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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잘못이 아닙니다…암 전문의 고백

“암 환자는 위대하다!” 박종훈 고대병원 교수 출간


“나는 못고친 환자가 더 많아.”라고 고백하는 의사를 본 적이 있는가.

치료를 하고 또 치료를 하다 결국 구하지 못하고 보낸 환자의 영안실에서 밤늦도록 눈물을 뚝뚝 떨구고 있는 바보 같은 의사를 만나본 적이 있는가.

이 시대에 가장 많은 병중의 하나. 싸워서 이긴 전사, 또 현재 투병중인 환자, 또 결국 굴복해 버린 이들의 슬픈 사연이 많은 병. 암...

박종훈은 바로 그 병과 싸우는 환자들 옆에 누구보다 가까이 서있는 암전문 의사이다.

너무도 많은 환자를 접하고 너무도 많은 이별을 겪은 그이기에 세상에 널려진 ‘암극복 사례’, ‘암, 완치될 수 있다’ 라는 성공사례로 가득한 책들에 넌더리가 난다.

“암은 이길 수 없을 수도 있다”

이것이 돈키호테 같은 그의 지론이다.

암을 극복하면 성공한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실패자라는 시각에 누구보다도 암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전문의인 그는 반항하고 싶다. 아니, 반대하고 싶다. 그는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법을 구사한다. 암은 노력만으로 극복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같은 노력, 같은 치료법으로도 극복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환자가 있듯이, 암은 누구에게나 랜덤하게 닥칠 수 있는 병일뿐이다.

암 전문의 박종훈 교수가 펴낸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는 기존 암 극복 성공 사례에 이의를 제기한다. 여러 가지 성공사례를 담은 암 극복책들에 집착하는 환자들에게 혹시라도 치료에 실패해서 다가올 수 있는 죽음에 대해 다른 시선을 갖도록 경고한다.

그의 책에 나오는 많은 실제 인물들은 정말 나의 이웃이거나, 배우자일 수도 있기에 그의 경고는 누구보다 냉정하지만 그의 시선은 또 그 누구보다 따사롭다.

그래서 저자는 “나는 사실 못 고친 암 환자가 더 많다”고 솔직히 털어 놓는 것이다.

‘암으로 세상을 떠난 분들의 삶이 결코 암을 극복한 분들의 삶에 뒤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열심히 살았지만 명대로 살지 못한 것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닐뿐더러 결국 성공한 최선과 성공하지 못한 최선은 모두 나란히 위대하다고 역설한다.

비록 암을 극복하지 못한 이들이라도 그분들의 성실했던 삶은 암을 극복한 삶에 절대로 뒤지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는 암을 극복한 사례 대신 성실하게 치료를 받았지만 일찍 세상을 떠난 이들의 이야기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그만의 섬세한 어법으로 진솔하게 그려낸다.

중요한 것은 결코 암을 이겨낸 승리담이 아니다. 포기하지 않는 삶과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움에 진정한 승리가 있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갸우뚱하게 된다. 의사 선생님 맞나?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병과 싸우는 냉철한 의사라기보다는 따듯한 가족이자 친구, 이웃 아저씨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사망 환자의 문상을 가서 펑펑 우는 형님, 어린 암 환자에게 빼빼로를 선물하는 아저씨, 환자들 안위를 걱정하며 수시로 SNS로 소통하는 친구, 암과의 전투에서 한치의 양보도 없는 전사의 역할까지... 그가 들려주는 암 환자와의 이야기는 운명의 굴레에서 최선을 다하는 인간의 모습과 의료의 한계를 절감하는 인술인(仁術人)의 고뇌를 동시에 엿보게 한다.

우리가 삶이라는 긴 터널을 통과할 때 극복해야 할 난관이 과연 암 뿐이겠는가. 세상을 살면서 맞닥뜨려야 하는 수많은 어려움에 저항하는 많은 이들에게 이 책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싸우지 마라. 이겨내는 방법은 반드시 승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므로…”

암 대신 삶의 궤적을 위협하는 어떤 난관을 대입해도 결론은 마찬가지다. 그 어려움과 친하게 지내든, 결국 그 어려움에 굴복을 하든,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는 삶이 진정 아름다운 삶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비단 투병 환자 뿐 아니라 삶의 무게를 지고 가는 모든 이들에게 작은 힐링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