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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단체

1달러도 안 되는 월급에 고구마 장사 병행하는 북한 의사

"병원에서 월급과 쌀을 안 준다…시장에 가서 고구마라도 팔아야"

북한은 재정 부족에 기인한 비공식 의료시장이 만연하다. 이 가운데 약의 값어치는 종류와 무관하게 모두 상승했고, 자가 진단과 자가 치료도 상당수 이뤄지고 있다. 빠른 효과를 보기 위한 약물 남용도 심각한 수준이다. 

보건의료 분야 남북 교류가 물꼬를 트는 가운데 22일 오전 9시 그랜드 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서울특별시병원회 학술대회에서 서울의대 가정의학과 박상민 교수는 '북한의 보건의료 실태와 북한 주민의 질병관' 발제에서 이 같은 북한 주민의 질병관과 질병 행태를 반영한 맞춤형 보건의료서비스를 지금부터 준비 · 개발해야만, 향후 남북 보건의료 교류를 대비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북한 주민의 질병관을 이해할 때는 전통적 질병관을 비롯하여 사회주의, 사회주의 붕괴 이후, 빈곤 국가의 질병관 등 네 가지 축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박 교수는 "북한은 먼저 고려의학을 중시하는 전통적 질병관, 즉 주로 증상 위주의 한의학적 질병관이 있다. 이어 사회주의 체제에서 보건의료서비스를 경험한 경우 무상의료, 예방의학, 정성의학의 영향을 받는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에는 비공식 의료비 및 개인 책임이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 아울러 북한은 대표적인 빈곤 국가다. 빈곤 국가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것이 민간요법 및 전통 치료다. 공공의료기관과 사설의료기관이 양립한 상태에서 자가 진단 · 치료와 진단 및 치료과정 중 약품을 중시하는 경향이 혼재돼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 보건의료 문제는 대개 재정 부족이 원인이다. 재정이 부족하면 의료인에게 월급을 지급하기 어렵다. 

북한 출신 의사들은 '월급이 1달러도 안 된다. 월급만 가지고는 살 수 없다.'며, '병원에서 월급과 쌀을 안 준다. 시장에 가서 고구마라도 하나 팔아서 돈이라도 버는게 낫다.'고 토로한다. 

교수는 "북한 의사도 생계를 위해 나름 방법을 찾아야 한다. 월급을 받지 못하는 의사들은 근무 중 시장에 나가 장사를 한다. 병원 원장도 의사들에게 장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준다."고 언급했다. 

이 가운데 비공식 환자부담금은 암암리에 발생한다. 북한 주민은 원하는 서비스를 받기 위해 술 · 담배 등의 뇌물을 의사에게 제공한다. 

2013년 북한 출신 약사가 조사한 '치료 행위의 시장 가격'을 살펴보면, 3일분의 진단서는 0.5~0.8불, 충수염은 15~30불, 제왕절개수술은 16~32불 등으로 나타났다. 특히 진단서의 경우 '진단서 떼는 사람이 진료소에 오면 진단서만 떼주고 침 맞는 것은 저녁에 집으로 오라고 한다. 집에 올 때는 빈손으로 오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비공식 환자의 증언이 있다. 

박 교수는 "질환의 심각성, 진단서 발급, 치료 · 약물의 우선순위를 결정할 때 증상 위주로 판단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북한 환자는 증상을 강하게 호소하는 경향이 있다. 이 같은 경향은 북한 이탈 주민에게도 나타난다."며, "약은 고난의 행군 이후 재산가치로 간주되고 있다. 진료 행위와 같은 무형 행위에 대한 경제가치는 상대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의약품의 비공식 의료시장 유출은 북한 사회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모든 약은 상품 값어치를 가지며 약의 가격은 규정 없이 책정된다. 장마당에서 물품이 많으면 가격이 내려가고, 고갈되면 가격이 높아지는 식이다. 

교수는 "비공식 의료시장이 존재하며 사회주의 의료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상태에서 환자는 자가 진단 · 치료를 늘리게 된다. 두통이 있으면 두통약, 소화가 안 되면 소화제 등 증상을 스스로 판단해 관련 약을 장마당에서 구하는 경우가 많다."며, "빈부 격차도 존재한다. 설문조사에서 57%의 북한 주민이 돈이 없어서 필요한 약을 구하지 못했다고 답했다."라고 했다.

자가 진단 · 치료는 약물 남용으로 이어진다. 약 복용은 주관적 증상 여부에 따라 결정되므로 즉각적 효과가 나타나는 항생제, 진통제, 수면제, 소화제를 과다 복용하는 경향이 있다.

박 교수는 "북한 이탈 주민 중 진통제 한 알을 먹고 1시간 뒤 효과가 없으면 두 알을 먹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시장에서 파는 진통제나 프로포폴을 남용하는 경우도 있다. 주사제제 선호도도 높다."며, "북한에서는 약제 부족 시 마약성 진통제로 아편을 달여서 처방하기도 한다. 병원에 가지 않는 환자는 자기 밭에서 재배해 직접 달여먹기도 한다."고 말했다.

고려의학, 즉 한의학은 주체의학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장려된다. 그러나 한약은 복용이 불편하고 즉각적으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뜸이나 부항과 같은 효과가 빠른 치료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교수는 "현 북한의 비공식 의료시장 확대는 증가하는 만성질환을 대처하기에 매우 취약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또, 증상 위주로 약을 먹기 때문에 고혈압약도 증상이 있을 때만 복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북한이주민의 체형 인지도를 살펴보면, 만성질환 예방 측면에서 상당히 취약한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건강체중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많은데 과체중인 북한이주민 중 65%는 자신이 정상 체형이라고 생각하며, 저체중도 50%는 본인이 보통이라고 인지한다. 식사 습관도 3분의 1 이상이 하루 한 끼밖에 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북한 이주민의 영역별 건강정보 이해도를 살펴보면, 당뇨병 · 생활습관병 및 식품영양성분표의 나트륨 확인 문항에서 낮은 정답률을 보였다. 교수는 "과체중, 당뇨병, 생활습관병 등 관련 건강정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추후 남북 교류가 활발해질 경우를 대비해 연구를 하고 적절한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북한 주민은 스트레스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없다. 북한 주민 대부분이 남한에 와서야 스트레스 등 심리적 이유로 질환이 생긴다는 개념을 처음 접한다. 

박 교수는 "북한 주민은 심리 · 정서와 관련한 문제를 신체 증상으로 많이 호소한다. 그런데 북한 출신 의사와 말을 나눠보니 북한에서도 심장신경증이라는 용어가 널리 쓰인다고 하며, '신경을 썼더니 소화가 안 되네'라는 용어도 대명사로 쓰인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을 미뤄보아 적절한 커뮤니케이션이 있다면 심리와 신체가 함께 간다는 부분을 북한 주민에게도 어느 정도 제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박 교수는 "북한이주민의 이주 정착 시기에 따라 다양한 보건의료서비스를 맞춤형으로 개발하기 위한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 북한 주민의 질병관 및 질병 행태를 고려하여 사회화 및 문화 친화적인 보건의료서비스를 지금부터 준비해야만, 추후 보건의료 협정이 이뤄지고 북한 주민이 우리나라에 와서 진료를 받을 때를 대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