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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욱의 medical trivia

마취의 역사 (1); 우연과 필연의 새벽


“아름다운 꿈은 실현되었다. 수술은 이제 고통 없이 이루어질 수 있다.

-         디펜바흐(Johann Friedrich Dieffenbach; 1794~1847), 19세기 외과의사.

 

마취(痲醉)약물로 일정 시간 의식이나 감각을 사라지게 하여 강한 자극에도 반응할 수 없게 만드는 의료 기술이다. 1846년에 미국의 의사이자 작가인 올리버 웬들 홈스(Oliver Wendell Holmes; 1809–1894)는 감각을 뜻하는 그리스어 ‘esthesia’ 에 부정형 접두사인 ‘an’ 을 결합해 우리 말로 마취에 해당하는 단어를 만들었다. 우리말 마취는 감각을 마비(痲痺)시키기 위해 환자를 약에 취() 하게 한다는 의미가 숨어있다.

물론 그전에 마취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현대적인 마취는 19세기 중반에 미국인의 손으로발명되었다. 그만큼 마취에 대한 미국인의 자부심은 매우 크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한번 알아보자.  

 

마취의 시작

마취란 이름은 19세기에 지어졌지만 그전까지 마취를 안했다는 말은 아니다. 인간은 역사 시대 이전부터 마취법을 알았고, 마취법을 이용해 수술도 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마취를 했을까?

동양의 고전 『삼국지』에는 몸에 박힌 독화살을 화타(華陀)가 빼내는 수술을 할 때 마취도 안 한 관우가 태연히 바둑을 두었다는 놀라운 이야기가 나온다. 모든 사람들이 다 관우같이 참을성이 크다면 굳이 마취할 필요도 없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성서의 창세기에 하느님은 아담을 잠들게 한다음 갈빗대 하나를 빼내어서 이브를 만든 이야기가 나온다. 사실 여부를 떠나 그것은 전신 마취에 관한 이야기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것을 흉내내기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느님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멀쩡한 사람을 그냥 재울 수 있을까?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잠들지 않는다. 특히 아드레날린이 엄청나게 분비된 상태 즉, 몸시 흥분된 상태에서는 더더구나 그렇다. 하는 수 없이 뒷통수라도 때려 기절을 시킨 후 수술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자체도 몹시 위험한 일이다. 그때 등장한 것이 약초다.  

경험을 통해 일부 식물들이 보이는 진정 효과를 알았고, 진정 식물을 쓰면 심하게 졸리는 탓에 왠만한 통증도 견딜 수 있었다. 아편, 상추, 사리풀, 맨드레이크, 오디, , 등등이 대표적인 식물들이었다(상추 먹으면 졸린다는 말은 역사적인 근거가 있다). 네로 황제의 군의관으로 활약했으며 약초학의 대가였던 디오스코리데스(Pedanius Dioscorides; 40~90)는 다양한 진정 효과를 내는 식물들을 이용한 마취법을 잘 정리했다. 만약 이런 식물을 구할 수 없다면, 어느 문화권에나 존재하는 인류 보편의 음료수, 술을 썼다.

 

 

아산화질소의 등장

 

 (웃음가스의) 냄새를 처음 맡는 순간 온몸이 따뜻해지면서 동시에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행복으로 가득한 나라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느껴졌고, 내가 의식적으로 하고자 했던 것은 나를 보는 모든 이들에게 웃음으로 대답하는 것뿐이었다.

-         콜러지(Samuel Taylor Coleridge; 1772~1834), 시인이자 철학자.   

 

중세를 거치면서도 수술장의 모습은 고대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환자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 다음, 건장한 장정들 서너 명이 환자를 붙잡는 사이에 외과 의사들은 순식간에 환자의 몸을 째고 팔다리를 잘라야 했다. 그래서 외과 의사들에겐 일반인들보다 담대하고, 재빠른 손놀림이 필수였다. 환자들의 고통스러운 비명과 피와 살이 튀는 수술장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며 환자를 살려내야 했으니까. 이런 살벌한 풍경이 조금씩 바뀐 것은 18세기였다. 공기의 성질을 연구한 화학자들이 생각지도 않게 마취의 새벽을 열었다.

