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대화 선수의 극적인 3점 홈런, 황영조 선수의 몬주익 기적, 그리고 2002년 월드컵 4강… 우리는 경험을 통해 스포츠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희망의 전도사 스포츠 선수들, 많은 어린 꿈나무들이 그들과 같은 선수가 되길 바라며 꿈을 키우지만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등져 안타까움을 준 스포츠 영웅들도 있다.
사고, 질병 등으로 아쉽게 선수생활을 이어가지 못하고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진 비운의 스타들을 조명해봤다.
루 게릭(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루 게릭은 1939년 6월 5일, 6만2000명의 관중이 자리를 가득 메운 양키스타디움에서 "지금 이 순간, 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라는 너무도 유명한 감동적인 한마디를 남기고 은퇴했다.
1927년 타율 0.373, 홈런 47, 타점 175개를 기록하며 리그 MVP에 올랐고 1934년과 1936년에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이 전설적인 야구선수는 프로입단 17년째(풀 타임으로는 14번째) 시즌을 마치고 몸에 이상을 느끼면서 은퇴를 한 것이다.
그는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이라는 대뇌와 척수의 운동신경 세포가 파괴돼 이 세포의 지배를 받는 근육이 점점 힘을 잃어가는, 당시로서는 듣도 보도 못한 희귀한 퇴행성 신경병증에 걸렸다.
처음에는 어깨, 팔, 다리 등 신체 일부의 근육이 위축되기 시작해 결국 식물인간 상태에 이르는 치명적인 병. 말기에는 숨쉬는 것조차 힘들게 돼 인공호흡기에 의존하게 되며 3∼5년 내에 폐렴이나 호흡마비 등으로 사망하게 된다.
대개 40∼50대에 발병하지만 드물게 20∼30대 젊은 층에서도 발생하며. 발병원인은 여러 가지 가설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게 없는 실정이다. 물론 마땅한 치료법도 없다.
루 게릭은 진정한 타점머신 이었으며 뉴욕양키스 선수 중 최초의 영구결번이었고 베이비루스와 함께 살인타선을 구축했던 최고의 야구선수였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그를 전설적인 야구선수로보다는 사람들에게 절망을 안겨주는 희귀병 이름으로 더 많이 알고 있다.
김득구(나에겐 최후까지 싸울 용기와 의지가 있노라)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오기로 권투를 시작한 젊은이가 어느덧 세계 챔피언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챔피언을 향한 그의 첫 도전이 최후의 도전으로 기록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상대는 24승(19KO)1패라는 화려한 전적을 갖고 있는 레이 맨시니 선수. 붐붐이라는 별명이 보여주듯 그는 맹렬한 인파이팅을 구사하는 강력한 선수였다.
하지만 그는 초반에 KO패 당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뛰어난 실력으로 챔피언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운명의 14라운드에서 그는 맨시니의 강력한 레프트훅과 이어 터진 라이트스트레이트를 그대로 맞고 링 위에 쓰러졌다.
카운트가 끝난 뒤 휘청거리며 다시 일어섰지만 이내 곧 다시 쓰러졌으며 결국 다시는 일어나질 못했다.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라스베이가스 시져스 팰리스호텔 링 위에 선 헝그리 복서 김득구 선수. 하지만 그는 끝내 세계챔피언에 오르지 못하고 뇌사상태에 빠진 지 약 90시간 만에 사망했다.
김득구 죽음의 원인이 펀치드렁크라고 딱히 꼬집어서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과도한 충격으로 뇌를 다친 것은 확실하다.
펀치드렁크는 권투선수와 같이 뇌에 충격과 손상을 많이 받게 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뇌세포손상증이다.
혼수상태, 기억력 상실, 정신 불안감 등이 나타나며 만성 증세로는 반신불수, 실인증, 실어증, 치매 등의 후유증이 나타난다.
복싱을 하다 보면 머리를 얻어맞기 마련이다. 이렇게 쌓인 크고 작은 충격이 말년에 사람을 폐인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한편 그의 사망으로 원래 15라운드였던 WBA경기가 12라운드로 줄어들었고 선수들의 쉬는 시간도 연장됐다.
