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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준비없는 의대정원 증원, 환자안전 위협한다”

세계의사회 박정율 차기회장 인터뷰 ②


의대정원 증원과 비상진료체계 전환 계획이 준비 없이 추진되면, 환자 안전과 의료 질이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있다고 세계의사회 박정율 차기회장이 경고했다. 

박정율 차기회장은 대한의사협회 출입기자단과의 인터뷰에서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는 것보다, 교육과 수련 시스템을 먼저 갖춰야 한다”며, 과도한 근무와 번아웃에 시달리는 전공의들을 ‘갈아 넣는’ 현재 대응을 구조적 문제로 지적했다. 

또 박 차기회장은 2026년을 한국 의료계가 국제 기준에 맞춰 회복과 재건을 시작해야 하는 ‘원년’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의사회는 여러차례 성명을 통해 “준비없는 급격한 의대증원은 의학교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환자 안전을 위협한다”고 경고했습니다. 현재 한국 정부가 추진 중인 교육 과정 단축이나 비상진료체계(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 등)가 WMA가 규정하는 ‘글로벌 스탠다드’ 의학교육 및 수련기준에 부합한다고 보시는지요?

적정 의사 수 확보와 배출 관련 문제는 한국만의 과제가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여러 선진국에서도 공통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다만 증원에 논의에 앞서서 우선적으로 전제돼야 하는 것은 해당 국가의 의료 수준이나 요구도뿐 아니라 국제적 인증에 부합하는 의료인을 양성할 수 있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교육·수련 인프라가 먼저 갖춰져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즉, 의과대학 교육과 수련기관의 질과 시스템, 이를 평가하고 지속적으로 관리·감독할 수 있는 체계가 선행되고 지속적으로 병행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마련돼야만 의사 수 확대 (혹은 축소)가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인구를 기준으로 환자들의 안전과 의료의 질 저하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의료의 질적 하락은 증원 그 자체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이며, 한 번 무너지면 단기간에 회복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급격한 증원으로 인한 적정 교육시스템 붕괴와 이로 인한 의료인의 질 저하와 동반되는 환자 안전 위협, 의료비 상승 등의 중대한 문제점들 역시 간과하면 안 되고 신중하고 사전에 치밀히 검토하고 대비하지 않으면 미래에 재앙이 될 수 있습니다. 

세계의사회가 일관되게 강조해 온 ‘글로벌 스탠다드’ 역시 이러한 맥락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교육 과정의 단축이나 비상 진료 체계 전환과 같은 조치는 단기적 대응책으로는 논의될 수 있겠지만, 충분한 준비와 검증없이 시행될 경우 의학교육의 질과 환자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신중한 접근과 장기간의 숙고와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인력을 늘리는 것에 매몰되기보다, 최대한 과학적인 방법으로 모든 주요 변수들을 반영하는 방식을 통해 수요를 추계해 반영하되 선진국의 경우와 같이 최소한 한 주기 의과대학 교육커리큘럼(4-6년)의 시행 후 1-2년간의 심도 있는 평가와 인구 변화나 주요 요구도를 반영하는 방식을 통해 재조정해 중장기 이정표를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이러한 준비가 선행될 때 비로소 환자 안전을 담보하는 지속가능한 의료정책이 가능해지며 이는 한국뿐 아니라 모든 국가에 적용되는 국제사회의 기본적인 원칙이기도 합니다.

◆한국 정부는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을 노동권 행사가 아닌,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한 ‘불법적인 진료 거부’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의사회는 한국의사들을 지지하는 성명을 냈는데, 세계의사회는 한국의 실정법이 규정하는 ‘불법성’보다 ‘의사의 단체행동권’이 상위 가치라고 판단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세계의사회의 지지는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집단행동 자체를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의료 정책 결정 과정에서 전문가의 자율성이 보장돼야 하며, 의사 또한 기본적 권리를 가진 주체라는 보편적 원칙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전공의들의 단체행동을 ‘환자 안전 대 의사의 권리’라는 이분법적 대립으로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의사가 과학적 근거와 전문적 판단에 따라 소신 있게 진료할 수 있는 환경 즉, 자율성이 보장될 때, 결과적으로 환자 안전과 의료의 질도 지속 가능해집니다. 즉, 두 가치는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입니다.

세계의사회가 한국 의사들의 단체행동에 대해 지지를 표명한 것은, 의사의 전문적 자율성과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국제적 윤리 원칙을 환기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계의사회는 어느 국가에서든 의사가 합법적 절차와 윤리적 기준을 지키면서 의료 환경과 근무 조건 개선을 요구할 권리가 있음을 강조해 왔습니다. 이러한 권리는 단기적인 법적 평가를 넘어, 장기적으로 환자와 사회 전체의 이익과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의 비상진료체계는 남은 의료진의 살인적인 노동 강도로 근근이 버티고 있는 실정입니다. 환자 안전과 직결되는 의사들의 ‘번아웃’ 문제에 대해, 한국정부의 ‘갈아 넣기식’ 대응을 어떻게 보십니까?

의료진들의 과도한 희생과 극심한 노동 강도에 의존해 유지되고 있는 상황은 단기적으로 의료공백을 막는 효과가 있을 수는 있지만, 의료진의 번아웃과 건강 악화를 구조적으로 방치한다는 점에서 환자안전과 의료의 질을 동시에 위협하는 매우 취약한 대응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의사회는 2017년 개정된 제네바 선언을 통해, 의사가 “환자를 돌보기 위해 자신의 건강과 웰빙을 돌보겠다”고 명시하며 의사의 건강권을 환자 안전의 전제 조건으로 분명히 했습니다. 2025년 포르투 총회에서 개정·채택된 성명서에서도, 의사의 신체적·정신적·사회적 웰빙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환자 치료의 질과 공공의 신뢰에 직결되는 핵심 요소임을 다시 한 번 강조했습니다.

