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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료정책의 문제점 및 발전방향

이화의대 예방의학교실 정상혁 교수





        

세계화와 개방화의 물결은 각 국가간에 있어서 시간적으로 다소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머지않은 장래에 모든 국가가 하나의 체계 안으로 편성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세계 의료시장 곳곳에서 개방의 움직임이 진행 중에 있지만 2005년 1월부터는 국내 의료시장에 있어서도 개방의 수순이 점차 진행될 것이다.
최근 국무회의를 통과한 경제자유구에서의 외국인 영리병원의 설립과 내국인 진료허용 관련 법안은 외형적으로 경제자유구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주 대상으로 한다고 정부에서 발표하고 있으나 이는 향후 국내 의료시장 개방과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세계적 환경변화 속에서 한국의 의료정책은 어떠한 방향으로 수립되어야 하고, 무한 경쟁시장 속에서 한국의 보건의료계가 살아남기 위해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계산해야 할 시점에 놓여 있다.
 
한국의 보건의료계의 생존 방향을 검토하기 위해서는 먼저 과거를 조명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의사인력은 해방이후 1960년대 말까지 미국의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제도 도입으로 인하여 대부분의 인력이 미국으로 빠져나갔다.  결국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의사인력이 정상적으로 배출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1977년 박정희정권의 의료보험 도입과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정권에서 선심성 정책의 일환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12년이라는 시간 만에 전국민의료보험을 단행하였다. 
 
이처럼 적정한 의사인력 공급 등 제반 하부 여건이 부족한 상태에서 국민들의 의료이용 접근도를 극대화하면서 많은 문제점을 낳게 된다(참고로 현재 우리나라 국민들의 연간 의사방문횟수는 미국의 약 2배에 달하고 있다).  그 중 첫 번째가 의사인력 수급에 대한 철저한 예측과 분석없이 이루어진 대규모의 의과대학 신증설이다.  의료보험 확대 후 의사인력의 부족을 직감한 정부는 지역에 대한 선심성 정책의 일환으로 여러 지역에 의과대학의 신증설을 허가해 주면서 현재 인구대비 의과대학 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로 변화되었다.  2005년에는 인구대비 의사 공급수가 적정선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 이후 의사의 과잉공급으로 인하여 많은 사회적 문제가 야기될 것으로 전망된다. 과거 10년여에 걸치는 많은 논란 끝에 2005학년도부터 의과대학 신입생의 수가 10% 감축될 예정이다.  그러나 의과대학 신입생의 감축규모는 최소 30% 이상이 되어야 적절할 것으로 예측되는 바 정부는 향후 빠른 시일 내에 추가 감축을 단행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1989년 7월 1일 전국민 의료보험을 실시하면서 농어촌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불만을 무마시킨다는 이유로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전국적 약국의료보험을 도입하였다. 이는 약가에 대한 보험적용이 아니라 약사들에게 질병에 대한 임의진단, 약의 처방, 조제권을 허용하게 한 조치이다. 이로 인하여 약사들은 임상약료 과정을 개설하고, 약학대학 6년제 도입 정책을 제안하며, 스스로를 내과의사로 오인하게 하는 참 이상한 결과를 가져오게 하였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하여 의약분업은 피할 수 없는 하나의 정책과정이 될 수밖에 없었으며, 의료비에 대한 적절한 조달과 대안이 수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실시되어 의약분업 사태를 초래하고 만 것이다.
 
세 번째는 의료수가의 과학적인 분석과 적절한 책정 없이 주먹구구식의 왜곡된 수가인상을 거듭하면서 한국의 의료체계는 매우 일그러진 모습으로 변화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요양기관 종별 차등가산율제도의 변화이다.  의료보험 당시부터 여러 논란을 거치면 존속하던 이 제도는 1989년 7월 1일 전국민의료보험과 의료전달체계(사실상 ‘환자의뢰체계’로 저자의 연구에 의하면 정책효과는 거의 없었음)가 동시에 이루어지면서 3차 의료기관의 수익성 악화를 막기 위하여 3차 의료기관에 대한 가산율을 20%에서 30%로 인상하였다.  이 이후 한국의 의료서비스 공급은 3차 의료기관이 주도하게 되고 점차 대형화하면서 대부분의 환자를 흡수하여 일반 중소병원의 도산율(최근 매년 11%대에 이르고 있음)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이처럼 공정한 경쟁이 아닌 차별화된 수익구조를 형성해 놓고 시장에서 공정 경쟁을 하라는 것은 터무니없는 의료정책의 표상이 되고 있다.  또한 의료 전문과목간의 불합리한 수가구조로 인하여 정작 육성 발전시켜야 할 전문과목과 흉부외과 등 많은 노력과 고생 끝에 취득한 일부 전문과목의 경우 전문의제도가 몰락의 위기에 접하고 있음은 익히 알고 있는 바다.
 
