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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단체

뒷전으로 밀려난 아동학대 신고 의료진 신분 보호

엄격한 신고자 신분 보호 장치에도 현실에서는 글쎄
신분 보호 위한 의협-경찰청 협의체 구성 제안

“아동학대 신고를 무슨 접촉사고처럼 처리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가끔 훈련 안 받으신 경찰분들이 오면 그냥 빨리 해결하고 싶어 하시거든요.”

지난달 20일 전북지역 경찰이 아동학대 의심 사례 신고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신고한 의사의 신분을 노출해 해당 의사가 가해 의심 부모에게 폭언을 듣는 등 정신적 피해와 여러 고초를 겪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에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의료계가 의사 등 아동학대 신고인의 신분 보호 마련을 촉구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대병원 소아응급의학과 곽영호 교수는 17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같이 꼬집었다.

곽영호 교수는 “사실 신고를 하면 황당하게도 신고받는 사람 중에 ‘설명하다 보면 병원에서 신고했다고 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라서 (가해 의심 부모와) 이야기하다가 알게 된다’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며 “경찰이나 관계 공무원 등 신고받으시는 분들이 신고하는 쪽의 신분을 적극적으로 보장해줘야 하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인식이 부족한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 때가 꽤 있다”고 털어놨다.

즉, 가해 의심 부모와 상담하다가 결국 신고자가 신고한 내용을 설명하게 되는데 신고내용 속에 신고자의 신분이 자연스럽게 노출돼 가해 의심 부모는 신고자를 의사나 간호사로 특정 짓는다는 것.

그렇다고 아동학대 범죄를 목격하거나 의심될 때 신고를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아동학대처벌법) 제10조 2항에 따르면 신고 의무자(의료기관장, 의료인 및 의료기사, 정신의료기관, 응급구조사 등)는 직무상 아동학대 범죄를 알게 되거나 의심이 있는 경우에는 수사기관에 즉시 신고하도록 명시하고 있으며, 신고하지 않은 경우 500만 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곽 교수는 “의료인들 스스로도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지 않도록 신고할 때부터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 있고, 본인이 신고하고 나서 바보같이 가해 의심 부모에게 신고했다고 설명하는 사람도 놀랍게도 부지기수”라며 “무엇보다 신고자를 보호하는 게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동학대처벌법 제62조를 강조했다.

아동학대처벌법 제62조(비밀엄수 등 의무의 위반죄)에 따르면 비밀엄수 의무를 위반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이나 5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물론 제62조 2항(불이익조치 금지 위반죄)에 따라서 아동학대 범죄 신고자 등에게 파면, 해임, 해고, 그 밖에 신분 상실에 해당하는 신분상의 불이익조치를 한 자 역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이처럼 신고자의 신분을 엄격하게 보호하는 장치가 법에도 명시돼 있지만, 현실에서 잘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곽 교수의 지적이다.

곽 교수는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과의 협의체가 지역별로 구성돼서 신고자 신분 보호 대처를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가 계속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협의체나 위원회를 구성해 교육이 필요한 경찰분들을 모아준다면 대한소아응급의학회 차원에서나 개인적으로나 가서 교육해줄 용의가 충분한데 아예 (경찰분들이) 만나주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또 그는 관련 기구나 지역별 협의체 설치를 의협이 경찰청에 먼저 제안하는 방안도 제시하고, 사복 차림의 경찰이 아닌 정복 차림의 경찰이 병원에 오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가해 의심자가 칼 같은 것을 들고 위협할 때 정복경찰이 오시면 안심이 되긴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닌데 병실이나 응급실에 나타나면 병실 분위기도 가라앉고, 보호자 분들도 놀라고, 신고자 신분 보호도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곽 교수는 지난 7월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주최한 의료기관 아동학대 신고율 제고 방안을 모색하는 정책토론회 자리에서 ▲의대생, 간호학과 학생, 응급구조학과 학생 등의 교육 과정에 아동학대 관련 교육 과정 포함 및 국가고시 시험에 아동학대 관련 문제 출제 ▲신고 요령에 대한 병원별 실질적인 교육 마련 ▲각 학회 학술대회 필수교육 평점 포함 등을 제안한 바 있다.

당시 이 자리에서도 아동학대 신고를 경험한 의료진이 수사 과정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어려움이 신고율을 낮추는 주요 원인으로 지적됐다. 

의료진이 신고를 주저하게 되는 원인으로는 ▲신고자의 신분 보장과 법적 보호 미흡 ▲신고 시스템의 불편함 ▲이전에 신고했을 당시 겪었던 불편했던 경험 등이 꼽혔다. 특히 이번 사례처럼 조사과정에서 신고자 신분이 노출됐을 경우 해당 신고자(의료진)는 위협과 민원에 시달릴 우려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신현영 의원은 17일 “이런 사례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아동학대 의심 상황 발생 시 의료진은 의학적 소견만 체크하고, 이런 정보가 전담기관과 연계되어 신고 자체는 기관 차원에서 진행되는 방안 등이 필요하다”며 “필요하다면 아동학대 신고를 잘하는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인센티브 등 정책적 지원을 마련해야 한다. 신고 의무만을 강요하기보다 의료진이 안전하게 신고하고 아동학대 피해자 발굴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환경을 구축하는 게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의료기관 아동학대 신고 시스템을 개선해 의료인의 신고 의무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이를 위해 법적, 제도적으로 지원이 필요한 부분을 검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