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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성분명처방, 무엇이 문제인가 <상>

우봉식 의료와사회포럼 공동대표


성분명처방 시범사업의 도화선이 된 대통령 공약이란 지난 2002년 10월 대선 과정에서 당시 노무현 후보가 선거 유세도중 부산에서 열린 전국 여약사대회에 참석하여 1000여명의 여약사 앞에서 성분명 처방 시행을 구두로 언급한 것이 그 근거이다.

당시 노무현 후보가 성분명처방이 무엇인지 얼마나 알고서 발언 했는지는 알 수는 없는 일이나, 민주당의 공약에 성분명처방에 대한 명문화된 상세한 자료가 없다는 점에서는 성분명처방 공약 여부에 대해 정확히 알고서 말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여당의 약사출신 모국회의원은 “현재 대체 조제율이 0.02%에 불과하다”는 통계를 들면서 “노 대통령이 대체조제 활성화와 성분명처방 제도 도입을 공약으로 약속했으나 현재까지 소극적으로 임해왔다”고 주장했다.

또한 “특히 약제비적정화 방안에서조차 대체조제 활성화와 성분명처방 도입이 빠진 것은 도무지 납득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동시에 “성분명처방은 국내 제약산업을 보호·육성하고 건강보험 재정과 국민의 약제비 부담을 덜어주는 중요하고 효과적인 정책수단”이라면서 “국공립의료기관부터 성분명처방 제도를 도입하고, 민간 의료기관에까지 확대 실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금년 초반까지 전임 유시민 장관조차 성분명처방에 대해 유보적인 발언을 하는 등 신중한 대응을 해왔던 정부가 웬일인지 임기 말에 들어서면서 성분명처방 시범사업에 가속도를 내고 있는 느낌이다.

최근 정부의 추진 내용을 보면 “성분명처방 활성화를 위한 기반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다고 판단되면 신중히 검토·추진”하되 “공공의료기관부터 우선 제한된 범위에서 비교적 논란이 최소화 되도록 시범적으로 시도”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또한 시범사업 실시 방안에 있어서 정부는 ‘성분명처방 시범사업 대상 의약품을 우선 오랜 기간 동안의 처방 경험에 의해 사용 빈도가 높고, 안전성·유효성이 확보됐다고 판단되는 단일제제 의약품 34품목(20개성분)’에 대해 1년 정도의 시범사업을 실시한다고 밝히고 있다.

많고 많은 대통령 공약 가운데 성분명처방을 이처럼 밀어붙이는 이유가 뭔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어 보이는 것은, 논란이 많은 정책에 대해 단지 대통령 구두 공약 사항이라는 이유로 전후 사정 돌보지 않고 이처럼 무리하게 시범사업을 추진하는 정부의 태도 때문이다.

지금 정부의 성분명처방 시범사업은 몇가지 관점에서 문제점을 안고 있다. 먼저 정책 시행 결정을 둘러싼 합리적 논의 절차의 문제점이다. 성분명처방의 시행은 의약분업 못지않은 예민한 사안으로 의료계와 약계뿐만 아니라 제약산업 그리고 국민 전체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되어 파급 효과가 결코 가볍지 않다.

이러한 중대한 정책을 결정함에 있어서 단지 대통령의 구두 공약이란 이유로 시범사업을 실시하는 것이 과연 민주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으로써 타당한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사실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의료계는 지난 2002년 선거에서 이회창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이유로 보이지 않는 정치적 탄압과 소외를 많이 받아왔다. 모든 보건의료 정책의 결정과정에서 의료계가 무시되거나 비의료계의 견해를 더욱 중시하는 등의 방식으로 정책 선상에서 배제되거나 소외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이번에 성분명처방 시범사업을 실시하게 된 또 하나의 동기는 의약분업의 시행으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위기가 1차적인 요인이다. 그러나 의약분업으로 인한 재정 위기에 대해서는 의료계로서도 할 말이 많다.

지난 2000년 의료계는 의약분업을 실시하게 되면 약을 처방받고 조제 받는 것이 기존의 병의원에서 한 번에 이루어지는 원스톱서비스에서 병의원과 약국을 거치는 투스톱서비스로 전환됨으로 인해 막대한 재정이 소요되므로 실시를 연기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견해는 완전히 무시됐다.

그 결과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 매년 2조원에 달하는 조제비(워낙 천문학적 금액이라 실감하기 어렵겠지만 대략 약국 1곳당 매월 1000만원 정도에 해당)가 소요되고, 그로 인해 누적된 재정 적자로 인해 의약품 선별등록제(소위 포지티브리스트)를 실시하더니, 급기야 성분명처방 시범사업을 실시한다고 하니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

대통령의 공약사항일지라도 국민의 합리적 이해가 결여되거나 민주적 절차를 상실한 정책은 올바른 정책으로 볼 수 없다. 이런 면에서 지금 정부가 실시하는 성분명처방 시범사업은 잘못 됐다.

두 번째로 우리나라는 아직 성분명처방을 실시하기 위한 기반조성이 불충분하다.

우리나라의 제너릭(Generic 복제약품) 관리 체계는 국가 경제 규모에 걸맞지 않게 엉성하기 짝이 없다. 지난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제너릭 약품의 효능을 입증하기 위하여 실시하는 ‘생물학적 동등성’ 실험에 있어서 일부 실험 기관에서 실험 자료를 조작하는 등 문제를 빚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러한 생동성 조작 사태와 관련하여 정부가 자료 공개를 거부하자 대한의사협회는 지난해 보건복지부 및 식약청을 상대로 ‘생물학적동등성 시험자료 조작 관련 자료 미확보 및 검토 불가품목 576개 리스트 전체에 대한 공개거부 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 했다.

이에 대해 최근 행정법원은 의협의 손을 들어 줌으로써 생동성 사태와 관련하여 정부가 자료를 공개하라고 판결한 바가 있다. 이와 같이 성분명처방을 실시하기 위한 기본적 전제 조건인 생동성 실험조차도 제대로 이루어 지지 못한 우리나라에서 시범사업을 강행하는 것은 정부 당국자가 전문적 지식이 부족해 무모한 결정을 했거나, 아니면 정책을 둘러싸고 모종의 보이지 않는 정치적 배려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말고는 달리 해석할 도리가 없다.

의약분업이 실시된 이후 병의원에서 약품을 처방한 후 약국 조제 과정에서 대체조제를 하여 동일한 성분이지만 제약회사가 바뀐 뒤 문제를 야기하는 경우는 너무도 흔히 접하는 아주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심혈관계 약물이나 신경계 약물과 같이 치료영역이 좁고 혈중 농도의 변이가 큰 약물의 경우는 이 같은 대체조제가 치명적인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한정 대체조제를 허용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성분명처방을 실시한다면 참으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