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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진료비 청구 정당성 문제 해결을 위하여

의료와사회포럼 정책위원 안용항


4월 23일에 발표된 “의료기관의 진료비 불법청구에 대한 시민사회환자단체 입장”이라는 경실련 외 몇 개의 시민단체의 발표문을 보면 “건강보험 요양급여기준의 개선에 있어서는 환자와 국민 그리고 의료인과 의료기관의 이해가 100% 일치한다.

이들이 서로 협력하여 정부, 심평원에 대하여 환자는 요양급여기준의 개선을 요구하고 의료전문가는 의학적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의료전문가들이 요양급여기준이 잘못되었다고 주장만 할뿐 의학적 근거 제시에는 적극적이지 않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정말 의료전문가들이 의학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을까? 의사들의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의학적 근거를 제시해도 그것과 관계없이 심평원에서 일방적으로 처리한다고 호소한다.

심지어 ‘심평원의 기준으로 치료해서 환자가 피해를 입더라도 그냥 눈감고 가자’는 자포자기식 심정을 가진 의사들마저 곳곳에 생겨나고 있는 상황이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복지부와 심평원의 일방적 치료기준의 부당성에 저항하고자할 의욕마저 상실하고 있고, ‘극히 일부’ 용감한 의사들만이 의학적 정신에 따라 법정으로 그 문제를 끌고 간다.

법정에서의 진료비 청구 정당성 문제 해결도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의학의 특성을 전혀 모르는 판사의 입장에 서보면 얼마 동안 지속될 법정 공방에서 복지부의 진료 기준이 정당한지를 알기 어렵다.

10년 이상을 의학만 공부한 의사들 사이에서도 치료기준의 차이가 있을 정도인데, 불과 몇 번의 법정 공방으로 판사가 의학적 특성을 이해하기를 바라기 어렵다. 따라서 대부분의 판사들은 중간적 이해 점을 선택하거나 그동안 진행되어온 관료주의적 관행에 따라 복지부의 손을 들어주기 쉽다.

불법 진료비 청구와 합법 진료비 청구의 기준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고민이 필요하다. 즉 불법과 합법의 기준이 ‘1.의학적 관점’에서 만들어 질 수도 있고. ‘2.관료의 관점’에서 만들어 질 수도 있다. 그리고 ‘3.일반인들의 정서적 관점’에서 만들 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세 가지 관점은 전혀 다른 결과의 진료비 청구 기준을 만들게 한다. 의학적 관점이란 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시각에 따라 만들어지는데 진료비용의 과다문제보다는 가장 빠르고 적절한 치료에 좀 더 우선순위를 두게 된다. 의학적 관점과는 달리 관료의 입장은 가장 좋은 치료가 아니라 가장 저비용의 치료에 더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다.

관료들은 치료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오직 비용에만 신경을 쓴다. 복지부와 심평원의 모습이다. ‘일반인의 정서적 기준’은 저비용과 최대치료 모두를 원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

이들은 치료에 대한 의학적 지식이 없으며 따라서 치료는 의사들의 문제가 되며, 국가전체의료비용의 문제도 자신의 눈앞의 문제가 아니라 복지부의 문제로 돌리기 쉽다.

이 세 가지 관점은 커다란 패러다임의 차이를 가지고 있는데 토마스 쿤의 이론에서 말하는 아주 넓은 의미의 ‘공약불가능’을 만들게 된다. 즉 공통분모가 없는 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합리적 합의를 만들 수 없고 갈등만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갈등은 서로를 향해 '비난을 위한 정치적 공방'만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같은 정치적 공방이 작게는 경실련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의 ‘성명서’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크게는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의 ‘불법의료비 환수법 제정’에서 나타난다. 아무리 법을 만들고 성명서를 발표해서 서로 비난하고 규제해도 패러다임의 차이는 좁아지지 않는다. 그래서 갈등은 지속되기 마련이고, 그로인해 발생하는 부작용에 대한 책임 공방만 더욱 심해질 것이며, 결국 서로 억울함을 호소하기위해 법정으로 몰려가게 될 것이다.

토마스 쿤은 공약 불가능한 패러다임의 차이는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가 승리한 쪽의 주장이 그 사회의 올바른 주장으로 받아들이게 된다고 하지만, 그냥 내버려두면 그것은 오랜 전투 후에나 달성 될 것이고 그 동안 많은 터무니없는 상호 불신과 피해의식에 시달리게 되고 그에 따른 피해가 계속 발생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본인의 주장을 이러하다. 다양한 관점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자신의 관점이 어떠하든 관계없이 공정한 게임을 위해 규칙을 합의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다원화된 사회의 합의 방식으로, 리오타르가 포스트모던 사회의 공동체의 유대 본성으로 파악한 것과 유사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모두 볼 수 있게 1.진료비 심사 기준을 공개하고 2. 매년 갱신된 기준에 따라 합의 계약하고 3. 합의한 기준에 따라 치료를 했을 경우 발생하는 책임은 상호 양해한다는 것이다. 물론 몇 가지 예외조항도 합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합의와 계약 정신은 자유민주주의적 정신과도 일치하는 것으로서 자유민주적 계약과 계약에 따른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이 의학적 정신과 일치하지 않는 면이 많아 문제가 발생하겠지만 시대적 흐름에 따르며 상호간의 충돌을 최소화 시키는 방법일 것이며, 관료들에게는 모든 것을 관리(통제)하고자 하는 관료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이러한 접근이 완전히 갈등을 해소해주지는 않을 것이지만 세 가지 관점의 사람들에게 부분적 양보를 받아내는 대신 공동의 책임의식과 상호 정신의 차이를 인정하게 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