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인천 경제특구에 이어 제주도 특별자치단체에 외국인 의료기관 설립을 허용하고 의료산업 선진화란 명분으로 영리법인 의료기관을 허용하는 것을 검토중인 가운데 대다수 중소병원들은 영리병원 도입에 무관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최근 대한개원의협의회가 성명서를 통해 영리병원에 대한 반대입장을 보인 것과는 사뭇 대조적인 것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대개협은 지난 3월 성명서를 내고 “영리병원 도입은 의료의 양극화의 중소병원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며 우려 했었다.
또한 "영리병원은 본질적으로 의료의 상업화, 고급화와 연결될 수 밖에 없어 의료자원의 양극화를 심화하는 것은 물론, 지역간 소득계층 간 의료이용도의 불평등과 자본력이 취약한 중소 병의원의 황폐화를 불러오게 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반면 많은 중소병원들은 “지금처럼 시대에 역행하는 의료 규제가 많다면 영리병원도 별 힘을 못쓸 것”이라며 “영리병원 도입에 특별히 찬성하거나 반대하지 않는다”라며 다소 미온적인 입장인 것으로 확인됐다.
오히려 중소병원들 대부분이 지금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데 영리병원이 도입된다고 해도 더 이상 입을 타격이 없다는 자조섞인 푸념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병원 도산율은 1999년 6.5%, 2000년 7.4%, 2001년 8.9%로 꾸준히 증가하다 2003년에는 결국 도산율이 두 자리 수를 기록할 정도로 사정이 악화됐으며, 또 심심치 않게 언론을 통해 경영난으로 인해 목숨을 끊는 의사들의 대한 뉴스를 들을 수 있다.
의료전문 컨설팅 업체 플러스클리닉에 따르면 개원 시즌인 3월에도 서울 수도권 신도시 및 광역시 지역 의원용 매물이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가격은 0.7% 하락했다. 하지만 낙찰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한 중소병원장은 “비급여 진료가 많은 한방병원이나 치과, 미용성형을 주로 하는 곳에서는 영리병원 도입을 반대 하겠지만 중소병원들은 더 이상 받을 피해도 없는 상황이다”고 토로했다.
즉, 지금 우리나라 중소병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현안은 ‘영리병원 도입’ 문제가 아니라 병원의 생존을 위한 돌파구를 찾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한국의료재단연합회 장종호 회장(강동가톨릭병원장)은 “국내 병원계는 갈수록 열악해지는 의료환경과 과도한 경쟁, 인건비 상승, 불확실한 노사관계 등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다”면서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언제 문을 닫는지 시가만 다들 뿐 모든 중소병원이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 회장은 “궁극적으로 개방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이처럼 규제가 많고 시대에 역행하는 현실에서 영리병원이 도입된다고 해봐야 별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 회장은 “우리 병원만 해도 한 달에 5000만원에서 1억까지 적자를 보고 있다. 이제 개인이 중소병원을 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난 것 같다. 학교나 종교단체 등 비영리단체에서나 운영해야 할 것”이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서 영리병원 도입이 난국 타개의 새 활로가 될지도 모른다며 기대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막대한 자본 앞에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며 섣부른 기대를 경계했다.
한편 경기도에서 병원을 운영중인 한 병원장은 “영리병원이 도입된다고 해도 한국에서 받은 면허로 진료를 하고 내국인에겐 당연히 보험진료를 한다면 특별히 반대할 생각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현재 줄 도산 위기를 맞고 있는 중소병원들에게 가장 시급한 정책은 영리병원 허용이 아닌, 활로를 제공해주는 정책과 지원”이라고 언급했다.
장 회장은 “과도한 의료사회주의 정책으로 중소병원을 비롯한 의료계를 다 죽여놓고 이제 와서 의료산업화 발전이라는 명분 하에 영리병원을 도입한다면 이는 의료계를 두 번 죽이는 일”이라며 “의료계에 대해 독재 아닌 독재를 일삼은 현 정부는 진정으로 의료계를 위하고 국민을 위하는 일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상훈 기자(south4@medifonews.com)
2006-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