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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안락사, 절차적 정당성 판단 법적 견해 유보해야

육희숙 전북대학교병원 진료처 법의료실


얼마 전 식물인간이 된 노모가 존엄하게 죽을 수 있도록 치료를 중단해 달라며 가족들이 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 의해 기각된 바 있다.

재판부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최대한 존중돼야 하지만, 치료를 중단해 사망에 이르는 경우까지는 무제한적으로 인정될 수 없다”며, “살인 및 자살방조를 처벌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응급 환자에 대한 치료를 중단할 수 없도록 하는 현행법의 취지를 고려했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안락사(또는 존엄사)에 대한 법적 판단의 문제는 의료인의 입장에서는 생명유지의무의 존재여부와 그 정도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오래전부터 안락사를 합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나라는 극히 드문 실정이다.

안락사는 불치의 병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환자에게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 그 생명을 단절시키는 적극적인 안락사와, 생명을 단축시킬 염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완화시킬 목적으로 처치를 한 결과 예상된 부작용으로 환자가 사망하는 간접적인 안락사, 뇌사자나 식물인간과 같이 죽음에 직면한 환자에 대한 치료를 중단하거나 생명유지 장치를 제거함으로써 환자가 사망하는 소극적인 안락사의 경우로 나뉠 수 있다.

적극적인 안락사의 경우에는 의료진이 촉탁·승낙에 의한 살인죄의 책임을 지게 되는 반면, 간접적인 안락사나 소극적인 안락사의 경우에는 환자의 생존 시 명확한 의사표시 및 환자 가족의 승낙이 있고 환자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의식상실’의 상태에 이른 경우라면 어떠한 살인죄의 구성요건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이다.

이와 같은 가처분 기각 사건은 현행 법규 어디에도 안락사의 실체적 요건이 언급되지 않은 상황에서 병원 내 윤리위원회의 결정에 대한 법적 효력을 부인하는 것은 물론 가망 없는 환자에 대한 치료 중단을 의료진이 할 수 없게 함으로써 향후 강력히 퇴원을 요청하는 가족들과의 갈등은 더욱 빈번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므로 법적으로 안락사 시술의 ‘실체적인 요건’을 명확히 하거나 안락사 시술을 위한 ‘일정한 절차’를 마련하고 그 절차의 준수를 통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환자의 병력이 일정기간 추적 관찰됐고, 다른 의사와 협의해 환자의 불치 상태와 극심한 고통 상태에 대한 확인진단이 가능하며, 환자가 담당의사로부터 자신의 불치병에 관한 충분한 상담을 한 후에도 환자가 계속 자유의사에 의해 자신에 대한 안락사를 진지하게 요구하며, 가족들도 이에 동하는 것도 타당할 것이라고 본다.

소극적인 안락사의 경우에는 환자의 의사가 확인 불가능한 경우에는 일정한 범위와 수의 가족(상속인)들의 의사로 대치하는 방법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환자의 고통이나 절망, 가족들의 부양 부담, 의료진의 책임윤리 등 안락사에 관한 실체적 부분은 관련 당사자의 합리적인 판단을 통해 결정될 수 있도록 배려하되, 절차적 정당성 준수 여부에 대한 판단은 법적 견해에 유보토록 하는 것이 의료현실을 반영한 방인이라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