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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욱의 medical trivia

미로, 전정, 와우, 계단이 다 모여있는 곳은?

 

박지욱

제주시 박지욱신경과의원, 신경과 전문의

<메디컬 오디세이>저자

한미수필문학상 수상(2006, 2007)

 

 

의과대학 학생 시절에 배우는 많은 지식들 중 대부분은 그 의미도 모른채 영양가만 믿고 꿀꺽 삼킨 경우가 많았다. 그들 중 하나가 바로 귀()의 구조였다. 세월이 흘러 그 용어는 기억나긴 하지만 도대체 그 어려운 단어들의 제자리가 어딘 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그건 아마도 유난히 어려운 단어들이 많이 등장하는 까닭일 것이다.

본과 1학년 해부실습 시간에 어떤 여학생은 사체 해부 도중에 얻은 이소골(耳小骨)을 잘 보관하겠다며 휴지로 곱게 싸는 것을 보았다. 나는 상당한 혐오감을 느꼈지만 그 여학생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금도 잘 보관하고있을까? 그런 인연 때문이었는지 그 여학생은 해부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 해부병리학 교수가 되어있다(이소골을 꽤 모았을까?).

귀를 찬찬히 파고 들어가보면 상당히 문학적인 표현이 많이 나온다. 그것도 그리스어나 라틴어에서 따온 것이므로 대개는 어렵다. 하지만 그 이름의 의미와 유래를 알게 된다면 그 구조를 훨씬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內耳 즉, 속귀는 그냥 labyrinth 라 부른다. 이 단어는 迷路나 迷宮을 의미하는 라틴어 labyrinthus 에서 따온 말이다. 무슨 말인가, 혼미한()  ()? 원래 라비린토스는 고대인들이 지하나 반쯤 지하에 건설한, 방이나 통로들이 복잡하게 연결된, 그래서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가 대단히 어려운 구조물을 일컬었다. 이것을 본따서, 유럽에서는 르네상스시대이후에 높은 울타리로 갈래를 이룬 미로를 정원에다 만들었다(maze). 오늘날에는 해결되지 못한 난제를 만난 경우에 미궁에 빠졌다(be in maze)고 말한다.

 

 

 

 

 

 

 고전시대의 미로 (Nordisk familjebok(1904–1926)에서) A에서 B까지 연결되어 있을까?

 

 

 

먼 옛날 그리스 본토의 문명이 싹트기 전에 동쪽 바다 에게해Aegean Sea에는 강력한 섬나라가 있었는데 지금의 크레타섬(Creta)이다. 이 섬의 군주는 유명한 미노스Minos왕이다. 그런데 다소 복잡한 연유로 상체는 황소, 하체는 사람인 무시무시한 괴물을 얻게 되었다. 그 이름은 미노타우루스 Minotaurus ,  미노스왕의 황소이다. 그런데 이 괴물은 성질이 흉폭한데다 사람을 먹이로 삼아 주민들을 괴롭혔다. 왕은 괴물을 가두어둘 곳, 그것도 평생 다시는 나오지 못할 영원한 감금의 장소가 필요했다. 그런데 그때 미노스왕에게는 그리스-로마신화계의 에디슨이라 할 만한 다이달로스Daealus가 있었다. 다이달로스는 왕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누구던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는 복잡한 미로 즉, 라비린토스를 만들어 주었다. 왕은 기뻐하며 황소괴물을 그곳에 가두었다.

하지만 다이달로스는 미노스왕과의 불화로 아들 이카루스Icarus와 함께 미로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미노타우르스의 탄생에는 다이달로스의 몫도 있었으니 이 무슨 기구한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하여간 밀랍을 이용해 날개를 만들어 탈출하다가 그 아들이 추락하여 죽은 유명한 이야기 미로의 후일담인 셈이다.

또 하나의 후일담이 있다.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Theseus는 매년 미노타우루스의 먹이로 바쳐지는 고국의 젊은이들을 구하기 위해 자청하여 미로에 들어가 괴물을 죽이고 탈출했지만 흰 돛, 검은 돛을 잊어 아버지를 자살하게 만든다는 것도 하나 있다. 아버지의 이름이 아이기우스였기 때문에 그가 자살한 바다는 에게해가 된 것이다.

이 이야기의 후일담으로 또 하나 더 남았는데, 테세우스가 미로에 들어갈 때 실타래을 주어 미로를 탈출하게 도와준 여인은 미노스왕의 딸 아리아드네Ariadne였다. 하지만 그녀는 테세우스의 버림을 받아 어느 섬에 버려진다. 이 섬은 낙소스Naxos섬이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낙소스섬의 아리아드네>라는 작품을 남겨놓았고, 지금은 유명한 저가 CD 레이블의 이름 로 더 유명하다. 하여간 라비린토스 혹은 라비링스는 이름만큼이나 복잡한 사연을 가지고 있어 그 이름값을 하고 있는 셈이다.

