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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의료일원화 필요성’ 논의만 하다 끝날 것인가?

2009년 마지막 주인 28일 월요일 오전부터 시작된 ‘의료일원화’에 대한 토론회가 예상했던 대로 토론만 하다 끝나고 말았다.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안홍준 의원(한나라당, 제1사무부총장)이 주최하는 이번 토론회는 '의료일원화 필요한가? 그리고,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하에 '보건의료의 미래'를 살펴보는 자리였다.

하지만 의료계와 한의계 간의 본질을 다루는 문제라 토론자 선정부터 쉽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안 의원측은 토론자로 유용상 위원장(대한의사협회 의료일원화특별위원회)과 한정호 교수(청주성모병원), 최방섭 회장(대한개원한의사협의회), 임병묵 교수(부산대학교), 노길상 정책관(보건복지가족부), 신재원 기자(MBC 의학전문)를 참여시켰다.

안 의원은 “현대의학과 전통의학 이원화 체계에서 일원화해야 한다는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어 왔지만 정부의 관심부족과 이해관계가 얽혀 제대로 검토된 적이 없다. 지금이라도 의료일원화와 관련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라며 "이번 토론회를 통해 전문가와 각계 대표가 범국민적인 논의를 하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안 의원의 이런 기대와는 달리 토론회를 바라보는 의사계와 한의사계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의협은 토론회의 졸속진행과 한의사들의 진료범위확대를 우려했고 한의사협은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할 수 없다는 소극적인 답을 내놓았다.

이렇게 의료일원화에 있어 한의계가 의사계보다 수세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서양의학이 짧은 역사에 비해 비약적인 진보를 하고 있는 반면 2천년이상 우위를 점해 온 동양의학이 더 이상 새로운 의학적 이론이나 술기를 못 내놓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말은 곧 한의학의 독보적인 오만함과 자만이 결과적으로 오늘의 정체성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서양의학은 꾸준한 개혁과 과학화에 의해 놀라운 진보를 거듭하고 있다. 이론은 물론이고 술기와 각종 첨단 의료기기 및 장비들이 끊임없이 개발되고 있어 앞으로도 무한한 발전이 예상된다.

물론 서양의학과 전통의학의 본질은 인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방법이 다를 뿐 치료의 목적은 같다고 주장한다면 논의 자체는 무의미해진다. 문제는 치료의 목적이 아니라 과정에 있다. 인체 즉, 생명을 다루는 의료행위는 순간의 실수나 판단착오를 용납할 수 없다. 그래서 확진판정을 내리기까지 수많은 검사와 진료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만약 몇 번의 진맥과 환자의 상태만을 보고 내린 처방이 병을 더 악화시킨다면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

동양의학의 메카라 할 수 있는 중국도 1949년 모택동 집권 이후 중의학(中醫學)을 현대화하는 과정에서 1958년 11월에 ‘중의학과 서양의학은 상호 서로 배우자’라는 구호아래 중서의결합의사(中西醫結合醫師)제도를 만들었다. 그 결과 현재 중국에서는 서의(西醫), 중서의결합의(中西醫結合醫) 및 중의(中醫)의 3종류가 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서의와 중서의결합의만 정규과정 의학교가 있고 순수한 중의(中醫) 의학교육은 개인교수 범주에 의해 이어져서 후계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일부 교수에 의해 한방을 제도의료권에서 추방하자는 논의가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과 미국은 일찍부터 서양의학을 제도권의료로 정해놓았고 일부 한의계의 침술과 한방요법 등을 보완하고 있는 정도이다.
이러한 세계의 흐름에도 우리나라는 꿋꿋하게 보건의료에 대한 뚜렷한 목표설정도 없이 1951년 국민의료법이 창설되면서 한의사란 명칭이 법률에 등재된 이후 세월이 지남에 따라 이원화가 점점 더 고착화 되고 있다. 여기에 97년 1월 한방정책관실까지 만들어 국가적인 의료정책의 방향마저 2원화시켰다.

현재 우리나라와 같이 정부차원에서 이원화를 강행하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되겠다. 이원화는 무엇보다도 국민의 건강과 행복을 추구함에 있어 바람직하지 못한 측면이 크기 때문에 정부는 이 문제를 공론화 시키는 게 급선무다.

만약 정부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국민들로 하여금 생명을 담보로 한 의료행위 선택하는데 병원이냐 한의원이냐를 고민하게 하고 갈림길에 서게 한다면 큰 혼란과 피해를 초래할 것이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한의원이나 민간요법에 의존하다 병을 악화시킨 후에 병원을 찾게 되면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의계는 의료법 개정으로 한방병원에서 영상의학과 의사를 고용해 CT사용은 물론, MRI같은 첨단의료장비까지 사용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오히려 양방의료장비 도입은 한의계의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장비 몇 개만을 들여놨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의료장비보다 국민들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책임져야 하는 정부가 의료일원화를 미루고 있는 것이다. 의료계 또한 시작만 해놓고 30년 가까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모습은 반성해야할 부분이다.

지난 1992년 의료계는 “의학교육 일원화를 통한 의료일원화”로 요약되는 한방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마련해 놓았으나, 뚜렷한 성과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물론 한 순간에 한방과 양방을 통합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미 한방 의료기관의 숫자가 만개에 육박하며, 연간 한방 의료기관의 요양급여 비용이 1조원에 달하는 등 한방은 제도권내에 확고히 자리 잡은 상태다. 일반 국민들도 오랫동안 한방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정부의 노력과 의지가 없이는 의료일원화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 뿐이다.

의료계 역시 하나의 목소리로 의료일원화를 외쳐야 한다. 이번 토론회에서 나온 의견은 대부분 양한방 협진으로 모양새만 바꿨을 뿐 결론은 없다. 그나마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는 것은 지난 2004년 의협 의료정책연구소가 내놓은 4단계 방법론이다.
1단계 협진, 2단계 병원급통합, 3단계 면허의 통합, 4단계 완전일원화다. 4단계의 경우 교육기관을 포함한 모든 체계를 일원화하자는 것이다.

토론회에서는 이 방법도 협진과 상호영역허용 부분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대만의 복수면허자 교육과정을 도입한 면허 통합이 추가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서 면허 통합의 전단계로 협진촉진단계를 2010년부터 시행할 방침이다. 그 다음엔 통합기반 조성을 한다. 제2단계는 통합 본격화로 병원급 통합과 복수면허 교육과정 도입 그리고 상호진료허용과 연구 등을 하고 마지막 3단계는 통합의 성숙기로 면허의 통합과 교육이다.

이렇게 의료계와 정부는 의료일원화를 위해 이론적 토대는 마련한 것 같지만 실천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특히 한의계의 반발과 국민적 무관심도 의료일원화에 큰 걸림돌로 작용할 것 같다.
새해에는 국민의 건강과 미래의 의학을 위해 양ㆍ한방의 소모적인 이원화가 아닌 생산적인 일원화를 위해서 힘을 모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