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도 마찬가지다. 한의사가 의료기기를 사용하여 국민들과 양의사들에게 한의진료의 효과를 객관적으로 보여준다면 서로의 오해는 생각보다 금세 풀릴 것이다.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와 함께한 양의와 한의의 갈등은 그 시작으로 본다면 100년도 넘은 얘기지만 현재와 같은 갈등이 표면화된 시점으로만 본다면 20년도 되지 않았다. 물론 그 20년도 안되는 기간 동안 양의와 한의의 싸움은 모든 국민이 듣기만 해도 진저리 치는 수준에 이른 것이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제는 정개특위의 지역감정 발언 처벌과 같이 양의와 한의의 진료과정 중 상대직능에 대한 비방에 대한 처벌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