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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단체

응급실 당직 위해 밤새고 낮 진료 포기해야 하나?

응급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 “실효성 떨어져” 한목소리


“응급실 당직으로 밤 진료 질은 향상할 지 모르나 낮 진료의 질은 떨어질 수 있다. 응급실 당직을 위해 낮 진료를 포기하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14일 국립중앙의료원 연구동 대강당에서 열린 ‘비상진료체계 구축 관련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안 공청회’에서 의학회와 병원협회, 전공의들은 응급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은 현실을 무시한 처사로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응급의료법 개정안’은 의료계의 뜨거운 감자였던 만큼 이날 공청회에서는 빈 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인원이 모였으며, 공청회에서 배포되는 자료집은 행사 시작 전 동이 났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참여자들의 적극적인 의견 표출로 예정된 폐회 시간보다 1시간 가량 지연됐다.

‘응급의료법 개정안’은 응급의료기관은 당직전문의 또는 이와 동등한 자격을 갖춘 것으로 인정되는 의사가 응급환자를 진료하지 않을 경우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어야 하는 조항을 담고 있다.

이들은 시행규칙에서 당직전문의를 각 진료과목별 전문의 또는 3년차 이상 전공의로 규정한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인턴이나 저년차 전공의가 수행하던 응급실 당직 업무를 전문의와 고년차 전공의가 고스란히 떠안게 된 것.

구성자 복지부 응급의료과 사무관은 “환자가 응급실에 찾아왔을 때 전문의 또는 3년차 이상 전공의가 직접 진료하게 함으로써 신속하고 적절한 응급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응급의료법 시행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장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참석자들은 세부 전문의 제도 시행으로 인해 응급의학과 전문의와 별도로 고년차 전공의, 다른 과 전문의를 배치하는 것은 실효성이 떨어지는 조치라고 지적했다.

정영호 대한병원협회 정책위원장은 “5명 이상의 전문과목 전문의가 상시 대기하는 당직 운영은 비용 등이 효과적이지 못하고 운용체계에서 비현실적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응급센터는 만성적 적자 구조다. 당직전문의를 채용하지 못하면 외래 보는 전문의들이 당직을 설 수밖에 없는데, 밤 근무를 한 사람에게 다음날 외래진료를 시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A 교수는 “50대 중반의 흉부외과 의사로서 당직하기 힘든 나이이지만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내 전공이 아닌 환자가 응급으로 와도 속수무책”이라면서 “병원은 시스템으로 움직직이는 거지 특정의사가 특정 시간에 있다고 해결되는 일은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산한국병원 진료부원장은 “전문의와 고년차 전공의 등 인력 확보가 1, 2명 밖에 되지 않은 의료기관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하다”고 촉구했다.

전공의 대표로 참석한 경문배 대전협 정책이사는 현재 주당 100시간에 육박하는 근로시간에 응급실 당직이 늘어날 경우 피로 누적으로 의료 과실이 생길 수도 있을 것으로 우려했다.

경 정책이사는 “현재도 주당 100시간에 육박하는 근로시간으로 힘든 상황에서 응급실 당직까지 늘어난다면 피로 누적으로 의료 과실 등이 일어날 수 있다”면서 “응급의료시스템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전공의의 적정 근로시간을 확보하는 정책이 선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련교육을 책임지는 의학계에서는 고년차 전공의 응급실 당직으로 연차별 전공의 수련 프로그램의 질서가 무너질 것으로 내다봤다.

김재중 대한의학회 수련교육이사는 "개정안 대로라면 1·2년차 전공의는 응급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수련과정이 없어져 능력을 기르지 못한 상태에서 상급년차에 들어서게 된다"면서 '당직' 개념을 병원 상주에 한정하지 않고, 응급실에서 연락 온 환자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back-duty)까지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삼성서울병원 교육수련부장 심종섭 교수 역시 응급실 당직으로 교육 수련에 대한 시스템이 망가질 것을 우려했다.

심 교수는 “병원마다 사정이 다 다르고 학회마다 연차별로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는데 개정안이 시행된다면 교육에 대한 시스템은 다 망가지게 될 것”이라며 “병원마다 응급실을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만큼 각 병원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의들의 이 같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민단체와 정부 관계자는 응급의료법 개정안으로 응급의료서비스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했다.

조경애 건강세상네트워크 고문은 “비상진료체계를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도 국민들은 야간이나 공휴일에 전문의로부터 진료 받지 못하고 생명을 잃고 있다”면서 “응급실 모니터링을 수시로 시행하고, 위반 사항에 대해 과태료를 받는 경우에는 이를 지역사회 시민들도 알 수 있도록 공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 지원팀장은 “응급의학과 전문의로서 전공의들의 주장에 공감한다”면서 “지금껏 공급자 중심으로 맞춰졌던 의료를 환자 중심으로 전환하면서 문제점이 한꺼번에 드러난 거라고 생각한다. 변화는 누구에게나 고통스럽겠지만, 응급환자를 잘 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한편,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이날 공청회에 앞서 김일호 회장을 비롯한 50여 명의 전공의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응급실 강제 당직은 전공의의 근무시간을 증가시키고, 의료사고 위험을 가중시킨다고 지적하는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벌였다.

대전협은 이미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의견서를 복지부에 제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