(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가 두 편 있다. 하나는 유오성 주연의 챔피언이고 또 하나는 이계인 주연의 울지않는 호랑이이다.)
에디게레로(나는 거짓말하고 훔치고 속인다)
전세계적인 프로레슬링 단체 WWE의 에디게레로가 지난해 11월 13일 돌연 사망했다. 밝혀진 사망 원인은 진통제 과다복용의 부작용으로 인한 심장마비였다.
프로그스플래쉬라는 필살기를 구사하며 절정의 전성기를 누리던 최고의 테크니션 레슬러가 채 40세가 되기도 전에 돌연 사망한 것은 많은 레슬링 팬에게 충격이었다.
특히 사망 1주전에 방영된 스맥다운에서는 켄 케네디와 서바이버시리즈 출전 티켓을 놓고 경기를 벌여 승리를 한 터이기에 그 충격은 더 했다.
그는 마약중독, 알콜 중독, 진통제 중독 등을 동시에 겪으면서 기행과 탈선을 일삼다가 결국 WWE에서 해고되고 방황의 시기를 겪다가 정상인으로서 돌아갈 확률은 없다는 의사의 소견을 당당히 깨고 종교와 함께 새로운 사람이 돼 당당하게 WWE에 복귀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했었다.
WWE 챔피언 , WWE IC 챔피언 , WWE 태그팀 챔피언 , WWE US 챔피언 등을 두루 지냈으며 뛰어난 쇼맨십과 코믹하고 귀여운 악역 기믹으로 “나는 거짓말하고 훔치고 속인다”라는 말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프로레슬러들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면서 다량의 진통제를 복용하는 경우가 많다. 릭 루드나 미스터 퍼펙트 커트 헤닝, 브리티쉬 불독 등도 돌연사한 프로레슬러 들이다.
켄 케네디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체어샷을 맞고 조용히 읊조린 “이젠 편하게 쉬고 싶군”이라는 말이 마치 그가 죽음을 예감한 듯해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김상진(하늘 위로 날려보내는 사랑)
해태타이거즈(현 기아)와 LG트윈스의 1997년도 한국시리즈 5차전. 이날 1실점 완투승을 거둬 4승 1패로 해태에게 우승을 안겨준 투수는 놀랍게도 아직 풋내기인 데뷔 2년차 고졸투수 김상진이었다.
1996년 광주 진흥고를 졸업하고 해태에 입단한 김상진은 데뷔 첫 해 9승 5패를 기록해 선동렬과 이강철의 뒤를 이어 해태 마운드를 이끌어갈 선수로 평가 받았다.
이어 1997년 9승 10패, 1998년 6승 10패라는 무난한 성적으로 해태의 선발로테이션의 한축을 담당했으나 21살의 어린나이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1998년 여름 동료들과 단체식사도중 피를 토하고 쓰러졌으나 병원진찰 결과는 별 이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해 겨울 다시 피를 토하고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돼 진찰을 받은 결과 암 판정을 받은 것이다.
정말 건강해 보였던 야구선수가 위암 말기라는 사실은 그리 쉽게 믿겨기지 않았다.
투병 생활 초기에 자신이 직접 링거를 들고 다니면서 강한 극복의지를 보여 “정말 암도 이길 수 있을 만큼 건강해보인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얼마 후 스포츠뉴스를 통해 보여진 그의 모습은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로 쇠약해질 때로 쇠약해진 여느 암 환자와 다를 바 없는 초췌한 모습이었다.
건강했던 투병 초기의 모습은 간데 없고 삐쩍 마른 몸으로 겨우 카메라를 응시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암이라는 질병의 무서움에 새삼 몸서리를 친 기억이 난다.
그 후 김상진은 힘겨운 투병 끝에 1999년 6월 10일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평소 그렇게도 바라던 ‘두자리 승수’를 이뤄내지 못한 채 3년 동안 24승26패 2세이브, 방어율 3.90의 기록만을 프로야구 연감에 남기고 말이다.
이상훈 기자(south4@medif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