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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비즈니스의 시대 : 우리는 어쩌다 아픈 몸을 시장에 맡기게 되었나

김현아(한림대 성심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

3분 진료, 폭증하는 검사, 필수 의료 붕괴…
자본주의와 기술 중독, 국가의 방치가 만든 익숙해진 풍경들
병원을 현명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 도대체 병원에 가면 검사 말고 하는 게 뭐냐?
병원 다니면서 생긴 불만에는 이유가 있다
 
병원에 가서 오랜 시간 대기하다가 의사 앞에 앉으면 3분 이상 이야기를 나누기 어렵다. 이 같은 현실에 붙은 이름이 ‘3분 진료’다. 그러면 환자는 병원 가서 진료 말고 무엇을 하나? 검사를 한다. 이 검사 저 검사 하다 보면 병원에서 잡아먹는 돈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최근 병원에 가본 환자라면 이런 불만을 한 번쯤 가져봤을 것이다. 

그런데 ‘의료 비즈니스의 시대’에 따르면 지금과 같은 상황의 배후에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작동하고 있다. 기본적인 의료수가가 낮아서 의사들은 더 많은 환자를 보아야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있고, 부족한 수익을 검사로 보충한다. 병원에서는 우수성이 검증되지 않는 첨단 의료 기기들을 자본의 논리에 따라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다른 한편에서 필수 의료 의사들은 오늘도 현장을 떠난다. 얼마 전 ‘조용한 사직’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는데, 우리나라 필수 의료 의사들은 오래전부터 ‘조용한 사직’ 중이었다. 

우리가 병원이나 뉴스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문제들은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의료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구조에 결함이 생기면서 나타나는 개별적인 징후이다. 이 책에서는 크게 자본 종속, 기술 중독, 병원의 과도한 수익 추구, 정부의 방치를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현재 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차근차근 진단한다. 결국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문제 해결에 가까이 가려면 일방적이고 평면적인 비난은 지양하고 문제의 배경에서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큰 틀에서 이해해야 한다. 현실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면 가장 큰 책임을 가진 주체가 보이고 지금보다는 나은 대안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 검사 공화국에서 첨단 기술 중독까지, 누가 고비용 의료 행위를 조장하는가?

김현아 교수 연구팀이 ‘BMJ open’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최저임금 대비 진찰료가 낮고, 그에 반해 검사료 수준은 높았다. 즉 낮은 진찰료를 보상받기 위해 검사 수를 늘리거나 비싼 검사를 시행하고, 불필요한 투약까지 늘리는 행태가 일반화되었다는 것이다(『경향신문』, “‘3분 진료’ 원인은 최저 수준 진찰료… 과잉 검사·투약으로도 이어져”).

고가 검사에 해당하는 영상 검사들을 보면 그러한 현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진찰료와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뇌 컴퓨터 단층 촬영(CT) 검사 수가는 8.6배인데, 이 비율이 미국의 경우 2.1배, 프랑스 5.8배, 캐나다 3.9배이다. 진찰료와 검사비 차이가 너무 심하다. 이걸 보면 우리나라의 CT 촬영 건수가 인구 대비 OECD 최고 수준인 이유를 알 수 있다. 진료에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다 보니 진료 시간만으로 의사는 환자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고, 부실한 진료를 각종 검사가 대신하고 있다.

그 외에 병원은 다양한 방식으로 환자들을 고비용 의료로 몰아가고 있다. 이 책에서는 로봇 수술과 인공지능 왓슨을 사례로 들면서 첨단 기술이 어떻게 대세가 되어가는지 보여준다. 여러 연구 결과를 보면 로봇 복강경 수술이 기존의 복강경 수술에 비해 의학적으로 뚜렷하게 우수하지 않다. 그런데 기존 복강경 수술 수가는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의료기기 회사와 병원은 열 배까지 수술비를 더 받을 수 있는 로봇 수술을 공격적으로 홍보하고, 로봇 수술의 비율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 

왓슨 인공지능은 암 진단에 탁월하다고 홍보됐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하지만 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병원이라는, 왓슨의 후광효과를 이용한 마케팅은 환자들을 현혹한다. 이들은 단순히 병원이 과도하게 이윤을 추구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 같지만 상황은 더 복잡하다. 병원 입장에서는 정상적인 방식으로 운영해서는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다고 항변한다. 정부에서는 의료수가를 통제하는 대가로 병원들의 이러한 행태를 방치한다.

