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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10분

예덕혜 관동의대 의학과4


                      예덕혜 관동의대 의학과4
 
 
'저스트 원 텐 미닛~내 것이 되는 시간~'
 
시간은 섭씨 22도. 아니 아침 7시 50분. 잠결에 부유하는 정신의 끄트머리를 부여잡고 열정조차 식혀버릴 수술방에 도착한 시간. 오래간만에 대면한 이른 시간만큼이나 낯선 노래가 한 켠에서 관객을 찾고 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척하려 노력하는 학생들은 레지던트들의 관심 없는 감시의 눈초리 자발적으로 느끼며 환자의 침대가 들어오는 초라한 자동문을 향하여 잠시 발걸음을 옮긴다. 오늘도 누군가의 것이 그의 것이 아닌 것이 됨과 동시에 원망과 후회를 위한 재물이 되겠구나. 내 것이, 내 것이 아닌 것이 되는 시간. 차가운 쇳덩어리에 몸을 찟겨짐에도 그들은 아직 따뜻했을 터인데. 주춤 주춤 생각을 이어가던 사이 덜컹 소리를 내며 자동문이 열리고 환자가 들어온다. 30대 초반의 여환. 창백하고 파리한 어느 정도 핏기가 가신, 손을 데어보면 조금 미지근할 것 같은 얼굴이다. 선생님들이 그렇게 조용히 서계시니까 더 무섭잖아요. 애써 웃어 보이는 그녀는 무엇이 그리 무서울까. 수술실 복도가? 병이? 자신의 몸에 상처가 나는 것이? 신체의 일부가 없어질 것이? 아니면 없어질 것과의 이별이? 침대가 덜그럭 움직이는 동안 그녀는 눈을 살포시 감고 있었다. 애써 주변을 잊어보려, 어떤 각오를 하느라, 체념의 감정을 살짝 맛보고 있거나. 잠시 졸릴 거에요. 걱정 마세요. 자고 일어나시면 끝나있을 겁니다. 마취과 선생님의 말씀은 우리의 시간과 격리되어 있는 공간으로 환자의 의식을 밀어 넣는다. 그 곳이 어떤 곳인지는 모르지만 불가피한 발걸음으로 간다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아닐 것이다. 스스로를 안심시키면서 한걸음씩 환자는 발걸음을 끌어본다. 그녀가 여성임을 지탱해주는 장기는 이제 그녀에게 단지 질병을 일으킨, 증오를 받아 마땅한 대상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여성에 대한 정체성의 절름발이로 살아갈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꿈을 꾸겠지. 하나 확실한 것은 이제 그것은 그녀의 것이 아니라는 것. 복강경 수술은 시작되고 있다.
 
언제나 자유를 갈망하고 있었다. 그간 해왔던 자신의 모든 업적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묶인 날개를 끊임없이 퍼덕거리며 푸른 하늘과 흰 깃털을 꿈꿔왔다. 오늘 작업은 순조롭다. 모든 것은 의사의 손에서 이루어진다. 차근 차근 순차를 밟고 옆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서두르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 없기에. 나팔관이라는, 그것을 그렇게도 속박해 놓던 날개는 이제 불타 끊어져버렸다. 뿌연 연기와 함께 온전치 못한 자유를 축하하는 단말마의 비명은 기계음으로 전해졌다.
 
‘삐이이이~’
 
다시 연기가 피어 오르면 어색한 자유에 몸부림치며 붉은 선혈을 뿜어 내지르는 혈관들의 입이 검게 불타오르며 가쁜 숨조차 쉴 수 없게 된다. 날아보려 반쯤 남은 양쪽 날개를 퍼덕이는 애처로움을 애도하며 향을 피워 올리듯 교수님은 차례차례 인대들을 제거하며 그것을 재촉했다. 홀로서기란 이다지도 뿌옇고, 붉고, 뜨겁고, 검은 상처를 동반하는 것이었던가. 후회할 수 없는 일이라면 축복을 하자. 그런 것이라면.
 
‘삐이이이~’
 
자궁경부가 열리고 만신창이가 된 그것은 힘든 숨으로 바깥 공기와의 첫 인상을 대신한다. 설레다. 네모난 모니터와 초록 옷과 파란 옷의 여럿 사람들. 그들이 조종하고 있는 쇳덩이들의 춤은 그것의 자유를 함께하는 양, 장단에 맞추어 발걸음을 옮겨본다.
 
‘딸그락 딸그락’
 
분주히 움직이는 쇳덩어리의 춤사위에 정신을 빼앗긴다. 얼씨구 지화자. 쇳덩이들의 애도의 눈물은 그것의 몸에 서슬 퍼런 상처만을 남긴다. 잘게 또 잘게 그렇게 해야 해. 그래야 넌 세상을 알 수 있어. 나갈 수 있어. 자유라고. 반쯤 남아있던 날개가 두 가닥이 되고 네 가닥이 되고 여덟 가닥이 되고....그렇게 춤을 추려무나. 그렇게 하나씩 덜어내고 나면 모든 것이 가벼워져 자유가 되는 거야. 조금은 첫 발걸음이 두려운 것인가. 그렇게 잘려나갔음에도 온 몸은 자궁 경부를 비틀어 막으며 자유의 유혹을 떨쳐 버리려 했다, 춤사위를 막아보려 했다. 비명은 수술실 조명아래 나지막히 울리고 있었다. ‘뚜 뚜 뚜 뚜’
 
수술이 끝났다. 자궁은 완전히 적출 되었다. 자궁근종. 더 이상 내 것이 될 수 없는 1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