이 성명서는 의사 번아웃의 주요 원인으로 인력 부족, 과도한 근무시간, 충분한 휴식 없는 연속 근무, 비의료적 행정 부담, 그리고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의 인적·물적 자원 부족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의사의 웰빙에 대한 위협은 환자를 위험에 빠뜨리고, 의사-환자 관계를 훼손하며, 의료 전문직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약화시킨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한 국제적 기준에 비춰 볼 때, 충분한 인력·제도적 보완 없이 기존 의료진에게 업무를 전가하는 이른바 ‘갈아 넣기식’ 대응은 WMA가 제시하는 글로벌 스탠다드와는 거리가 멉니다. 

WMA는 안전한 최대 근무시간, 충분한 휴식, 비임상적 업무 부담 경감, 그리고 의사들이 자신의 근무 조건에 대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명확히 권고하고 있으며,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환경에서는 환자 안전 역시 보장될 수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환자 안전을 진정으로 지키기 위해서는 의료진의 헌신에만 기대는 비상 대응이 아니라, 의사의 건강과 웰빙을 제도적으로 보호하는 지속 가능한 의료 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의사의 번아웃을 구조적으로 방치하는 정책은 결코 환자 중심적일 수 없습니다. 

◆최근 USMLE(미국의사면허시험) 준비 등 해외 진출을 모색하는 전공의들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WMA 산하에는 ‘젊은 의사 네트워크(JDN)’가 활발히 운영되고 있는데, 한국의 젊은 의사들이 국제무대에서 고립되지 않고 경력을 이어가거나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WMA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이 있습니까?

최근 우리나라에서 많은 의과대학 학생들과 전공의들이 USMLE 준비 등 해외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상황 자체는, 평상시라면 개인의 경력 확장과 국제적 교류라는 측면에서 충분히 환영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배경이 현재의 의료대란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JDN(Junior Doctors Network) 회의나 모임에 참여해 보면, 전 세계의 젊은 의사들이 매우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직접 체감했습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전공의가 JDN 임원으로 선출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앞으로 더 많은 한국의 젊은 의사들이 세계의사회와 JDN 활동에 참여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세계의사회는 JDN 소속 젊은 의사들을 지원하기 위해 별도의 예산을 편성해 운영하고 있으며, 일부 국가의 경우 JDN을 위해 일정 부분의 기부금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WMA 내에서의 관계는 단기간에 형성되기보다는, 연속성과 지속성,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기여로 쌓이는 신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즉, 적극적인 참여와 JDN을 통한 헌신적인 활동 자체가 곧 국제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기반이 됩니다.

세계의사회는 특정 국가, 예를 들어 한국의 젊은 의사들만을 별도로 지정해 지원하는 구조는 현실적으로 어렵고, 지원은 기본적으로 JDN이라는 조직 단위를 중심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대한의사협회는 우리 젊은 의사들이 국제무대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올해 서울에서 개최되는 CMMAO(아시아오세아니아 의사회 연맹) 총회를 기점으로 지원을 추가할 계획입니다. 

특히 더 많은 젊은 의사가 실질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예산을 편성해 참여 비용을 지원함으로써, 아시아·오세아니아 리더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국제적 존재감을 높일 수 있는 확실한 발판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국내에서의 경험은 향후 JDN이나 WMA 본 무대에서도 우리 의사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강력한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2026년은 한국 의료계가 ‘회복’과 ‘재건’을 모색해야 하는 중요한 해입니다. 세계의사회 차기 회장으로서, 긴 싸움에 지쳐있는 14만 한국 의사 회원들에게, 그리고 여전히 의료계를 압박하고 있는 한국 정부에게 전하고 싶은 핵심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세계의사회 차기 회장으로서 예상치 못한 거센 풍랑 속에서도 전문가적 역량과 양심을 지키기 위해 헌신해 온 14만 한국의사 회원 여러분의 고귀한 노력을 전 세계 의료 공동체와 함께 지켜보고 있으며, 깊은 존경과 연대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제 2026년은 갈등을 넘어 ‘국제적 표준에 부합하는 의료 재건과 회복, 그리고 미래를 위한 의료’의 원년이 돼야 합니다. 

먼저, 국가 의료 정책의 수립은 수치와 통계를 넘어선 생명의 영역이라는 점이 무엇보다 존중돼야 합니다. 

세계의사회가 누차 강조해 왔듯, 의료 현장과 임상 전문가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직접 확인하며, 전문가의 자율성과 임상적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은 국가 의료 체계의 지속과 발전 가능성을 담보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일방적인 추진보다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적합한 법적 및 절차적 정당성을 바탕으로 하는 민주적 대화와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의료계와 진정한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전향적인 태도가 필요합니다.

또한, 우리 의료계의 진정한 회복은 기본 원칙으로 돌아가는 데서 시작됩니다. WMA는 한국 의사들이 국제무대에서 고립되지 않고 전문직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입니다. 제가 그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한국 의료가 세계적인 모범 사례로 다시금 도약할 수 있도록 글로벌 네트워크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지원하겠습니다.

의료의 본질은 환자와 의사 사이의 신뢰에 있습니다. 정부와 의료계가 상호 존중을 통해 이 신뢰를 회복할 때, 한국 의료는 다시금 세계의 정점에서 빛날 것입니다. 그 여정에 저와 세계의사회가 늘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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