■ 의사들은 뭐 하고 정부는 뭐 했나? 환자들은 알 수 없는 병원 돌아가는 이야기

상황이 이렇다면 환자들은 이 지경이 되도록 의사는 뭐 했는지, 정부는 뭐 했는지 묻고 싶을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의 의사들은 봉직의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자신의 수입을 병원의 처분에 맡겨야 하는 입장이 되는 의사가 대다수인데, 이 경우 ‘진료 활성화’를 부르짖는 병원의 의지를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더 많은 환자를 보고 더 많이 자신을 착취하게 된다. 물론 더 많은 환자를 보는 의사에는 보상이 따라간다. 의대 증원 정책이 발표되었을 때 특히 젊은 의사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극심했던 것은, 이미 자영업자로 무한 경쟁에 내몰려야 하는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을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코로나 유행에 대응하면서, 국민들은 우리나라 공공의료 실태를 깨달았다. 의료 접근성 면에서 세계 최고라고 자부했지만, 정작 공공의료 부분에서는 우리나라가 선진국 수준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공공의료원이 적자를 면치 못한다는 뉴스를 자주 만나는데, 이는 공공의료원의 운영 취지를 생각했을 때 당연한 일이다. 요새는 버스도 잘 다니지 않는 곳에 공공의료원을 이전해 공공의료원을 이용해야 할 취약 계층이 방문하기 더 어려운 경우가 많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4조 원을 들여 공공의료 기관을 선진국 수준인 30퍼센트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도 세웠지만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건강보험료를 올리려는 움직임이 극심한 조세저항에 직면하는 현실에서는 의료보험과 별도의 예산을 투여해서 공공의료를 재정비해야 하지만, 실제로 보건복지부 예산에서 사회복지 예산은 큰 폭으로 늘어나는 동안 보건의료 예산은 제자리걸음이었다. 

■ 날카로운 분석과 인문학적 통찰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다

저자인 김현아 교수가 이 책에서 비판하는 대상은 그야말로 전방위적이다. 자본에 종속된 병원, 수익에 눈이 먼 제약회사 및 의료 기업, 전문성을 잃어가는 의사, 왜곡된 시스템을 방치하는 정부, 병의 경중과 상관없이 큰 병원만 선호하는 환자 등 의료 시스템과 관련된 거의 모든 주체를 포괄한다. 모두 나름의 입장과 논리는 있다. 하지만 각자의 입장만 앞세우다가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시스템으로 고착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큰 틀에서 문제를 살펴보아야 제대로 된 해결책에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의료가 무엇인지, 의학이 추구해야 하는 바가 무엇인지 질문해야만 답할 수 있는 문제도 있다. 의학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삶이 끝나가도 병원에 가면 해결책이 있으리라 믿게 되었고, 죽음을 피할 수 있고 피해야만 하는 재앙으로 여긴다. 

이 책에서는 “죽음에 대한 철학이 없어진 현대인들을 포섭한 신흥 종교는 의료 산업이다. 병원은 신전이고 교리는 자본주의이다”라고 말한다. 완벽한 건강 상태에 대한 무의미한 집착이 자리 잡으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장애나 질병과 함께 잘 살아볼 수 있는 가능성도 줄어들고 있다. 그 결과 현대인들은 ‘조기 진단’, ‘조기 치료’의 구호 아래 수많은 검사들을 행하고 의미도 알 수 없는 수많은 이상 소견 속에서 걱정하다가 길을 잃고 헤매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죽음과 질병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고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다시 생각해야만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병원에 다니면서 불만이 쌓인 환자들이 많을 것이다.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제대로 파악한다면 병원을 현명하게 이용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주영수 국립중앙의료원 원장이 추천사에서 말한 것처럼, 이 책을 통해 “의료인들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자신이 처해 있는 의료 환경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