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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의원

영동세브란스, 독일 차관 상환…’도입 배경’ 화제

獨정부, 파독간호사 귀국후 취업위해 차관제공 제안 계기

연세대 영동세브란스병원이 최근 독일정부를 통해 받은 차관 1500만 마르크(한화 45억원)를 모두 상환함에 따라 차관을 받게 된 경위가 세간의 관심을 끈다.

영동세브란스병원이 밝히는 그 배경을 소개한다.

1960년대 대한민국은 국민소득 76달러로 당시 UN가입국 120여개국 중에서도 최하위 수준이었다.
당시 정부는 경제발전을 위한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각국에 차관을 요청했으나 손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독일(당시 서독)에 한국인 광부와 간호사들을 보내고 이들의 임금을 담보로 차관을 얻을 수 있게 된 것.

우리나라가 독일로부터 차관을 도입하는 조건으로 독일로 보내진 간호사는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총 1만226명으로, 이들 중 5000여명이 아직까지도 독일에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파독간호사들은 1970년대에 들어 그 수가 크게 줄게 되고, 특히 이 간호사들이 귀국할 경우 국내 재취업 등이 문제점으로 대두됐다.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1974년 독일 연방공화국 수도인 ‘본’에서 개최된 한국-독일 정기각료회담에서 독일정부는 귀국하는 파독 간호사들의 국내 취업을 위해 독일의 장기저리 차관을 제공해 우리나라에 병원을 건립하는 방안을 한국정부에 제의하게 된 것이다.

때마침 세브란스병원이 새로운 의료기관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던 1975년 여름, 김효규 연세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은 남덕우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을 통해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김효규 부총장은 당시 독일 뮌휀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갓 귀국한 이성낙교수(현 가천의대 총장)에게 파독간호사들을 위한 병원 건립 프로젝트를 지시하게 된다.

이에 이성낙 교수와 송 자 교수(전 연세대 총장), 김모임 교수(전 보건복지부장관) 등 여러 연세대 인사들이 모여 파독간호사들을 위한 병원과 교육과정 등 에 대한 프로젝트를 만들어 냈다.

연세대는 병원 건립계획서를 작성해 제출. 그해 10월 서울에서 개최된 제 5차 한-독경제각료회의에서 이 제안이 받아들여졌다.

병원 건립을 위한 서독재건은행(KFW)의 재정차관을 정기저리로 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당시 서독경제협력성 한국문제담당서기관 3명이 연세대의 계획서를 본 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외에도 건립 중이던 서울대병원 그리고 부산, 대구의 지방대학병원까지 둘러보았다.

하지만 서독정부 파견조사단은 굳이 잘 운영되고 있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재정차관을 줄 필요에 대해 의문을 제시하고, 이를 신촌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병원에 주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당시 서울은 한강 이남의 강남지역 개발이 한창이었다.

마침 현재 영동세브란스병원의 위치가 종합병원 건설예정지로 내정되어 있음을 알고 조사에 착수했다.

당시 병원부지는 허허벌판으로 한남대교가 보일 정도로 쓸모없는 상태로 보일 정도였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그 부지를(강남 도곡동) 일단 확보하게 된다.

1976년 5월 독일 경제협력성 한국담당과장 Dr. R. Barthelt 등 3명의 관계자가 연세대 의료원을 방문해 설립계획안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교환을 하고 돌아갔으며, 다음달인 1976년 6월 제 6차 한독경제각료회담에서 우리측 제안 프로젝트가 양국정부 사이에서 합의됐다.

같은 해 12월 제 96차 국회 경제과학심의위원회에서 병원설립 당위성에 대한 증언을 하면서 결국 서독차관 승인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보건사회부 등에서 이미 의료시설이 갖춰진 서울에 새병원이 필요하지 않다며 울산이나 포항 등 공단지역에 공단병원을 건립하라고 요구했다.

결국 수일간의 협의 끝에 당초 계획의 1/2규모인 250병상의 병원으로 계획이 수정됐고, 대신 성남에 100병상, 용인에 30병상, 광주에 30병상, 인천주안공단에 80병상의 병원을 건립하기로 하고 1977년 9월 최종계획서를 제출해 보건사회부장관의 의견을 수용했다.

연세대 영동세브란스병원은 "이런 과정을 거쳐 1978년 서독재건은행으로부터 1500만 마르크를 빌리게 됐고, 연 2%의 저리로 10년 거치 20년 상환을 조건으로 올해인 2008년 1500만 마르크 전액을 상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