영국의 화학자 프리스틀리(Joseph Priestley) 1772년에 ‘아산화질소(N2O)’를 발견했다고 한다(발견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1798년에 영국의 베도스(Thomas Beddoes; 1760~1808)는 흡입 마취제에 관심을 갖고 브리스톨에 <기체 의학 연구소(Pneumatic Medical Institute)>를 세웠는데 초대 소장으로 이제 약관의 데이비(Sir Humphrey Davy; 1778~1829)를 앉혔다. 이곳에서 데이비는 아산화질소의 마취 효과를 연구했다.

 

 

데이비는 자신은 물론이고 콜러지(Samuel Taylor Coleridge; 1772~1834, 시인이자 철학자)같은 친구들에게도 아산화질소 가스를 마시게 해서 그 효과를 연구했다. 1800년에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아산화질소 가스를 들이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두통과 치통이 사라지는 효과가 있다며 의사들은 수술 통증을 예방하기 위한 마취 가스로 사용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최초의비식물성 흡입 마취제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마취 효과보다는기분이 좋아지는 효과에 주목했고, 통증이 없어도 기분이 좋아지라고 가스를 들이마셨다. 사람들에겐 아산화질소는 유흥용인 ‘웃음 가스(笑氣; laughing gas)’로 불렀다.

정작에 의사들의 관심을 크게 끌지 못했지만, 웃음 가스는 대중을 사로잡았다. 근엄하게 앉아있던 신사도 숙녀도 가스를 마시기만 하면 실실 웃기 시작했고 곧 웃음보가 터져 나왔다. 그 모습에 사람들은 도 웃고, 이렇게 모두들 흥이 나서 웃고 떠들며 노는 것이 대유행이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에 대한 우려가 드높아지면서 웃음가스 파티는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런 장면은 최근에 우리에게도 눈에 익은 풍경이다. ‘해피 벌룬’ 혹은 ‘마약 풍선’으로 알려진 이 것, 바로 그 성분이 바로 이 아산화질소다. 아산화질소가 사람을 기분좋게 만드는 원리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다.

 



에테르의 등장

 

“신사 여러분, 이것은 속임수가 아닙니다.

-         웨렌(John C Warren; 1778~1856), 최초로 마취 수술을 집도한 외과 외과의사.

 

아산화질소 뿐만 아니라 ‘에테르(ether)’도 들이마시면 비슷한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에테르 돌려 마시기도 덩달아 유행했다. 곳곳에서 에테르 파티나 웃음 가스 파티가 열렸고, 처음에는 낄낄거리고 웃다가 나중에는 난장판이 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러던 중 미국 조지아 주에서 일하던 의사 (Crawford W Long; 1815~1878)은 에테르를 마신 사람이 심하게 다쳤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아픈 내색을 않아는 것을 보았다. 롱은 이 현상을 신기하게 여겼고, 에테르를 이용해 무통(無痛) 수술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1842년 봄에 롱은 환자의 에테르를 적신 수건을 환자의 코에 대어 들이마시게 한 다음(범죄나 스파이 영화에서 많이 보는 장면이다), 조심스럽게 환자의 목에 난 혹을 잘라냈다. 놀랍게도, 아니 예상대로 환자는 전혀 아픈 줄 몰랐다. 역사상 처음으로 ‘기체를 이용한 무통 외과 수술’이 성공했다. 이후로 7년 동안 롱은 매년 환자 한두 명에게 에테르 무통 수술의 은총을 베풀었지만 세상에 널리 알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혼자만의 비법으로만 알고 지냈다.

한편, 1844년에 코네티컷에서 일하던 치과의사 웰스(Horace Wells; 1815~1848)는 웃음 가스 파티에 갔다가 자신이 심하게 다리를 다쳤다. 하지만 가스에 취한 상태라 아픈 줄을 전혀 몰랐다. 웰스도 이를 신기하다 여겨, 자신이 직접 그 효과를 체험해보기로 결심했다. 자신이 환자가 되어 직접 가스를 마시고, 동료가 자신의 이를 뽑게했다. 정말 하나도 안 아팠다. ‘최초의 무통 발치 시술에 성공한 것이다.

