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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성분명처방, 무엇이 문제인가 <하>

우봉식 의료와사회포럼 공동대표


세 번째로 성분명처방의 시행으로 약제비를 절감한다는 정책은 근거가 없다.

의약분야에 있어서도 시장을 중시하는 미국에서 제너릭 판매량 점유율은 58%에 달한다. 그러나 제너릭 판매량의 매출액은 전체 약품 판매량의 18%에 불과하다. 제너릭의 평균 가격이 오리지널의 6분의 1 정도로 가격이 아주 낮기 때문에 판매량에 비해 매출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은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정부가 약가를 통제하지 않고 시장의 경쟁 구조에 맡김으로써 저가로 제너릭을 공급하는 회사들이 서로 경쟁적으로 저가약 공급 경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로 인해 발생한 이익은 당연히 환자의 몫이다.

그러나 미국과 달리 강력한 약가 통제 정책을 채택한 나라에서는 제너릭이 잘 안 팔린다.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약가를 정부가 정해 주는 나라에서는 제너릭 회사들이 경쟁적으로 가격을 낮추어 시장 점유율을 높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 이태리, 일본 등 강력한 약가 통제 정책을 채택한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제너릭의 판매량 점유율은 40%를 밑돌고 있다.

반면 강력한 약가 통제 정책을 실시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제너릭의 시장 점유율은 70%에 이르고 있다. 참으로 이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제너릭의 시장 점유율이 시장 경쟁 구조에 맡겨진 미국보다 더 높은 것이다.

이렇게 된 근본적 원인은 제너릭 가격 결정 메커니즘이 시장이 아닌 정부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에서 정부의 제너릭 결정가가 터무니 없이 높게 책정되어있기 때문이다. 의약품선별등록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제너릭약품의 가격이 오리지널 대비 80%까지 받도록 한 약가 제도로는 제너릭 위주의 정책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약회사들이 많은 위험요인 속에 막대한 투자비용을 들여서 신약개발을 하기 보다는 제너릭을 만들어서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구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제너릭 약품의 평균 가격이 미국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아 오리지널 약가의 절반에 달한다.

이처럼 제너릭 약품이 이미 전체 약품 유통량의 70%를 점하고 있으며, 오리지널에 비해 특별히 비쌀 이유도 없는 제너릭 약가가 지금처럼 고가인 상태에서 성분명처방이 확대 실시되게 된다면 실질적인 약제비 절감 효과는 거의 미미한 가운데 오히려 앞으로 국내기업의 신약개발 의욕만 저하시키게 될 것이다.

정책의 결정은 단순히 정책의 시행으로 인해 나타나는 직접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부수적으로 나타나는 영향에 대해서도 충분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성분명처방을 둘러싼 정책의 논의과정을 보고 있으면 직접적인 효과조차도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짙다.

만일 이번 성분명처방 시범사업을 토대로 차기정부에서 성분명처방을 확대 실시할 경우 정부의 의도대로 저가 약품의 사용을 늘리고 국민의 의약품 선택권을 증진시킬 것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후진적인 약가 결정 구조를 타파하지 않고는 이러한 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물론 상품명 처방을 통해 제약회사들과 유착관계를 맺어온 일부 의사들의 소위 리베이트 문제에 있어서는 의사 스스로 깊은 반성과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단지 의사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약국가에서도 이러한 리베이트는 ‘빽마진’이란 용어로 둔갑하여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성분명처방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지금의 갈등 상황은 단지 의약사간의 이권 다툼이 아니라 당연히 존중되어야 할 의사의 처방권과 환자의 투약권에 대해 정치적 힘을 등에 업은 약사 집단의 개입에 의해 원칙도 없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불장난을 시도하는 것이다.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지만 만일 성분명처방이 확대 실시된다 할지라도 ‘리베이트’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금도 은밀하게 거래되고 있는 약국의 ‘빽마진’ 폭이 크게 늘어나는 결과로 끝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와중에 의사를 믿고 처방을 받아온 환자들의 건강권은 외면 받게 되며, 진료를 하는 의사 입장에서도 약물의 효능과 약화 사고에 대한 불안감에 끊임없이 시달리게 될 것이다.

연간 2조원이라는 엄청난 조제비를 지불하고도 제대로 된 복약지도 조차 받지 못하는 대한민국에서 약제비를 절감하기 위한 대안으로 차라리 미국처럼 의사 처방전을 투입하면 자세한 복약 설명서와 함께 약이 조제되어 나오는 처방약 조제 자판기(pharmaceutical vending machine)를 도입하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