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혁신형 제약기업’을 선정해 키우면 제약업계가 재편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들의 기대는 맞을까? 대답부터 하면 아니다에 가깝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상적인 얘기’, ‘뜬구름 잡는 허무한 얘기’라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오히려 그 피해가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됐던 상위제약사에게 ‘당장’ 피해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
정부의 자신감은 이번 약가인하 정책으로 인해 대부분의 상위제약사들이 판관비 대신 R&D에 투자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깔려있다.
주요 상위제약사 가운데 2010년 기준 매출액 대비 R&D 투자율이 높은 회사들은 벌써부터 ‘혁신형 기업’이 될 것으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복지부가 혁신형 제약기업 선정과정에 대한 예시로 기업의 매출액 대비 R&D투자비율을 ▲연간매출액 1,000억원 이상 기업 : 7% 이상 ▲연간매출액 1,000억원 미만 기업 : 10% 이상 등으로 제시함에 따라, 이를 넘긴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고지에 있다는 것.
매출액 대비 R&D투자율이 높은 업체들로는 LG생명과학(19.3%), 한미약품(13.6%), 종근당(9.4%), 동아제약(7.7%), 녹십자(7.2%) 등이 대표적이다.
복지부가 일정 규모 이상의 R&D 투자 실적을 나타내는 ‘혁신형 제약기업’에 대해서는 최초 1년간 약가 수준을 현행과 동일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우대 조항을 명시했다는 점에서 이들 업체의 경우 큰 폭의 약가인하 가능성은 제한적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증권가에서는 동아제약, 한미약품, 녹십자 등을 비교적 안정권에 있는 업체로 꼽으며 투자유지 의견을 내놓고 있다.
미래에셋투자증권 신지원 애널리스트는 “혁신형 제약기업의 기등재의약품에 대한 약가산정 또한 추가적인 인센티브 부여 방안 마련 가능성이 있어 동아제약, 한미약품의 경우 우려하는 수준의 큰 폭의 약가인하 대상 기업에서 제외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하이투자증권 이승호 애널리스트는 녹십자를 이번 약가인하 최대 수혜주로 꼽으며 “약가 및 리베이트 규제정책에서 자유로운 혈액제제, 백신, 수출위주 제품 포트폴리오 특성으로 제약산업 중 유일하게 성장성 훼손이 없고 혁신형 제약기업 선정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업계의 의견은 대부분 절망적이다. 복지부의 발표를 상세히 들여다보면 제약산업의 구조와는 겉도는 정책이라는 주장이다.
먼저, 주요 상위제약사들의 내년도 매출액이 기존 예상치보다 많게는 1,000억원 이상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2010년과 같은 투자율을 가져갈 수 있을까하는 점이다.
오는 2012년 9,900억원~1조원 수준의 매출이 기대됐던 동아제약의 경우 약가인하 정책 발표 직후 각 증권사들이 예상치를 9,000억원~9,200억원대로 대폭 낮추고 있다. 증권가 예상대로라면 약가인하로 내년 한해에만 약 1,000억원 가량의 손실이 나는 셈이다.
문제는 동아제약 뿐 아니라 그간 신약개발과 퍼스트 제네릭 개발로 약가우대를 받아왔던 상위제약사들이 이처럼 많게는 1,000억원대의 피해를 입게 될 상황에 처했다는 것.
한 제약사 관계자는 “이번 약가인하 정책은 신약개발과 퍼스트 제네릭 생산 기술력에 투자하며 경쟁력을 쌓아 온 상위업체들에게 ‘제 살 깎아먹는’ 개발을 해왔다고 선고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복지부가 발표한 정책은 오리지널과 퍼스트 제네릭을 보유한 업체일수록 약가인하 폭이 높아지게 돼 있어 타격이 훨씬 크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복지부는 혁신형 제약기업에 대해 세제감면과 자금조달비용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이 역시 탐탁찮은 반응이다.
일각에서는 약가인하로 인한 손실이 세제감면 등으로 메워질 것이라는 의견도 있으나, 대부분은 복지부의 계획이 제대로 추진 될 지부터 의문이라는 분위기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복지부가 지금 발표한 정책에 대해 전부 추진할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복지부의 발표는 이제부터 상위 부처와의 논의를 해야 할 시작에 들어선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정부의 정책이 겉포장만 그럴싸한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지 의문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