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과학이 물리학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생명과학의 시대라고들 한다. 제약산업 또한 마찬가지. 분자 단위의 합성의약품이 주를 이루던 시대가 어느덧 가고, 이젠 바이오 의약품 시대가 도래했다.
인류의 생활 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은 날로 증가하고,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하는 인류의 욕구는 자연스럽게 생명과학 발전의 동력이 됐다.
30일 롯데호텔서울에서 주한미국상공회의소의 주최 아래 ‘2017 보건의료 혁신 세미나’가 개최됐다.
이 행사는 생활 수준과 환경의 발달로 인하여 의료기기•의약품에 대한 관심 고조되면서 국내외 의료기기•제약 기업, 관련 부처 및 유관기관과의 협력사업 모색 및 발전방안을 강구하고, 혁신 선두 기업들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하며, 발표•토론을 통한 민관 및 산학연 간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마련됐다.
의료•보건 정책기관과 국내외 업체 및 언론 등 25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된 이번 행사에 가장 많이 다뤄진 주제는 단연 ‘4차 산업혁명’과 ‘바이오 신약’이었다.
바이오 신약개발 기술 가운데서도 이날 가장 주목 받은 기술은 ‘세포 유전자(cell and gene) 치료’ 기술.
이날 오후 제약 분야에서 ‘환자치료 중심의 최첨단 연구 동향’을 주제로 발제를 맡은 연세의대 김동욱 교수(줄기세포기반 신약개발연구소장)는 iPS cell(유도만능줄기세포)를 이용한 질환 모델링과 질환 기전 연구에서의 활용 가능성, 그리고 이를 이용한 신약개발의 유효성에 대해 설명했다.
김 교수는 “과거에는 후보물질 발굴부터 전임상 과정 동안 동물모델을 대상으로 신약개발이 이뤄졌다”며, “따라서 실험 동물과 인간과의 유전형질과 발현형질의 차이에 의해 실제 임상에 들어가면 약효가 떨어지거나 독성이 나타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이제는 인간 유래 iPS cell를 이용함으로써 개발 단계부터 좀 더 인간에 적합성이 높은 신약개발이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환자로부터 얻은 iPS cell이 그 환자의 병리 현상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 것을 파악, 이 iPS cell을 질병에 대한 인간 세포모델로 이용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한 예로, 그는 뇌에 염증이 생기면서 뇌세포가 사멸되어 사망에 이르는 희귀난치성 질환인 ‘부신백질이영양증’ 환자에서 유래한 iPS cell을 정상인의 그것과 비교해, 25-hydroxycholesterol (25-HC)를 생산하는 유전자의 발현이 환자의 iPS cell에서 높게 나타난다는 것을 알아냈다.
뇌 염증의 직접 원인 물질이 세포 내에 축적된 긴사슬지방산이 아니고, 긴사슬지방산에 의해 유도되는 25-HC라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김 교수는 “이처럼 iPS cell을 이용해 중증의 희귀난치성 질환의 원인과 유발 물질을 찾아냄으로써 질병을 모델링하고 기전을 파악해 신약을 개발하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현재 희귀난치성 질환 치료제는 증상을 완화시키고 생명을 연장하는 데 그치는 반면, iPS cell을 활용한 신약개발은 질병 원인을 치료하는 것으로 완치에 가까운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 교수는 이어 신약개발 초기 단계에서의 줄기세포를 이용한 약제독성 예측이 R&D 비용을 절감시켜 줄 수 있다고 전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신약개발 당시 동물모델을 대상으로 독성검사를 하기 때문에 개발과정이 후기에 달할수록 인체 적용률이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초기부터 인간유래 줄기세포를 이용해 인간의 간, 신장, 신경세포에 대해 어느 정도 독성을 나타내는지 미리 스크리닝이 가능하고 전했다.
실제 실험 결과, 동물모델에서 걸러지지 않았던 독성이 인간 유래 줄기세포 검사에서는 걸러지는 것을 확인했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이러한 탈락 위험요소를 신약개발 초기 단계에서 걸러줌으로써 시행착오에 의한 R&D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김 교수는 혈우병 환자의 소변으로부터 유래한 iPS cell를 유전화 가위로 교정한 후 만들어낸 혈우병 치료제가 현재 동물실험은 마친 상태로 임상에 들어갈 수 있도록 보건당국과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행사에 참여한 제약사 관계자들은 한 목소리로 국내 신약개발 환경의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기초과학으로부터 얻은 혁신적인 기술을 실제 임상까지 이어 개발하기에는 국내 보건당국의 규제가 큰 장애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 치료는 인간의 유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실험이기에 기초과학에서는 용인되던 부분이 상업화를 위한 임상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등 개발된 기술을 활용하는 데 있어 정부의 규제가 그 맥을 끊어놓고 있는 실정.
게다가 혁신의약품에 대한 경제성 평가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적정한 약가를 보장 받지 못한다는 게 기업 측의 입장이다.
이에 대해 이날 토론에 참석한 곽명섭 건강보험정책국 보험약제과장은 “제약계에서 지속적으로 혁신적인 신약에 대한 적정한 약가 책정을 요구하고 있으며, 보건당국도 이에 대한 기준을 정립해야 할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고 전하며, “하지만 혁신 신약에 대한 약가 인정은 상반된 철학적 문제가 혼재되어 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이어 “국민들에겐 의약품은 ‘산업’의 관점보다는 ‘보건’의 관점으로 인식하는 것이 대다수”라며, “기업과 국민의 인식차를 줄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국내 기업과 외자사를 대하는 데 있어 차별적 요소가 없어야 하기 때문에 정책을 펴는 데 있어 어려움이 많다”고 전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최근 기업이 세포치료제나 재생의료와 같은 혁신 신약에 대한 경제성 평가 문제에 불만을 제기하며 경제성 평가를 축소하거나 생략해 달라는 요구가 있지만, 경제성 평가는 혁신 신약의 가치를 평가하는 중요한 수단”이라며, “발전하고 있는 신약들의 가치를 적절히 반영할 수 있는 경제성 평가 기준을 확립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