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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과잉처방 논란에서 빠져버린 문화적 처방

의료와사회포럼 정책위원 안용항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정부가 '의사들, 약 너무 권한다', '동네의원 처방약 너무 많다'는 등의 제목으로 평가결과 내용이 보도되면서 의료기관의 도덕성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 문제에서 우리가 유심히 살펴보아야 할 내용은 1.약을 너무 권하는 의사들도 있겠지만 약을 너무 요구하는 환자들도 있다는 것과 2.과잉 처방과 과소 처방과 적정 처방의 정확한 기준점이 어디에 있는가의 문제와 3.이러한 처방에 대한 비도덕성 비난이 타당한가의 문제점들을 검토해보아야 한다.

약에 관한 문화

'한국기독교의료사'의 저자인 이만열 교수는 1800년도 말 처음 서양의료가 도입되는 과정에서 서양 의사들의 민간인 진료내용을 기록했다. 그 내용에 따르면 서양 의사가 약을 조금 주면 환자들이 서양의사를 비난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만열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약을 좋아하는 문화적 현상으로 분석했다.

약(藥)이라는 단어가 낙(樂)이라는 단어와 유사한 것처럼 약은 독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약은 낙(樂)처럼 좋은 것으로만 인식하는 문화적 배경이 우리나라에 존재한다. 한약을 한 가방 가득 들고 나가는 모습이 좋은 것으로 인식하는 문화적 배경이 약사용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많은 약을 권하는 의사나 많은 약을 요구하는 환자는 이러한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이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어떤 의사가 약을 적게 사용한다면 다른 의사에 비해서 잘못 치료하는 의사로 환자들에게 오인되고 의사들 사이의 경쟁에서 살아남기가 힘들어 진다.


약(藥)을 좋은 것으로만 인식하는 문화는 우리나라의 현재 약국 모습을 탄생시킨 배경이기도 한다. 약이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인식이 있었다면 약국에서 일반인들에게 직접 약을 파는 문화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서구와 우리의 문화적 차이가 서구의 약국과 우리의 약국의 차이를 만든 중요한 요인인 것이다.

이러한 문화에 도덕적 비난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만약 도덕적 비난을 한다면 다른 문화에 비교한다거나 ‘객관적 근거를 기준’으로 비난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비난의 대상은 그 문화 속에 젖어 있는 모든 인간들 일 것이다.

적정 처방에 대한 객관적 기준이 있는가?

질병의 진단과 치료는 과학을 근거로 해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의학의 수많은 지식들을 어떻게 사용하고 어느 부분을 사용할지는 의사들의 경험과 주관적 판단에 근거해서 이루어진다.

의학이 자연과학에 근거한 학문이지만 수학과 물리학과 다른 점은 지식의 조합과 적용은 의사라는 인간이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질병의 진단과 치료를 자판기의 음료수처럼 판매할 수 없게 된다. 또 질병의 진단과 치료의 과정이 수학 문제를 푸는 것처럼 정확하게 정해진 일정한 방식이 정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의사들이 동일한 의학을 배웠다고 할지라도 또 동일한 의사가 동일한 진단명을 붙인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한다고 할지라도 동일한 치료 방식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동일한 병명을 가진 환자의 나이나 병의 깊이 정도에 따라서 그리고 다른 질병과의 연결 정도에 따라서 뿐만 아니라 환자의 질병치료에 대한 욕구나 요구에 따라서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리해보면 질병의 진단과 치료는 자연과학에 기반을 둔 의학이라는 학문을 근거로 시작되기는 하지만 환자와 의사의 관계에 따라서 그리고 문화에 따라서 조금씩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의학은 결코 수학 문제처럼 정해진 방식으로만 문제를 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잉치료와 과소치료와 적정치료의 기준은 매우 모호해진다. 따라서 적정치료를 위한 의학적 기준은 단지 특정 질병에 대한 ‘권고수준의 기준’일 뿐 모든 환자에게 동일하게 적용할 기준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적정치료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하려면 각각 환자에 대한 나이, 질병의 깊이, 다른 질병과의 연결 문제, 환자 욕구나 요구의 타당성 등을 모두 고려한 후에야 가능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판단은 보건복지부나 심평원, 공단이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와 심평원과 공단의 적정치료 판단은 환자에 대한 다양한 면을 무시하고 오직 통계자료에 의한 상대적 평가만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보면 인간에 대한 모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각각의 인간은 개인으로 각기 다른 존재이며 다른 존재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인간은 기계처럼 동일한 모습도 아니며 각기 다른 생각으로 살아가는 자유로운 존재로 남기를 바란다. 이것이 바로 ‘인권’이라고 말하기도 하며 심지어 ‘자연권’이라고 까지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의사의 일방적 치료가 ‘때로는’ 환자의 인권을 침해하기도 하지만 이 경우 환자는 다른 의사를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나 심평원과 공단의 적정치료에 대한 정확한 근거 없는 평균적 기준에 의한 일방적인 비난은 모든 환자들에게 동시에 피해를 줄 수 있으며 환자들은 일방적 기준에 모조건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한 실 예들은 무수히 많다. 최근 논란이 된 암환자 치료 기준에 관한 것이 좋은 예이다.

처방에 대한 정부 비난이 타당한가?

위의 글에서 우리는 질병의 진단과 치료는 자연과학적 의학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문화적 배경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치료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에 대한 처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환자의 감정과 욕구와 요구, 그리고 의사의 판단과 그의 감정, 욕구 등이 혼합된 상태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질병치료는 문화적 고려가 필수적인 요소인 것이고 환자와 의사의 관계가 아주 중요한 것이다.

의학에 기초한 적정치료에 대한 기준이 만들어 진다고 해도 모든 환자들에게 동일하게 적용하라는 강제는 있을 수 없는 것이고 강하게 말하면 인권침해의 가능성 까지 언급해야 할 사항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의사들의 전문가적 양심이 필요하며 그 양심에 따라 환자의 타당하지 않는 요구는 ‘설득’으로 배제해야만 한다.

물론 비양심적 의사의 치료행위에 대한 제재가 필요하다. 이러한 제재는 정부의 통계적 방법에 의한 무리한 방식이 아니라 전문가의 세밀한 판정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세심한 판정의 가장 좋은 방법은 의료계가 이러한 일부 사람들에 대한 자정 작용을 살려야 함은 분명한 사실이다.


일부 비양심적 의사에 대한 타당한 비난이 아닌 정부의 통계적 방법에 의한 과잉진료에 대한 판단은 우리의 문화에 대한 비난이 분명하다.

만약 우리의 약 문화에 문제가 있다면 정부의 역할은 이러한 잘못된 문화를 고치려고 하는 방식이어야 하지 의사들을 향한 일방적 비난은 문화를 극복하려는 타당한 방법이 아니다. 문화를 극복하려면 국민들을 향한 비난 보다는 올바른 습관과 지식 보급에 신경을 쓰야 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할 정부가 문화적 현상에 눈을 감고 오직 의료계를 향해서 비난만 한다는 것은 국민들의 눈을 속이며 현 정부 자신의 문제 판단 능력의 부족을 말하는 것이다. 문제의 해결은 어떤 희생양을 만든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의료계를 희생양으로 만들 수는 있지만 그것으로 문화를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잠시 국민들의 눈을 가리는 행위일 뿐인 것이다. 더 나은 방향으로의 발전은 올바른 판단에서 시작되어야지 일방적 비난을 통한 희생양 만들기로 나아가는 것은 올바른 정부의 모습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