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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단체

“병원 경영위기 돌파구는 경쟁 규제와 인력확충 뿐”

노조, 과잉투자가 원인…노동자와 국민에 책임전가 말라

병원계에 ‘비상경영’ 열풍이 불고 있다. 서울대병원 역시 최근 오병희 원장이 취임하고 지난해 적자와 경제위기 등으로 환자가 늘어날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며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했다. 다른 상급종합병원도 비슷한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노조의 해석과 주장은 다르다. 병원계의 주장하는 위기설은 부풀려졌다는 것.

전국공공운수 사회서비스노동조합 의료연대본부는 12일 성명을 통해 “병원계가 정확한 근거 없이 경영위기를 부풀려 인건비 등을 줄이는 등 노동자와 국민에 부담을 지우려 하고 있다”며 “지금 필요한 것은 병원 간 과도한 경쟁규제와 인력확충”이라고 주장했다.

의료연대본부는 비상경영이 필요한 전제로 언급한 현 상황에 대한 객관적 현실 진단이 잘못됐고, 그에 대한 해법도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더 심각하게 만들 방안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해의 경우에도 서울대병원 등 상급종합병원들의 적자 폭이 회계장부상으로는 큰 것으로 나타났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다.

의료연대본부는 “회계 장부상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했지만 이는 ‘고유목적사업준비금’, ‘감가상각비’ 등, 실제 비용 지출은 없지만 회계장부상으로 비용으로 잡혀 경상비용이 많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항목 때문이지, 실제 병원들이 재정 적자를 많이 본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예를 들어 서울대병원의 경우 병원이 발표한 지난 해 경상수지 적자는 127억 원이지만 회계상 비용으로 책정된 고유목적사업준비금 등을 제외하면 적자 폭은 72억 원으로 줄어든다는 것.

즉, 적자가 나긴 했지만 그 폭이 줄어드는 것으로 여기에 감가상각비까지 비용에서 제외하면 오히려 393억 원의 흑자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의료연대본부는 “실제 비용 지출과 상관없는 회계상의 비용 지출을 제외하고 경상수지를 평가하는 것에 대해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이는 기업의 재정 상황을 평가하기 위해 증권가 등에서 많이 쓰는 방법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감사원도 지난 2010년 병원 회계에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을 과다 계상해 비용 지출이 많은 것처럼 보이는 것에 대해 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고 강조했다.

의료연대본부는 올해 상반기에 환자가 줄었다는 병원계의 주장에도 의문을 나타냈다.

일부 병원의 환자는 줄었을 수 있지만, 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1사분기 건강보험통계에 따르면, 입내원일수, 건강보험 급여비, 급여비 중 상급종합병원 점유율 모두 지난해 1사분기에 보다 오히려 소폭 증가했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실제 환자 수는 감소했을지 몰라도 적어도 수입은 줄지 않았다는 것이다.

의료연대본부는 경제위기 등의 이유로 향후 병원의 상황이 나빠질 것이라는 병원계의 전망에 대해서는 “최근 들어 상대적으로 현금 회계상 흑자폭이 줄고, 수입 증가 폭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며 “이는 장기적 불황, 병원간 경쟁 격화가 그 원인으로 이에 대한 대비는 필요하다”고 밝혀 병원계의 주장을 인정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다만 이러한 상황에서 그에 대한 대비를 한다고 경상수지를 개선하기 위해 수익을 더 확대하고 인건비 등을 절감하려고 한다면, 병원은 오히려 파국에 이를 수 있고 국민에게 큰 해악을 끼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경제 불황인 상황에서 병원 수익을 높이려면 필연적으로 환자 1인당 진료비를 늘리거나, 의료외에 다른 영역에서 수익을 내기 위한 노력을 할 수밖에 없으므로 과잉진료 및 검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료연대본부는 의료 외 부문에서 수익을 내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산학 협력 등을 통해 의료 외에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고 시장을 창출해야만 한다”고 제시했다.

특히 그 맥락에서 추진되는 것이 ‘연구중심병원’으로의 전환이고, ‘융복합연구센터’의 설립이라며 “환자 1인당 진료비를 늘리려는 병원의 경영 행태는 결국 환자와 국민에 해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기에도 조건은 있다. 의료연대본부는 “다만 그러한 연구가 실제 환자나 국민에게는 효용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이 ‘돈이 되는 연구’만을 지향하면 안된다”고 밝혔다.

특히 현재 일부 상급종합병원들이 집중하고 있는 줄기세포 관련 연구, 정보통신기술과 의료를 융합하려는 연구 등에 대해서는 “실제로는 ‘거품’일 가능성이 많다”며 “국민의 세금으로 연구비를 주어 일부 연구자들과 기업, 병원만 좋은 일을 시키는 꼴”이라고 일축했다.

의료연대본부는 특히 “인건비를 줄여 비용을 줄이겠다는 병원계의 발상은 환자와 국민에게 해가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병원 인력 수준이 현재도 OECD 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병원 인력 수 자체가 적고, 비정규직이 많으며, 임금 등 노동조건도 열악한 상황에서 비용절감을 위해 비정규직 인력을 더 많이 사용하고, 노동조건을 더 열악하게 만든다면 의료의 질은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이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의료연대본부는 “경제 불황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많은 상황에서 현재와 같이 의료 비용 중 감각상각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5-6%에 이를 정도로 병원들이 무한 경쟁을 하면서 시설과 장비 투자에 사활을 거는 행태가 지속된다면 한국 병원에 미래는 없다”며 “과열된 수익 증가 경쟁을 그치고, 병원 인력의 양과 질을 늘려 의료서비스 질을 개선하려는 경쟁을 벌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부 역시 당장 병원의 과다 경쟁과 설비 투자 과잉을 막기 위한 규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