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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모노아이 환자에 대한 단상

서성관 인제대학교 동래백병원 안과 교수


 
 
서성관 인제대학교 동래백병원 안과 교수
 
 
모노아이 환자 수술이란 여러 가지 원인으로 두 눈 중 한쪽의 시력을 완전히 잃은 환자의 반대편, 즉, 시력이 남아있는 눈의 수술을 말한다. 그만큼 안과의사로서 가장 두렵고 긴장할 수밖에 없는 환자가 모노아이 환자라고 할 수 있겠다.
 
예부터 ‘몸이 1000냥이라면 눈이 900냥’이라 함은 우리 몸의 오감 중 무엇을 ‘본다’는 것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하물며 손자들의 재롱을 보고 싶어하는 노인들에게 눈이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990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군 전역 후 한달도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오후, 두 눈이 진행된 녹내장으로 인해 우안(右眼)은 실명상태이고 좌안(左眼)은 0.04 정도의 시력으로 매달 외래를 통해 보고 있던 63세의 할머니 한 분이 진료실로 들어오셨다.
 
할머니는 몇 일전 첫 손자를 보게 되었는데 손자의 얼굴을 알아 볼 수 없어 너무 답답하다며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겠는지, 한번만 제대로 볼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며 평생의 소원이니 제발 좀 도와달라며 애원하듯이 말씀하셨다.
 
뾰족한 방법은 없을 것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검사를 진행하였다. 검안 결과 우안은 녹내장이 너무 많이 진행되어 시력회복의 가능성이 없는 상태였으며, 좌안은 시야의 4분의 3 이상을 침범한 심한 녹내장과 심한 수정체 혼탁을 보이는 백내장의 소견을 보였다.
 
백내장 수술이 가능하기는 하나, 심한 녹내장으로 인해 시력 예후가 좋지 않을 것이 자명(自明)하였으며, 수술 중 또는 수술 후 급격한 안압 상승으로 오히려 현재의 시력보다도 못한 상태가 될 지도 모르는 모노아이 환자였다.
 
게다가 과거 급격한 안압 상승으로 치료를 받은 과거력이 있어 정상적인 백내장 수술이 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도 의문스러운 상태였다.
 
할머님께 현재 상태를 설명 드리고 다음 진료를 예약해 드렸다. 그런데 1주일도 안되어 다시 오신 할머님은 실명을 해도 좋으니 수술을 꼭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필자를 믿으니 걱정하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앞서 기술한 바대로 안과의사에게서 단안환자의 수술은 엄청난 스트레스이며 위험이 따르는 수술이다. 이런 저런 수술에 대한 위험성 및 결과에 대해 말씀 드리고 뭔가에 홀리듯 수술날짜를 잡았다.
 
허나 수술날짜가 가까워질수록 괜히 수술날짜를 잡은 것 아닌가 하는 후회와 필자를 믿고 수술을 결정한 할머니께 정말 내 자신이 그만큼의 역량이 되는가에 대한 심한 고민이 되었다.
 
결국 필자의 스승이신 허준 교수님께 환자 상태를 설명 드리고 교수님과 함께 수술실로 들어가게 되었다. 교수님의 도움 하에 심혈을 기울인 결과 오히려 수술은 걱정보다 성공적으로 쉽게 끝났고, 다음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할머님을 뵈었고 시력은 나안 0.5, 안압은 적절한 상태이었다.
 
그 후 외래를 통해 손자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 요즘 새로 사는 기분이라며 좋아하시는 할머님의 모습을 가끔 뵙는다. 그리고 오실 때마다 명의(名醫)를 만나 눈을 뜨게 되었다고 감사해 하신다. 요즘같이 라식이니 라섹이니 하며 굴절교정수술이 발달한 시대에 0.5의 시력이 뭐 대단한가 하지만 할머님에겐 삶을 새롭게 해준 수술결과였고, 필자에겐 안과의사로서 보람을 느끼게 해준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즐거운 일이었다.
 
필자는 앞으로 안과 의사로써 이런 할머니와 같은 모노아이 환자를 계속해서 보게 되고, 또 많은 번민의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 결과 또한 이번처럼 즐겁지만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고민과 스트레스가 필자를 믿고 함께하는 환자들이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만드는 내 자신에 대한 채찍이 되도록 부단히 노력하려 한다. 그것이 의사 아니 안과의사인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생각하면서.
 
마지막으로 고민하던 제자를 위해 말없이 뒤에서 수술을 봐주시고 수술 집도의 기회를 주시며 졸지에 할머니의 명의로 만들어 주신(?) 스승이신 허준 교수님께 감사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