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4 (화)

  • 구름많음동두천 20.9℃
  • 구름조금강릉 22.7℃
  • 흐림서울 21.7℃
  • 맑음대전 24.6℃
  • 맑음대구 25.7℃
  • 구름조금울산 23.8℃
  • 맑음광주 23.4℃
  • 구름조금부산 25.1℃
  • 맑음고창 23.7℃
  • 구름많음제주 23.0℃
  • 구름많음강화 21.1℃
  • 구름조금보은 22.0℃
  • 맑음금산 23.5℃
  • 구름조금강진군 24.4℃
  • 구름조금경주시 25.0℃
  • 구름조금거제 24.9℃
기상청 제공

오피니언

 
 
 
 
 
 
 
양 기 화(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조정실장)
 
 
 
들어가는 글
2004년 우리나라에서 전체 보건의료비 가운데 약제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7.4%로서 OECD국가의 평균치 16.7%보다 높다. 2005년 건강보험 총급여비용 24조 8천억원 가운데 약제비는  7조 2천억원으로 약 29%에 달하고 있다.[이 가운데는 총 약국 요양급여비용은 1조 9,531억원(조제료 1조 230억/의약품관리료 3,709억원/약국관리료 2,594억원/복약지도료 2,241억원/기본조제기술료 757억원)이다].
정부에서는 건강보험요양급여비 가운데 약제비의 비중을 축소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오고 있다. 적정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처방에 대한 보험급여 삭감을 강화하여 의약품의 적정사용을 유도하기 위하거나, 의약품 참조가격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요양비 가운데 약제비의 비중은 꾸준하게 증가해 왔다.
정부에서는 이와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복잡한 의약품유통과정을 개선하고자 의약품구매전용카드제도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으며, 급여제외목록(negative list) 체계로 되어 있는 현행 보험의약품 등재관리제도를 선별목록(positive list) 체계로 전환하려하고 있다.
정부에서 선별목록 제도의 도입을 예고한 이래 일부 직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이익단체를 비롯하여 시민단체까지도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으며, 다국적제약사의 이익을 챙기기 위하여 미국에서는 최근 논의가 시작된 한-미 FTA협상의 주요의제로까지 등장시키고 있다.
필자는 본고를 통하여 선별목록제도를 개괄적으로 살펴보고 동제도의 도입이 각계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고자 한다.
 
보험의약품 등재관리제도
우리나라는 현재 약의 특성이나 질환의 성격을 고려하여 가벼운 질환의 치료나, 질병의 예방목적으로 사용되는 의약품을 보험급여하지 않도록 하는 “급여제외목록(negative list)”으로 분류하고 나머지 의약품은 자동적으로 보험급여대상목록으로 정하는 <급여제외목록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이번에 도입하고자 하는 <선별목록제도>는 의약품의 임상적, 경제적 가치를 주요한 판단기준으로 하여 비용-효과적인 의약품만을 선별하여 작성한 “선별목록(positive list)”에 포함되는 의약품만 보험급여 대상으로 하는 체계이다.
현재 선별목록체계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는 오스트리아, 덴마크, 네델란드, 아일랜드, 핀란드, 스위스, 벨기에,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포르투갈,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이다. 스웨덴은 선별목록체계를 유지하다 최근 제도를 철회하였다고 한다. 급여제외목록체계를 유지하는 대표적인 국가는 영국, 일본, 독일 등이다. 특히 독일의 경우 1995년과 2001년 두 차례에 걸쳐 선별목록체계의 도입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한 바 있다.
 
