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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새내기 인턴의 하루

김문규(가명)

“삐삐삐삐~~” 폭탄 같은 삐삐가 울어대기 시작한다. 새벽 2시. 또 응급수술이다. 왜 응급수술은 항상 한밤중에 터지는 걸까. 산부인과에서 처음 인턴생활 시작 후 매일 밤마다 생명 탄생의 장면을 목격하고 있다. 황금 복 돼지 해라 뭐라나 해서 무슨 산모들이 그렇게 많은지… 게다가 전공의 수도 적어 인턴이 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고 한다. 사실 처음 접해보는 인턴생활이라 이게 정말 다른 과에 비해 힘든지 편한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라는 것과 가운에 새겨진 ‘의사’라는 단어의 이름 값을 해야 한다는 것.
 
오전부터 수술방에서 어시스트를 해야 한다. 수술방에서 인턴은 크게 비중 있는 역할은 아니지만 빠릿 빠릿하게 제대로 도와주지 못하면 operator가 힘들어 진다. 사실 욕 얻어 먹을까 두려운거지… 점심은 김밥 한 줄로 대충 해결하고 이어서 다음 수술을 이어간다. 수술이 끝나면 환자를 침대로 옮기는 일도 인턴잡이다. 80kg가 넘는 환자들도 번쩍 들게 된다. 역시 인턴이 되면 못하는 게 없어지는구나… 하지만 수술방에서의 어리바리한 모습은 누가 봐도 새내기 인턴의 모습이다.
 
학생 실습시절이랑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은데 이젠 검사나 컨설트 의뢰 등의 오더를 직접 내려야 한다. 한번도 해본 적이 없고 전산 프로그램도 익숙치 않은 터라 하나하나가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다른 인턴들도 사정은 비슷해 서로 물어봐도 속 시원한 해결책을 찾기는 어렵다. 눈치 봐가며 용기를 내서 전공의 선배들에게 물어보지만 돌아오는 건 “나 좀 귀찮게 하지마!” 냉랭한 반응 뿐… 난 절대 저런 선배는 되지 말아야지… 다짐을 한다.
 
새내기 인턴들의 공통적인 고민거리 중의 하나가 procedure이다. 수술할 환자들의 정맥line잡기, ABGA, L-tube, blood culture 등 나름 어렵고 침습적인 일을 해야 한다. 특히 수술할 환자들에게 18gauge로 라인을 잡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얇디 얇은 혈관에 혈관보다 더 굵은 주사 바늘을 집어 넣으려니 여기저기 멍 자국이다.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결국 보고 있던 보호자가 폭발한다. “당신 초짜지!” …티가 나나 보다. 능숙한 간호사에게 부탁하고, 환자에 대한 미안함과 자괴감에 빠져 도망치듯 자리를 떠 버린다. 울고 싶어진다.ㅜㅜ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호흡곤란을 주소로 내원한 산모에게 처음으로 ABGA(동맥혈 천자)를 시도했는데 동맥을 찾지 못해 인턴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부채살 타법(바늘을 찔러 넣고 혈관을 찾을 때까지 여기저기 부채살 모양으로 찌르는, 환자는 매우 아프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방법)을 시도했다. 그러기를 수 차례 그래도 혈관은 잡히지 않고 결국 환자는 울음을 터뜨렸다. 입고 있던 수술복이 다 젖을 정도로 땀이 나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인턴이 학생 때와 다른 점은 무조건 해야 된다는 것이다. 정말 피하고 싶고 도망치고 싶지만 다시 시도할 수 밖에 없었다. 겁이 나고 환자의 남편도 무섭고…결국 수 차례 시도 끝에 성공… 환자 뿐만 아니라 나 또한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검사를 끝내고 나오는 길에 전공의 샘 왈 “너 마라톤 했냐?”
 
대충 그날의 일과가 끝나면 인턴 숙소로 돌아간다. 인턴 휴게실에는 이미 많은 인턴들이 병원에서 넣어주는 바나나를 물고 멍한 모습으로 TV를 보고 있다. 마치 사육 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나도 그 대열에 끼어든다. 다들 지쳐있고 별로 말이 없다. TV에서 ‘개그야’라는 코미디 프로가 나오고 있었다. 그 중 “뭔 말인지 알지?”라는 코너가 있다. 마치 인턴과 전공의의 모습을 풍자하는 듯 했다. 서로 잘 모르면서 전공의는 인턴에게 그것도 모르냐며 닥달하고, 인턴은 무슨 말인지 잘 이해도 못하지만 무조건 ‘네, 알겠습니다’하고 대답한다. 그리고 후회한다. ‘아~ 무슨 말인지 물어볼 걸…’ 조용하던 휴게실에 동병상련의 물결이 흘러 넘쳤다.
 
다들 눈을 붙이자 마자 잠에 곯아 떨어진다. 한방엔 6명의 인턴이 함께 쓰는데 자다보면 여기저기서 삐삐가 울리기 시작한다. 그러면 6명이 동시에 일어나 자기 삐삐를 확인한다. 이러기를 수차례… 밤 중에 콜 받고 분만실이나 수술실에 들어가면 그날은 1~2시간 정도 수면을 취하지만 그렇지 않은 나머지 사람들도 자다 깨다를 반복해 다음날 피곤한 건 마찬가지이다.
 
짜증나는 알람에 침대에서 굴러 나와 ‘이 짓을 때려쳐 말어..?’ 30초간 고민하다 꼬리를 내린다. 휘날릴 수 없는 떡진 머리로 아침 브리핑 준비하러 또 다시 전력질주를 시작한다. ‘오늘은 좀 더 나은 인턴이 될 수 있겠지’라는 기대감과 함께…
 
※ 필자의 요청으로 필자의 소속 및 실명을 밝히지 않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 바랍니다. 또한 사진은 필자와 관계없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