 

다시 귀로 돌아가서 labyrinth , 속귀는 두 개의 기능적 부분으로 나뉘는데, 각각 cochlea vestibule 로 부른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각각 와우기관과 전정기관이라는 뜻 모를(?) 이름이 된다.

 

 

 

 

 

   속귀의 복잡한 구조 (Gray's Anatomy of the Human Body, originally published in 1918에서)

 

蝸牛 는 snail , 달팽이를 말하고 前庭은 앞 정원인데 어떤 건물이나 집의 입구에 해당하는 것을 말한다. cochlea 에서 나오는 신경은 와우신경cochear nerve, vestibule 에서 나오는 신경은 전정신경vestibular nerve으로 이 둘을 합쳐 vestibulo-cochlear nerve 라 부른다. 이것이 8번 뇌신경(cranial nerve VIII)이다.

다시 cochlea 로 돌아가서, 라틴어로 small shell 을 의미하는 cochlea는 조개라기 보다는 고동이라 보는 것이 낫겠다. 모양도 고동이나 달팽이처럼 생겼는데 왜 어려운 한자로 와우라 부르는지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달팽이이다. 달팽이 껍질모양처럼 나선형spiral으로 생긴 것을 부를 때 사용하는 단어로 helix 가 있다. 이는 그리스어로 snail or coil 을 의미한다. helix로 유명한 것은 왓슨James D. Watson과 크릭Francis Crick이중나선 double helix가 있고 위장에 산다는 헬리코박터helicobacter” 가 있다. 안보아도 꼬여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아뭏던 cochlea helix 는 참 닮은 단어인데, 필자의 예측대로  cochlea의 제일 꼭대기는  helicotrema (trema는 그리스어로 hole 을 의미)가 있다. 

앞마당 혹은 입구의 의미를 가진 vestibulum 은 특히 대롱()모양의 구조물의 입구에 잘 쓴다. V. nasalis , V. larynges, V. auris, V. oris, V. pharynges, V. glottides, V. vaginae 는 모두 어떤 통로의 입구를 의미하는 명칭들이다.

귀에 있는 전정기관은 cochlea semicircular canal의 사이에 있어 달팽이관의 입구도 되고 세 개의 반고리관semicircular canals의 입구도 된다. 하여간 내부에 saccule (동그란 주머니) utricle(길쭉한 주머니) (둘 다 라틴어로 작은 주머니라는 뜻에서 왔다.) 있다 이 주머니 안에는 평형을 잡아주는 이석 otolith (耳石)이 들어있으니 어릴 때 운동회때 던지는 콩주머니같다고 보면 된다. 전정에서 시작되는 신경이 하나 있는데 당연히 vestibular nerve 이다. 이 신경은 우리 몸의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하고있다.    

달팽이관은 세 개의 관이 동시에 감아 올라가는데 각각 cochleal duct, scala tympani, scala vestibuli 라 부른다. 두개의 scala에는 perilymph 가 들어있어, 그 내부에서 이리저리 흘러다니는데 이 둘은 helicotrema에서 서로 연결된다 (앞에서 나왔다).

scala는 계단이나 사다리를 의미하는 라틴어로, 영화 <프랑켄슈타인>을 유심히 본 독자라면 죽은 아내를 안고 나선형 모양의 계단을 올라가는 프랑켄슈타인박사의 뒷모습을 기억해낼 것이다. 그런 계단이 scala 일 것이다(escalator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1776년 오스트리아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통치아래에 있던 밀라노에 극장을 지었다. 이것이 유명한 오페라 극장 인데 정식 이름은 Teatro Alla Scala 계단극장이란 뜻이다. 19세기에는 쥬제페 베르디가G. Verdi, 20세기에는 아르뚜르 토스카니니A. Toscanini가 이 극장을 유명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밀라노의 라 스칼라, 런던의 로열 코벤트 가든, 뉴욕의 메트로폴리탄은 가장 유명한 오페라 극장이다. 지금은 멀티플랙스의 홍수 속에 쓸려나가버린 추억속의 스카라극장들은 이 이름을 빌린 것은 아닐까?

  라 스칼라가 지어지기 전인 16세기에 밀라노에서 멀지않은 파도바에는 파도바대학Padua University이 있었다. 당대의 최고의 해부학자들이 이곳에 있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이가 바로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였다. 이곳에 1594년에 해부학 강의를 위한 계단식 강의실이 세계 최초로 건설되었는데 이름하여 Teator anatomica!. 구조가 라 스칼라와 유사해보인다. 이후 각국에서는 파두아의 계단식 강의실을 본떠 자신의 강의실을 만들었 다. 이 흔적은 오늘날 우리나라의 의과대학에도 분명히 남아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으신 독자들은 아마 그 계단의 앞줄에서 열심히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이었을 것이다.  

 

 

라이덴의 해부 극장(강의실), W. Swaneburg, 1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