정부에서 도입코자 하는 선별목록제도 시안
보건복지부에서는 7월 26일부터 9월 24일까지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한다고 발표하였다. 동 발표에 따르면 현재 보험에 등재된 22,00여개의 의약품은 새로운 방식에 따라 건보적용 대상으로 등재된 것으로 간주하되 2011년까지 단계적으로 보험적용 여부를 검토하여, 미생산약과 복합제 일반약 등 14,000품목을 정리하여 최종적으로 8,000품목을 급여목록에 남기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기존 급여대상의약품과 동일성분, 동일함량이 아닌 신약의 경우는 경제성을 평가한 다음 건강보험공단과 협상을 통하여 약가를 결정하는데, 이런 절차가 지금처럼 의무적용되지 않고 자율적인 신청에 의하여 진행된다는 것이다. 보험등재목록에 오르지 못한 약품은 비급여대상 의약품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즉, 약가를 결정하는 권한을 정부에서 가지고자 하는 것이다.
동 제도를 검토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이의경박사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2월 현재 급여대상 품목은 5,114개(미생산포함)로 조사되었다. 정부안에 따르면 국내 생산되는 의약품 가운데 보험급여대상 품목은 한 성분에 두 품목이 등재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게 된다.
 
정부의 선별목록제도 도입 배경에 대한 반론
건강보험재정에서 약제비지출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것은 질병치료가 지나치게 의약품에 의존하고 있다고 정부는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전체 보건의료비의 변화와 연계해서 비교해보면 약제비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GDP 대비 보건의료비와 보건의료비 대비 약제비는 1985년에 4.1%/32.7%, 2002년 5.3%/27.9%이다). 즉, 보건의료비의 증가에 따라 약제비가 감소되는 추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선진국과 비교하여 GDP대비 보건의료비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낮고 의료행위의 수가가 원가이하인 점 등을 고려한다면 약제비가 높은 것이 당연하다.
선별목록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국가들에서는 보건의료비가 증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약제비 역시 증가하고 있다(GDP 대비 보건의료비와 보건의료비 대비 약제비가 프랑스는 1985년에 13.8%/8.2%, 2002년에 14.5%/9.7%, 스위스는 16.2%/7.7%와 20.8%/11.2%, 이탈리아는 18%/7%와 8.5%/22.4%, 덴마크는 18%/8.7%와 8.8%/9.2%, 오스트리아는 6.6%/12.3%와 7.7%/17.1%이다).
 
건강보험재정에서 약제비지출이 지속적으로 느는 원인이 약제의 무분별한 사용이라는 정부의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 급속한 노령화에 따른 만성질환 환자의 증가와 소득수준의 향상에 의한 의료이용의 증가가 약제비 증가의 주요원인이라는 증거는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약국 급여 청구현황을 연도별로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전체진료비중 65세 이상 진료비, 65세 이상 진료비중 약국 급여, 2001년 17.7%/27.4%, 2002년 19.3%/28.7%, 2003년 21.2%/28.8%, 2004년 22.8%/30.3%, 2005년 24.4%/31.0%).
동제도의 도입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독일의 사례를 새길 필요가 있었지만 이를 무시한 인상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독일에서도 법정의료보험 외래진료에서 처방되는 의약품의 질 향상과 재정절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하여 동제도의 도입을 추진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보험계약의사협회, 약리학자, 그리고 연방정부를 구성하는 사민당과 녹색당 및 의료보험조합에서는 찬성하였지만, 동 제도가 지나치게 관료적으로 비용억제수단에 불과하며, 환자개인의 특성을 고려한 처방이 어렵게 될 뿐, 보다 효율적이고 환자에 적합한 의약품처방을 유도하지 못할 것이라는 보건경제학자, 일반국민, 환자단체, 제약업계 그리고 기민당/기사당 및 자유당의 반대에 부딪쳐 2001년 도입이 저지된 바 있다.
 
정부의 선별목록제도 도입에 대한 각계의 반응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의경박사는 연구보고서에서 동제도의 도입이 각계에 미치는 영향을 표 1과 같이 정리하였다. 비용효과적인 의약품의 사용을 촉진한다는 점을 대의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표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정부에서 약가관리의 주도권을 확보함으로써 건강보험 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과 보험의약품의 구매가 단순해짐에 따라 약계의 재고부담이 절감되는 확실한 이익을 챙길 수 있는 반면, 환자, 의사, 제약기업에 돌아갈 이익은 추상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환자, 의사, 제약기업 그리고 정부 측에 돌아가는 불이익은 명백한 반면, 약계가 안게 될 부담은 매우 추상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개별 집단의 입장에서 검토해보면, 환자의 입장에서는 질병치료에 필요한 의약품이 비급여되는 경우 비용부담이 급증하게 되어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급속하게 약화될 것이다. 특히 신약의 경우 보험급여목록에 등재되기까지는 비급여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치료기간 동안 환자들에게 커다란 부담이 될 것이다.
 
