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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질환 환자들을 위한 삶의 질 개선의 열쇠

전종근 부산대학교어린이병원 유전대사과 교수

올해는 희귀질환을 연구하고 진료하는 의료진의 관점에서 매우 의미가 있는 한 해다. 바로 정부주도의 희귀질환관리법 시행이 1주년을 맞아 중장기 계획이 확정되고 있으며 실행 또한 곧 가시화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희귀질환에 대한 국가적 지원체계가 필요한 이유는, 희귀질환 환자들의 상당수가 일평생 동안 경제적, 육체적, 심리적 고통을 겪기 때문이다. 정확한 진단에만 평생에 걸친 시간을 소모하는 경우도 있으며, 유전질환이 많아 가족 단위로 질병의 고통을 겪는 경우도 적지 않다. 희귀질환으로 인해 신체적 고통만큼이나 삶의 질 또한 크게 저해되는 셈이다.


진단 이후에도 희귀질환 환자와 보호자들은 치료과정에서의 부담감을 오롯이 감당해 내야 한다. 특히, 치료제가 있어도 선택권이 제한되어 순응도가 떨어지는 경우를 보면 그 동안 의료진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조기진단, 조기 치료만큼이나 약물 치료에 대한 순응도는 치료의 성과를 판가름하는 요인이다. 따라서 의료진의 입장에서는 치료의 순응도를 개선하는 부분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희귀질환 치료제는 질환의 희귀성 때문에 약물의 개발과정이 까다로울 수 밖에 없으며, 따라서 순응도까지 고려하여 개발하기란 더욱 쉽지 않다. 하지만 최근에 한 예로써, 리소좀축적질환 중 하나인 고셔병에서는 치료제 순응도 측면에서 큰 발전이 있었다. 기질감소치료법(substrate reduction therapy)인 경구용 치료제 세레델가(엘리글루스타트)가 출시되어 국내에서도 보험급여를 획득한 것이다. 그 동안 정맥주사요법인 효소대체요법(enzyme replacement therapy)이 표준요법으로 널리 사용되어 환자들의 생존기간을 연장시켜 왔으나, 주기적으로 내원하여 주사투여를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으로 인해 환자는 물론 보호자들까지 사회생활, 학업은 물론 일상생활에도 제한을 경험해 왔다. 결국 가족 전체의 삶의 질에 심각한 부담이 된 것이다.


경구용 치료제인 세레델가는 순응도 저하의 개선 뿐 아니라 보험급여 획득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도 줄인 치료옵션으로써 ENCORE 임상시험 결과, 비교군인 이미글루세라제 대비 비열등성을 입증했을 뿐 아니라, 건강관련 삶의 질(HRQoL)이 잘 유지되고, 이미글루세라제보다 선호도가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실제로 필자의 진료를 받고 있었던 한 고셔병 환자는 얼마 전 효소대체요법에서 세레델가를 이용한 기질감소치료법으로 치료 방법을 변경했는데, 치료를 받기 위해 내원하는 빈도와 시간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기존에는 2주에 한번 내원할 때 마다 3-4시간씩 주사치료를 받아야 했는데, 이제는 3-4주에 한번 외래로 진료하면서 치료시간까지 대폭 단축시킨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진료에 따르는 경제적 부담도 줄게 돼, 지금까지 장기간 치료과정이 힘겨웠던 환자와 보호자들이 느끼는 삶의 변화도 개선되었다. 환자와 보호자들이 보다 편리하게 증상을 관리하고, 가족 전체의 삶의 질까지 증진되어가는 과정을 보니 이들의 투병과정을 지켜봐 온 의료진으로서 반가울 따름이다.


고셔병 경구용 치료제로서 새로운 기질감소치료법의 등장은 치료 선택권이 환자와 보호자 모두의 신체적, 경제적, 사회적 삶의 수준을 혁신적으로 바꾸는 열쇠임을 알려주고 있다. 여전히 치료 사각지대에 놓인 희귀질환 환자들이 많지만, 치료의 순응도, 곧 환자의 삶을 고려한 새 치료옵션의 개발이 더욱 활발해 지고, 접근성 또한 확대되어 삶의 변화를 경험하는 환자와 가족들이 늘어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