 


웰스는 이후 15명에게 무통 발치를 시도해서 그 효과를 입증했고 그의 치과 의원은 몰려드는 환자들 때문에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하지만 웰스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더 큰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당시 미국 의학의 수도인 보스턴으로 갔다. 1845 2월의 일이다.

보스턴에서 웰스는 과거의 동업자 겸 후배 치과의사인 모튼(William TG Morton; 1819~1868)를 찾아갔다. 웰스는 하버드대학의 의사들과 인맥이 두터운 모튼을 통해 자신의 마취 효과를 널리 알려줄 권위있는 외과의사를 접촉하려 했다. 모턴은 하버드대학 부속병원인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assachusetts General Hospital; MGH)의 외과과장인 웨렌(John C Warren; 1778~1856)을 소개해주었다.

 


웨렌은 학생들과 의사들이 보는 앞에서 웰스가 무통 발치를 시연하도록 주선해주었고, 속임수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현장에서 학생 자원자를 받기로 했다. 웰스는 그렇게 했다. 하지만 아산화질소를 너무 적게 쓰는 바람에 발치 도중 학생이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고, 당황한 웰스는 달아나고 말았다. 이 한 번의 실패로 웰스의 삶은 내리막길이었다. 이 실패로 그는 다시 재기하지 못하고 절망의 수렁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한편 이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중계자 모튼은 웰스를 찾아가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고, 그때부터 마취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안면이 있는 화학자 잭슨(Charles T Jackson; 1805~1880)으로부터 에테르도 아산화질소처럼 마취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스스로 에테르 무통 발치술을 개발했다. 그렇게 반년이 지나 이번에는 자신이 직접 워렌을 찾아갔다. 

 


1846 10 16, 두번째 공개 마취 시연이 있었다. 이번에는 모튼이 데려온 환자가 숨죽이며 지켜보는 관중들 한 가운데에 누웠다. 모튼은 자신이 직접 발명한 마취가스를레테온(Letheon)’이라 불렀고 그것으로 마취를 했다. 환자는 잠이 들었고 워렌은 환자의 턱에 있는 혈관종을 잘라내는 수술을 했다. 물론 아무런 통증 없이. 이렇게 마취학의 역사에 새 장이 쓰여졌다.

모튼의 성공은 11월에 학회지에 보고되었고, 보스턴은 마취의 고향이 되었다. 이 해에 보스턴의 유명한 의사이자 작가인 홈스가 마취란 용어를 만든 것도 우연이 아니다.

보스턴의 성공은 곧 런던으로 전해져 12월 말에 유니버시티 컬리지의 리스턴(Robert Liston; 1794~1847)은 에테르로 마취한 환자의 다리를 절단 수술에 성공했다.

 

신화와 마취

에테르(Ether)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의 이름인 아이테르(Aither)에서 왔다. 신화에는 어둠의 신 에레보스(Erebos) 와 밤의 여신 뉙스(Nyx) 사이에서 대기의 여신 아이테르가 태어났다고 한다. 라틴어로는 에테르(Aether)로 높은 하늘이나 그곳에 있는 맑은 공기를 말한다. 물리학에서는 나아가 우주를 가득 채운 물질, 빛을 전달하는 가상의 매질을 뜻하기도 했다.  

레테온(Letheon)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망각의 강 레테(lethe)에서 왔다. 신화에 의하면 사람들이 죽으면 뱃사공 카론이 노를 젓는 스튁스(Styx) 강을 건너 지옥의 입구에 도착한다. 여기에는 레테 강이 흐르고 죽은 이들은 이 강물을 한 번씩 마시고는 전생을 완전히 잊는다. 모튼은 통증을 완전히 잊는다는 뜻으로 레테온이란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마취약(narcotic)은 그리스어 narkotikos 와 관련있다. 멍하다는 뜻이다. 이 단어는 나르키소스(narcissus)와 관련도 있는데, 자아도취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자아에 도취되건, 타인에 도취되건, 도취된다는 말은 멍한 상태란 뜻이다.

(다음 호에 계속)

출처: 디아트리트 VOL. 17 NO.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