의사입장에서는 환자의 부담을 감안하여 가급적이면 보험급여가 가능한 의약품을 선택하게 되므로, 제한된 숫자의 약품목록에서 치료제를 선택할 수밖에 없어 처방권이 제한될 것이다. 또한 전문분야에 따라 선택하는 약제가 달라 전문분야 간에 갈등을 빚을 수도 있다. 특히 신약사용에 제한을 받게 됨으로써 환자진료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또 한가지 이의경박사도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2005년 2월 현재 전체 품목의 88%가 성분당 품목수가 1개 이상이고, 이 가운데 2,400품목만이 생동성을 인정받았지만, 급여품목의 71.64%가 생동성이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2006년 6월까지 생동성인정품목이 4,000품목이 넘고 있다고 하나, 위탁생산되는 품목이 대부분으로 생동성시험 통과 복제약이 없는 성분의 비중이 아직도 높은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생동성시험 통과 복제약만 남기고 위탁생산된 생동성인정 복제약은 선별목록에서 제외시켜야 할 것이다. 즉, 선별목록에 등재되는 복제약의 경우 생동성시험을 통하여 효능이 입증되어야만 할 것이다.
 
선별목록제도를 운용하고 있는 국가 가운데 급여품목이 30%에 불과한 스위스를 제외하고, 프랑스, 이탈리아, 덴마크, 오스트리아 등은 급여품목의 비율이 50~60%에 달하고 있다. 즉, 보험급여 품목과 비급여품목의 비율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에서는 선별목록 등재약품의 숫자를 8,000품목으로 줄이겠다고 한다. 품목을 줄이게 되면 보험에서 비급여된다는 이유로 시장에서 퇴출되는 품목들이 급속하게 늘어 국내유통 의약품이 급속하게 감소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결국 제약기업의 입장에서는 선별목록을 유지하기 위해서 추가적인 비용을 부담해야 하며, 개발된 신약이 선별목록에 진입할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신약개발의욕이 저하될 것이다. 다국적제약사를 비롯하여 미국 정부가 선별목록제도 도입에 반대하는 이유 역시 신약의 도입에 제약이 될 것이라는 우려때문인 것으로 사료된다.
 
정부입장에서는 선별품목등재를 위한 제약사 간의 경쟁을 통하여 약가인하를 유도하여 건강보험재정 절감효과를 달성할 가능성은 있으나, 약품의 경쟁성평가를 위한 관리비용의 증가가 예상되며, 필연적으로 비급여의약품을 사용하게 될 피보험자의 건강보험 보장성 저하에 따른 불만이 점증하는 사태에 대한 부담이 예상된다.
 
맺는 글
건강보험재정에서 약제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줄여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의료기술료를 현실화하고,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향상시키겠다는 정부의 취지는 분명 긍정적인 면이 있다. 그러나 현재 추진하고 있는 다양한 법적 장치에도 불구하고 약제비가 증가하고 있는 것은 급속한 노령화에 따른 만성질환 유병율의 증가가 결정적 요인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기본적으로 국민들의 보험료부담과 건강보험재정의 국고보조를 늘려 보건의료비를 선진국수준으로 늘리지 않으면 건강보험재정 구조의 건전화는 달성이 불가능하다. 
 
정부와 일부 직역을 제외하고는 객관적인 이익이 명확하지 않은 선별품목체계를 굳이 도입하지 않더라도 현재 비정상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생동성인정품목 위탁생산제도를 폐지하는 등 생동성시험제도를 강화하고, 생동성 시험 실시를 보험급여 등재의 요건으로 한다면 선별품목체계 도입에 가름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생동성시험제도의 강화는 인기 카피약의 생산에 기대어 난립하고 있는 제약풍토로  국제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열악한 국내 제약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