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4 (화)

  • 구름많음동두천 20.9℃
  • 구름조금강릉 22.7℃
  • 흐림서울 21.7℃
  • 맑음대전 24.6℃
  • 맑음대구 25.7℃
  • 구름조금울산 23.8℃
  • 맑음광주 23.4℃
  • 구름조금부산 25.1℃
  • 맑음고창 23.7℃
  • 구름많음제주 23.0℃
  • 구름많음강화 21.1℃
  • 구름조금보은 22.0℃
  • 맑음금산 23.5℃
  • 구름조금강진군 24.4℃
  • 구름조금경주시 25.0℃
  • 구름조금거제 24.9℃
기상청 제공

오피니언

전문의 시험, 그 고민과 경험 그리고…(상)

박현정 강원도 횡성군 공보의


추석이 지나고 난 10월 어느 토요일 ‘날 추워지니 맘도 살짝 불안한 걸. 이제 공부 좀 해볼까’하고 책상에 앉으니 삐리리 온 전화. 대족장 철영이가 건 전화였다.

“토요일인데 설마 공부하는 건 아니겠죠” 로 시작해 날 뜨끔하게 만든 그 전화는 대전에서 있을 족장 모임을 위한 전화였다. 그리고 대전에서 열린 족장모임. 학회에서 얼굴만 마주쳤던 어색한 얼굴들이 친근한 얼굴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인간미와 카리스마를 동시에 가진 대족장을 중심으로 족보발행, 정보공유, 시험일정 등의 중요한 사안들이 대략적으로 정해지고 회식이 이어졌다. 알고 보니 대부분의 족장이 나이에 밀려서 온 이들이라 비슷한 나이로 76년생, 77년생이 대세였다.

술과 함께 급친해지는 분위기는 각 병원 스탭 선생님들의 뒷담화로 강화됐고 계속 이어지는 강한 술자리. 그래도 가장 중요했던 화두는 작년의 탈족보 경향과 이번 출제 예상이 아니었나 싶다. 누구는 “탈족보로 말이 많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의견인 반면에 누구는 “아니다. 고시위원회가 좀 강직한 경향인 듯 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러한 근거 없는 추측들이 난무했지만 초면이고 인간적인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분위기는 좋았다.

고시위원장이셨던 김현회 교수님과의 내 개인적인 추억은 이렇다. 1년차 때 요관부목에 관한 4년차 의국 선배가 내게 떠민 어설픈 초록을 가을학회 때 내가 마무리해서 제출했는데 뽑히지 않길 원했던 내 바람과는 반대로 채택이 됐고 그날 발표는 2년차 선배가 발표했는데 불행하게도 지원사격을 해주실 본원 스탭 선생님들은 다른 일정으로 같은 방에 안 계셨다.

그 세션에서 당시 좌장을 맡으신 분은 황태곤 교수님 이셨고 발표 후 입에서 뿜어져나오는 상승무공으로 윗년차를 무참히 공격하신 강한 내공의 교수님 한 분이 계셨으니 그분이 김현회 교수님 이셨다. 혈도가 다 막혀 얼굴이 빨개진 윗년차에게 정말 미안했다.

하여튼 그런 즐거운(?) 학회의 추억을 갖게 해주신 분이 고시위원장이셨고 그 때 그 얄미운 4년차 선배는 “김현회 교수님이 고시위원장 맡으시면 너네 둘 중 한 기수는 박살날거야. 쓰나미처럼”하고 유익한 조언을 하기도 했었다.

난 개인적으로 ‘또 탈족이겠지’, ‘당황하지 않도록 열심히 공부하자’라는 마음가짐으로 족보를 갖추어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족을 갖추고 나니 내가 속한 족은 가을턴이 많아 나를 포함해 고작 2명이었다.

도 전체가 모여 공부하는 대구경북족이나 호남족에 비하면 아주 조촐한 마이너족이 됐다. 서로를 격려하며 시작했는데 마음이 잘 맞아 서로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었고 (나만 그랬던 것은 아니었기를) 인원이 많으면 장소를 구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2명이라서 병원의 남는 공간에서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어 다른 족에 비해 별 아쉬움도 느끼지 못했다.

기본 족보라고 할 수 있는 기출문제풀이 5년분량, 랜턴기출 5년분량, 풀링(기출, 랜턴), intraining문제들. 이렇게 족보들은 점점 갖추어져 갔고 썰렁하기만 하던 다음카페 문제풀이 게시판은 점점 열기를 더해갔다. 아는 것도 많아지면서 ‘아 이런 지식들을 알았으면 훌륭한 의사였겠는 걸’ 하는 생각은 누구나 시험준비를 하면서 한 번 쯤은 해보았으리라.

겨울이 오고 시험이 한 달도 안 남았을 때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별 것 아니지만 잊지 못할 SASP사건. SASP라는 문제집이 있었는데 기출문제 중 답이 논란이 됐던 이른바 탈족보의 몇몇 문제들이 많이 흡사한 형태로 거기에 실려 있었고 해마다 1권씩 나오는 문제집이라 아직 없는 2005, 2006 문제들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 구한다면 같이 족보로 만들어 풀 것인가? 하는 것들이 논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