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7 (금)

  • 구름많음동두천 20.9℃
  • 구름조금강릉 22.7℃
  • 흐림서울 21.7℃
  • 맑음대전 24.6℃
  • 맑음대구 25.7℃
  • 구름조금울산 23.8℃
  • 맑음광주 23.4℃
  • 구름조금부산 25.1℃
  • 맑음고창 23.7℃
  • 구름많음제주 23.0℃
  • 구름많음강화 21.1℃
  • 구름조금보은 22.0℃
  • 맑음금산 23.5℃
  • 구름조금강진군 24.4℃
  • 구름조금경주시 25.0℃
  • 구름조금거제 24.9℃
기상청 제공

병원/의원

무한경쟁으로 공급과잉 늪에 빠진 한국의료

“적정수가 보장, 수요공급 조정, 고가의료 시장에 맡겨야”

전 세계 최고수준의 병상 수와 고가의료장비 보유대수를 기록할 정도로 공급과잉 상태인 우리나라 의료체계를 새로운 차원에서 재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OECD 보건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병상 수는 인구 1천명당 9.6병상으로 OECD 평균 4.9병상의 2배 가까운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고가의료장비의 보유대수 역시 세계 최고 수준으로 최근 국정감사에서 심평원이 남윤인순 의원(민주당)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인구 백만명당 CT 37.1대, MRI 23.5대, PET 3.8대를 기록해 OECD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989년, 전 국민 대상 의료보험제도의 도입을 시작으로 대형병원들의 지속적인 확대, 의원급의료기관의 인테리어와 서비스에 대한 꾸준히 투자 등 의료계 무한 경쟁이 20여년간 계속되는 과정에서 병원들이 경쟁적으로 병상 수를 늘리고 고가의료장비를 도입한 결과다.

국내 최고의 인지도를 자랑하는 서울대병원조차 계속된 적자로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3시간 대기, 3분 진료’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한국 의료현실에 비추어 볼 때, 의료의 공급과잉은 결국 의사와 환자가 모두 만족하지 못하는 기형적 의료시스템의 한 단면이라는 진단이다.

허대석 서울의대 교수는 SNS홈페이지에 기고를 통해 “최근 경제성장이 둔화되면서, 다른 부문과 마찬가지로 의료시장 역시 공급과잉의 문제에 당면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전체 인구수는 지난 1990년 4,339만명에서 2011년 4,821만명으로 거의 정체상태인데 반해, 같은 기간에 입원 병상 수는 4배, 의사 수는 2.5배 늘어났다.

허 교수는 “의료서비스를 전자제품처럼 시장경제에 맡겼다면 자연스럽게 가격이 결정되고 공급량도 합리적으로 조절되었을지 모른다”고 밝혔다.

실제로 의료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는 미용 성형 같은 선택적인 의료서비스의 공급가는 계속 낮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그는 단일 건강보험체제하에서 당연 지정제를 시행하고, 지난 30여년간 정부가 의료기관의 진료수가를 통제하면서 상황은 복잡한 실타래처럼 얽혀버렸다고 밝혔다.

허대석 교수는 “공급은 민간이 하는데, 정부가 적정진료를 할 수 없게 원가 이하로 가격을 통제하는 제도는 의사 1인당 진료량을 늘려 ‘3분 진료’라는 박리다매형식으로 비용을 절감하고, 비급여를 통해 내과, 외과, 소아과와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로 발생한 적자를 메우는 기형적 의료공급시스템을 합리화하는 명분을 주었다”고 지적했다.

의료비절감을 위해 필수의료 수가를 낮출수록 서비스 질이 더 나빠지고 비급여 진료가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는 것.

허 교수는 한국 의료현실에 대해 “결국 아무리 건강보험료를 올려도 국민들의 의료에 대한 기대수준을 만족시키지도 못하고, 경제적 부담도 줄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고 말했다.

장기간의 경기침체로 의료 공급과잉의 폐해가 점점 현실을 압박하고 있지만 앞으로의 미래 역시 밝지 않다. 정부의 보장성 강화 척책으로 의료계의 희생이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허대석 교수는 “새 정부가 보장성 강화를 명분으로 비급여 의료비를 축소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의료기관의 적자 폭은 더욱 더 커질 것”이라면서 “이미 원가이하로 정부가 공급가를 통제하고 있는 수가를 공급과잉이라고 더 내릴 수도 없고, 손해를 본다고 필수의료서비스 제공을 거부할 수도 없다는 점이 딜레마”라고 밝혔다.

이러한 때에 한국의료가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허 교수는 36년 전에 수립된 저수가 의료보험제도로는 더 이상 최근 고급화되고 다양해져 고비용구조로 전환된 의료서비스 수요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가 필수의료를 통제하겠다면, 적정수가를 보장해 의료서비스가 적절히 수행될 수 있게 하고 이후 시장교란이 발생하지 않게 정부가 수요공급도 조정해주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국민의 의료비 부담과 의료의 질 보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시장경제가 최선이라고 주장했다.

허대석 교수는 “선택적인 고가의료는 시장경제에 맡기는 것이 대다수 국민의 의료비부담을 줄이면서 필수의료의 질을 보장하는 방안”이라며 “의료제도도 변화된 사회환경을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운영체계로 재정립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