이외에도 과거사에 있어서 많은 논의가 있을 수 있으나 앞서 언급한 주요 과거사를 바탕으로 한국 의료정책의 진로와 발전방향에 대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우리나라 보건의료제도가 미래를 위한 제도가 될 수 있도록 체질을 개선하여야 한다. 과거 군사정권하에서 구축된 우리나라 보건의료제도는 철저한 상명하복의 군사문화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보건의료종사자는 무조건적으로 보건복지부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 없도록 보건의료 관계법이 제정되어 있다.  지금 당장에는 정부가 보건의료인들을 통제하기에 용이할 수 있으나 향후 세계화와 개방화의 시대에 있어서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반드시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규제관련 법규들을 근거로 정부가 통치할 수 있는 시대는 이제 막을 내리고 있다.  최근 들어 많은 불만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리고 있다.  국민 각계각층은 각계각층대로, 보건의료인은 보건의료인대로 모든 것을 정부의 책임으로 돌리고 정부가 무엇을 해주기를 바랄 뿐이지 스스로 무엇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민간에서 스스로 무엇을 한다는 것은 모두 위법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빠른 시간 안에 기본적 사항을 제외한 규제 철폐를 단행하여 민간 시장 스스로가 움직일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둘째, 형평과 효율에 대한 논의의 종식이 필요하다. 보건의료분야는 형평과 효율에 대한 논란이 그다지 필요한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가에서 재원을 조달하여 저소득층에 대한 보건의료를 책임지고 그 외에는 최고의 효율을 추구하기 위한 시스템으로 변화되어야만 무한 경쟁의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다만 국가의 경제 규모에 따라 국가가 책임을 질 수 있는 인구의 비율이 변화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미국은 연방정부 예산의 23% 정도를 할당하여 인구의 15%에 해당하는 저소득층의 보건의료를 책임지고 있다.  세계 모든 국가에서 시스템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시스템의 사회화를 지향하는 것은 결코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할 수 없다는 것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우를 범하는 경우가 많다.
 
셋째, 보건의료산업이 미래형 산업임을 인식해야 한다.  보건의료산업은 선진국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수익창출 산업이다.  그리고 이 분야는 미래에 있어서도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는 분야이다.  보건의료산업의 미래지향적 부가가치 영역을 생명공학분야라고만 생각한다면 이는 정말 우물안 개구리식의 생각이다.  생명공학 분야가 되었던 어떤 분야가 되었던 그것이 진정한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의료서비스의 영역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민간 스스로가 그러한 일들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도전할 수 있는 여력을 만들어 주기 위한 제도적, 재정적, 시간적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미 탈진한 상태에 있는 한국의 보건의료 인력들에게 새로운 활력소를 공급해 주기 바란다.
 
넷째, 모든 국민이 요구하는 의료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좋은 시장은 다양한 요구와 다양한 공급이 서로 만나는 것이다. 국민들이 요구하는 다양한 의료의 질과 비용, 보건의료인이 공급하는 다양한 의료의 질과 비용이 서로 만날 때 가장 효율적인 의료시스템이 형성될 수 있다. 다양함이 존재하는 그런 의료시장만이 미래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다섯째, 민간자원을 활용한 공공보건의료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최근 국가 공공보건의료의 강화라는 것이 이 분야의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충분한 보건의료 시설과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시설들을 활용하여 국가시스템의 효율 극대화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공공의 재원을 확보한 후, 이를 바탕으로 공공보건의료를 제공하여야 할 사람들에게 민간 보건의료서비스 기관들이 서비스를 공급하는 시스템으로 가야 민간도 살고 공공의 목적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국가는 이러한 시스템이 효율적으로 기능하도록 하기 위해 기획 기능과 평가기능을 극대화하는 정책을 구사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보건의료는 1977년 의료보험제도의 실시 이후 지금까지 모든 재원조달을 의료보험 재정에 의지해 오면서 많은 질병에 걸려 있다. 향후 이러한 질병들에 대한 과감한 수술과 치료 없이는 세계화, 개방화라는 높은 파도를 이기지 못하고 침몰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음을 느낀다. 지금 그 물결이 어느덧 우리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