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2 (일)

  • 구름많음동두천 20.9℃
  • 구름조금강릉 22.7℃
  • 흐림서울 21.7℃
  • 맑음대전 24.6℃
  • 맑음대구 25.7℃
  • 구름조금울산 23.8℃
  • 맑음광주 23.4℃
  • 구름조금부산 25.1℃
  • 맑음고창 23.7℃
  • 구름많음제주 23.0℃
  • 구름많음강화 21.1℃
  • 구름조금보은 22.0℃
  • 맑음금산 23.5℃
  • 구름조금강진군 24.4℃
  • 구름조금경주시 25.0℃
  • 구름조금거제 24.9℃
기상청 제공

박지욱의 medical trivia

알츠하이머 병 이야기

박지욱

제주시 박지욱신경과의원

신경과 전문의

<메디컬 오디세이>저자

한미수필문학상 수상(2006년, 2007년)

 

 

 

 

 

 

 

 

 

 지금으로부터 딱 102년 전인 1906년 11월 4, 독일의 신경학자 알로이스 알츠하이머Alois Alzheimer는 튀빙겐에서 열린 제 37차 남서독일 정신의학회에서 오늘날 우리가 알츠하이머 병으로 알고 있는 유서 깊은 질병을 최초로 보고했다. 올해로 발견 100주년을 맞은 이 질병이 겪어온 험난한 과거를 추적해 보자.”

 

  

사람이 나이가 들면 ‘노화’의 영향으로 기억력과 정신 기능이 자연스럽게 약해진다는 믿음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극단적인 노화’ 때문에 저지른 신성 모독이나 반역 행위는 면책해주자는 주장을 했고, 로마의 키케로도 ‘경솔한 노인들’이 저지른 어리석은 행동에 유감을 표했다. 하지만 당시의 평균 수명이 30세 전후라는 점을 고려해 보면 장수하여 ‘경솔한 노인’이 되기도 무척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드물게 마주치는 경솔한 노인들의 행동은 너무나도 인상적이었을까? 치매를 질병으로 인정하지 않은 의학과는 달리 법률, 정치, 문화 등 역사 기록 곳곳에 치매 환자들에 대한 다양한 관심이 등장한다. 특히 문학 작품 속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걸리버 여행기> 3부에 등장하는 죽지 않는 노인 ‘스트럴드블러그Struldbrug’일 것이다. 자신도 역시 치매를 앓다가 죽은 조나단 스위프트가 묘사한 스트럴드블러그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만나는 치매 환자들과 흡사하다. 마치 스위프트가 치매 환자를 보고 쓴 것처럼 생생하게 말이다.

 

…그들은 고집이 세고 걸핏하면 투정을 부리는 데다 탐욕스럽고 까다로우며 허영심은 물론 말도 많다…청장년 시절에 터득하고 관찰했던 그 어떤 것도 기억하지 못했으며 기억한다 해도 불완전하기 그지 없었다…그들은 대화할 때 일반 사물, 사람들, 가장 가까운 친지들 이름조차 기억해 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러한 증상들이 노인이라 부를 수 없는 젊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자 비로소 의사들은 난감해지기 시작했다. 1801년에 프랑스의 피넬Philippe Pinel(1745~1826)은 이러한 정신 기능의 지리멸렬incoherence과 사회와의 교신 불통unconnected상태를 디망스demence 라고 명명하고 노화과정에서 오는 일반적인 노쇠 현상과는 분명한 선을 그어 구별하였다.

 

피넬의 수제자 에스키롤  Jean-Etienne-Dominique Esquirol (1772~1840) 1838년에 오늘날의 관찰과 크게 다르지 않은 치매 환자들의 증상들을 낱낱이 소개했다. 아울러 morosis(그리스어), oblivido(라틴어), dementia, dotage(중세영어), demence(프랑스어), faucity(18세기 영어) 라고 불려오던 망각 증상들을 일괄적으로 노인성 치매senile dementia라고 못박았다.

 

1901 11월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의 정신병원에는 치매 증상을 보인 아우구스테 디Auguste D 라는 이름을 가진 51세의 여성이 입원하였다. 담당 의사인 알츠하이머는 이 여인의 증상을 관찰하여 발병 원인을 찾기 위해 당시까지 알려진 모든 신경 질환들에 환자의 증상을 비추어 보았다. 정신분열병도, 간질도, 매독도 아니었다. 파킨슨병, 프리드리히 운동실조, 헌팅턴 무도병, 코르사코프 증후군도 그 무엇도 환자의 병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1903년 알츠하이머는 프랑크푸르트에 환자를 남겨둔 채 뮌헨으로 가서 독일 정신 의학계의 거두 크레펠린Emil Kraepelin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크레펠린의 연구소에는 저명한 신경학자이자 옛 동료인 인 니슬Franz Nissl니도 있었다. 알츠하이머와는 절친했던 니슬은 프랑크푸르트 시절부터 알츠하이머와 신경 병리조직학 연구를 공동으로 진행한 적이 있었고 알츠하이머의 병리 연구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었다.

