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의사들이 2860원이 아까워서 의료분쟁조정법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산부인과 의사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드는 법인데 아무리 좋은 취지라도 수용할 수 없는 것 아니냐...”
지난 8일 의료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료분쟁조정법이 시행됐다. 이에 앞서 지난 6일 오후에 만난 대한산부인과학회 의료분쟁조정법TFT 김 암 위원장은 질문을 하기도 전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현재 산부인과 의사들이 처한 상황 때문일까. 의료분쟁조정법 명칭만 꺼냈을 뿐인데 김 암 위원장은 목소리 톤이 올라가더니 냉소를 머금었다.
그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과실도 아닌 무과실에서 의사들이 책임을 인정하고 배상을 하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느냐”면서 “예를 들어 소방관이 사람 구하러 가서 3명 중 1명을 못 구했다고 해서 그 소방관이 못 구한 사람한테 배상을 하거나 그런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분만은 아무리 잘해도 위험한 상황이 항상 존재하지만 최근에는 특히 고령 산모들의 증가와 난임 부부들의 시험관 시술 등으로 다태아 임신 증가로 분만 중 위험도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과실도 아닌 무과실을 왜 의사가 책임져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김 암 위원장은 의료분쟁조정법 시행을 막기 위해 복지부와 규제개혁위원회, 총리실 신문고 등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정부는 의료계의 지속적인 반대에도 지난 8일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사업에 드는 비용을 분만 실적이 있는 의료기관이 30% 분담하는 것으로 의료분쟁조정법을 시행했다.
이에 대해 김 암 위원장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추호경 원장 내정자가 기자간담회에서 의료기관에서 부담하는 금액이 분만 건당 2860원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산부인과 의사들이 2860원이 아까워 법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고 있는데 아무리 좋은 취지라도 거부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의사들에게 제왕절개보다는 자연분만을 권장하고 있지만 의료분쟁조정법이 시행되면 누가 제왕절개 대신 자연분만을 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제왕절개를 하면 의료사고 등을 방지할 수 있는데 의사들이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을 가겠느냐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또 의료분쟁조정법에서 조정·감정 제도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감정위원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의료사고가 과실이 될 수도 무과실이 될 수도 있다”면서 “전문가가 아닌 비전문가가 감정해서는 안 된다”고 피력했다.
이어 “감정위원 등이 현지조사를 할 경우 시간적 낭비와 여론 악화 등으로 환자가 감소할 것”이라며 “이러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이 가속화 되고 결국 그 피해는 국민들이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감정위원 5명 중 비의료인이 3명인 것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추호경 원장 내정자가 기자간담회에서 ‘감정위원 5명 중 2명인 의사들이 다른 위원들을 설득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다면 환자도 승복하고, 난동을 부리지 않는다’고 언급했는데, 감정을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이 옳은 감정이 되겠느냐”면서 “다른 위원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뇌물 등이 오갈 것이고 결국 올바른 감정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또 “미래지향적으로 봤을 때 감정위원 5명을 모두 의사로 바꾸고, 조정부에서는 의사를 제외해야 한다”며 “조정부가 감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5명의 전문가는 누구보다 냉철하게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암 위원장은 또 대불금 제도 재원 마련의 불합리성을 꼬집었다.
김 위원장은 “대불금 제도의 재원 마련은 진료과별 특성의 고려 없이 모든 진료과가 동일한 금액을 내야 한다. 하지만 이는 형평성에 어긋난 것”이라며 “진료과별 특성을 고려해 신중히 검토 후 시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산부인과학회는 의협과 함께 헌법소원 등을 제기할 예정이다.
그는 “의료분쟁조정법 46조 때문에 산부인과 의사들이 나서서 반대하고 있지만 실상은 의료계 전체에서 반대하고 있다”며 “의협에서도 TFT를 준비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새로 선출된 회장과 공조해 헤쳐나가겠다”고 밝혔다.
김암 위원장은 최근 정부에서 펼치는 정책으로 산부인과 의사들이 점점 더 살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당장 의료분쟁조정법 시행부터 오는 7월 포괄수가제 확대 시행, 초음파급여화 등으로 산부인과 의사들의 설 땅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는 것.
김 위원장은 “지난 2월 산부인과 전공의에 합격하고도 2명이 들어오기도 전에 그만뒀다”면서 “저출산 등으로 힘든 상황에 정부 정책들로 인해 사회적으로 산부인과 의사에 대한 인식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일련의 정책들로 인해 산부인과를 기피하게 된다는 것이다.
김 암 위원장은 “분만은 새 생명 탄생 등 숭고한 일인데 이를 정부에서 인정하고 지원해줘도 모자란 상황에서 자꾸 산부인과 의사들을 옥죄는 정책이 나오면 가뜩이나 기피과로 낙인 찍힌 산부인과에 누가 들어오겠느냐”고 꼬집었다.
결국 산부인과 의사 부족으로 임산부들이 분만 원정을 가거나 정부에서 산부인과 의사를 수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암 위원장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칭찬은 커녕 범죄자 취급이나 하지 않았으면 그나마 다행”이라면서 “의료분쟁조정법 저지에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