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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학승 대한전공의협의회장
 
 
개성공단 지역에 의료봉사활동을 요청 받았을 때 대한전공의협의회가 현재하고 있는 참의료진료단활동을 북한 동포들에게도 하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에 총무이사와 먼저 개성지역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하면서 그곳 사정을 파악해보기로 했다.
 
개성공단지역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1주전에 통일교육원에서 4시간 가량의 교육을 이수 받아야 하며 교육 중에는 북한지역에서 하지 말아야 할 일들과 주의 해야 할 일들을 설명해 주었고. 같은 민족이지만 적국으로 되어있는 나라로 들어간다는 생각에 약간의 흥분과 긴장을 느꼈다.
 
금요일 아침 7시 종로의 개성관리본부에서 승합차에 탔을 때 그 흥분은 더욱 더 고조됐다. 일행은 모두 7명 하지만 우리를 빼고는 모두 초행이 아닌 듯 너무나 태연했다.
 
개성까지는 불과 61킬로미터 정도 밖에 되지 않았고 차로 가면 1시간 거리였으나 그 사이에는 너무도 멀게 느껴지는 두 개의 초소가 있었다. 남측과 북측. 남측 초소를 지나 한동안 가던 중 참지 못한 나는 어디부터가 북한이냐고 물었는데 질문을 들은 운전사는 웃으며 주위를 보면 나무가 없어지는 지점부터가 북한이라고 했다.
 
실제로 북한 지역부터는 산에 나무가 한 그루도 없었고 그 모습은 개성 공단까지 이어졌다. 북측 초소를 지나고 나니 바로 거기서부터 개성공단이었다. 공단은 현재 1차로 100만평 규모였고 북측 근로자가 10000여명 남측 근로자가 1000여명 근무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주로 노동집약적 산업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북한에 도착에서는 그린닥터스병원에 짐을 풀고 곧바로 진료를 시작했다. 개성지역은 현실적으로 북한지역인 관계로 공공의료기관이 들어가기가 힘든 상황이라 민간의료기관인 그린닥터스가 들어가서 진료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상주 의사는 내과의사 한 분, 치과의사 한 분, 간호사, 그리고 부원장님으로 통하는 분 이렇게 총 4분이었고 우리가 병원에 들어갔을 때에는 마침 원장님인 내과선생님께서 1주일간 병원을 비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병원 내부는 예전에 군의관 시절에 근무했던 여건과 비슷한 정도였으며 X-ray는 있으나 다른 Lab검사는 안되었다.
 
생각했던 것과 달리 남한근로자는 남한 의사가 진료하고 북한 근로자는 북한 의사 4명이 진료한다는 말을 듣고 많이 실망하였으나 가끔 급할 때는 북한 근로자도 진료를 할 수 있다는 말에 위안을 삼고 진료를 시작했다.
 
대부분 감기 복통환자들인 환자들을 진료하고, 그 가운데 짬을 내어 북한측 근로자들이 이용하는 북한 진료소를 들어가 보았다. 북한 진료소는 남한측 병원처럼 건물을 짓지 않고, 콘테이너 박스 안에서 진료를 하고 있었는데 환자들이 바깥까지 길게 줄을 늘어서 있었다.
 
안을 잠깐 들여다 보니 탁자와 책상만을 놓고 의사 2~3명이 진료를 하고 있었다. 흔히 보던 환자 용 침대나 처치실 같은 시설은 없었고 더 이상은 자세히 보여주기를 꺼려했다. 그 이유를 묻자 부원장님의 말로는 자신들이 못사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감정 같은 것이라고 했다
 
오후 늦게 수지절단환자가 한 명 내원했다. 봉합수술이 가능한 수준인 것으로 파악되어 응급으로 서울로 후송을 시키려고 하는데 생각보다 절차가 까다로웠다. 북측군부에 보고가 되어 허가가 떨어져야 하며, 남측 군부에도 연락을 해 허가가 떨어져야 하는 시스템이다 보니 빨라야 3시간 정도 걸렸다. 다행이 낮에 일어난 일이라 그나마 빠른 편이고 새벽이라도 문제가 생기며 6~7시간은 걸린다고 했다.
 
금요일 하루 동안 20여 명의 환자를 보았는데 수지절단환자를 빼놓고는 특별한 환자가 없었으며 북측환자는 한 명도 오지 않았다. 가끔 ‘참사’라고 하는 공무원이 필요한 약을 적어와서는 달라는 수준이었다. 그린닥터스측에 따르면 그 다음주에 병원을 합칠 예정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북측 환자들을 진료하게끔 할 예정이라고 했다.
 
북한 의사측에서 도움을 청할 때가 언제냐고 물으니 첫째는 X-ray가 필요할 때라고 한다. 개성 안의 병원도 전력이 딸려 촬영이 어려울 때가 많아 가끔 촬영하러 오고, 또 가끔 의료물자가 필요해서 얻으러 올 때가 있었는데, 진료 도중에도 연탄가스중독으로 인해 산소를 필요로 하다며 산소통을 얻으러 오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약 1달 전에는 의료품을 차로 실어다 준 적이 있었는데 그 약품이 환자들에게 쓰이는지 개성으로 갔는지 알 수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주어서 도와주려고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측 환자들이 초창기에 쓰던 약봉지를 보았는데 빨래비누를 포장하던 비닐종이였다. 너무나도 의료품이 부족한 상황이고 한마디로 요약해 슬펐고 화도 났다.
 
월요일 아침 이번엔 북측 여자환자가 손바닥이 프레스기계에 찍혀서 제234수지가 절단이 되어 병원으로 급하게 왔다. 드레싱을 하고 잘려진 수지를 아이스박스에 담아서 같이 온 북한 동료에게 건네주었을 때 북한 근로자가 이해 못하겠다는 눈길로 날 쳐다보았다. 접합수술이 된다는 것을 이해하지도 못했고 그것에 설명을 할 수도 없었다. 잘려진 손을 쳐다보던 그 환자를 잊지 못할 것 같다.
 
‘악의 축’이라는 비판을 들으며 핵과 미사일로 무장한 북한. 개성 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막아 돈줄을 끊어야 된다는 의견도 많은 것으로 안다. 난 정치적인 해법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최소 사람이 주고 사는데 있어서는 인도적인 지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전쟁에서는 적군도 치료하는 것이 의사 아닌가. 하물며 같은 민족인 다음에야 더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남북한 의사들이 함께 진정한 참의료를 할 수 있고 그 가운데 전공의들이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