 

 

아우구스테디 Auguste D

 

1906년 봄 아우구스테 디가 사망하자 그녀의 병력 기록과 뇌는 열차를 타고 뮌헨으로 보내졌다. 알츠하이머는 직접 그녀의 뇌를 열어 신경 병리학적인 연구를 시작하여 환자의 뇌에서 피질의 위축과 함께 plaque, neurofibray tangle, 그리고 arteriosclerotic change 을 발견했다. 알츠하이머는 환자가 보인 치매 증상의 원인이 바로 뇌에서 발견된 이상 소견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이러한 증상이 노인이 아닌 젊은 환자에게 생겼다는 점을 강조하여 1906년 학회에 보고하였다. 하지만 동료 의사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하지만 1910년에 크레펠린은 독일 정신의학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자신의 저서 <정신 의학 개론>를 통하여 알츠하이머가 발견한 새로운 질병을 “알츠하이머 병”으로 불러야 한다며 알츠하이머 병을 공인해 주었다. 하지만 당대의 많은 학자들은 크레펠린의 공인에 대해 의문을 달았다.

 

알츠하이머가 보고한 병리 소견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던 것들이었고, 그것들이 치매와 관련되어있다는 주장도 전혀 새로울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알츠하이머가 ‘젊은 나이에 발병한 노인성 치매’를 발견한 것이라는데는 이견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전혀 새로운 질병을 발견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맞는 말이었다. 알츠하이머 말고도 Fischer, Perusini, Banfiglio 등의 연구자들이 비슷한 보고들을 해왔지만 크레펠린은 왜 알츠하이머의 손만 들어준 것일까? 

 

 크레펠린은 프로이트Sigmund Freud와 함께 당대의 정신 의학을 이끌어가던 양대 산맥이었다. 비엔나의 프로이트는 정신 분석법을 통해 정신병의 원인이 마음에서 오는 것이라고 주장한 반면, 뮌헨의 크레펠린은 많은 정신병이 뇌의 이상으로  생긴다는 주장을 했다. 이러던 참에 알츠하이머가 정신 병리학적 변성과 신경 병리학적 변성 사이의 연결 고리를 제시해주었기에 크레펠린의 입장에서는 알츠하이머가 자신의 주장에 확증을 제공한 인물로 여겨겼을 것이다. 더구나 자신의 연구소에서 같이 일하던 인물이 아닌가?

 

아울러 프라하에서 호시탐탐 자신의 자리를 노리고 있을 픽Alnord Pick을 견제하면서 (Fischers는 픽의 팀이었다) 자신의 연구소 이름도 드높이고, 프로이트도 견제할 목적으로 기질성 뇌 질환의 강력한 예시가 될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관심도 높이기 위해 알츠하이머 병이란 세례를 베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후로 크라펠린은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알츠하이머 병이란 용어보다는 ‘조발성 치매senium praecox’라는 말을 더 즐겨 사용했다. 이후로도 수 십 년 동안 이 질환은 ‘알츠하이머의 조발성 치매Alzheimers presenile dementia‘라는 이름으로 1950년대까지 불려왔다. 하지만 거듭되는 연구의 결과로 1970년대에 노인에게 보이는 치매 즉 senile dementia 와 알츠하이머의 조발성 치매 presenile dementia는 결국 같은 질병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두 개의 병을 구분해 왔던 ‘나이’라는 특성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

 

질병을 발견했을 당시에는 환자가 희귀병에 지나지 않았던 이 질병은 20세기 말이 되자 폭발적인 증가를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의사들 조차 preseniel vs senoe dementia를 혼동스러워 할 때, 이 질병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이 생겨난 계기가 있었다. 1994년에 미국의 전직 대통령 레이건이 자신이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사실을 알렸기 때문이다. 이미 모친과 형이 이병을 앓았던 레이건의 ‘사소한 건망증’은 재임 말기에는 널리 알려졌는데, 그가 재임 말기에 주치의와 나눈 대화는 대통령의 건망증이 어느 정도였던 지를 보여준다.

 

 

“오늘 선생께 들려줄 말이 세 가지가 있소. 하나는 내 기억력에 약간의 문제가 있다는 것이고,… 나머지 두 개는 영 기억이 안 나는군.

 

 

레이건은 퇴임 3년 후에 자신의 발병을 시인했고 10년간 투병한 후 2004 6월에 사망했다. 대통령의 발병과 그 시인은 미국인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인들까지 알츠하이머병에 대해 관심을 갖게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상에서 잊혀진 알츠하이머병은 레이건을 통해 이제는 대중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유명한 질병이 되었다.

 

알츠하이머는 이후로 치매에 대한 증례를 하나 더 추가했을 뿐, 자신의 이름이 붙은 질병에 대해서 뚜렷한 성과를 더 이상은 남기지는 못했다. 말년에 고향으로 돌아가던 열차 안에서 쓰러졌고, 아우구스테 디 부인이 자신의 환자가 되었던 그 나이 51세에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왼쪽부터

크레펠린 Emil Kraepelin(1856~1926)

알츠하이머 Alosis Alzheimer(1864~1915)

니슬 Franz Nissl(1860~1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