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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단체

여자 의사는 의사 남편이 최고다? 성차별 만연한 의대

교수가 "넌 그냥 알바하고, 남편 교수시켜서 뒷바라지해라" 발언

의과대학 내 특정과에서 여성을 받지 않는 전통을 만들고, 이를 학생에게 공공연하게 주입하는 등 성차별이 만연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차별에는 정당한 이유가 없으며, 이유를 물으면 '여자는 임신하니까' 등의 답변이 돌아오기도 한다.

23일 오후 2시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린 '의과대학 학생들의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발표 토론회'에서 인하대 의대 의학교육학과 최규진 교수가 14개 대학의 의대생 21명을 대상으로 국가인권위원회 · 인권의학연구소가 지난해 4월부터 10월까지 진행한 심층 인터뷰 결과를 발표했다. 

심층 인터뷰에서는 '너 같은 애는 처음 본다', '왜 그것밖에 못 하냐', '선배라는 존재는 너를 도와줄 수 없어도 너 하나 인생 망치게 하기는 쉽다' 등의 말을 교수 · 레지던트 · 선배가 너무 쉽게 내뱉고, 선배 학년이 아래 학년을 얼차려 등으로 집단 훈육하는 학교가 여전히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대부분은 그릇된 음주 문화를 언급하며, 음주 · 폭력 · 은폐 구조가 견고하다고 지적했다. 선배 · 교수가 학생을 위해 마련한 술자리를 문제 삼는 것은 지나치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음주 문화가 청산되지 못하고, 술자리에서 주로 이뤄지는 신체적 폭력의 원인을 술로 지목하는 등 권위주의 문화가 만연하며, 학교는 이에 대한 조치를 하지 않고 덮으려고만 하는 관행이 반복된다고 했다. 

대학에서는 인사마저 빌미가 될 정도로 권위주의가 팽배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학번 몇 명이 인사를 안 한다는 이유로 단체 얼차려를 받았다는 증언이 다수 있으며, 대다수 학교가 동아리 · 동문회 · MT 등의 행사 참여를 강제한다고 답했다.

여학생의 경우 특정과에서 여자를 안 뽑는다는 것을 학생 때부터 알기 때문에 차별감을 일찍 느낀다고 답했다. 이는 반드시 체력을 요구하는 과만 해당하지 않는다. 성차별에는 어떤 정당한 이유가 없고 '여자는 군대에 안 가니까', '여자는 임신하니까' 등의 답변을 한다고 했다. 

교수 상당수는 수업시간에 공공연하게 성차별적 발언을 하며, 남자친구가 있냐는 말도 서슴지 않게 물어본다. 응답자들은 '여자 의사는 의사 남편이 최고다', '넌 그냥 아르바이트하고, 남편 교수시켜서 뒷바라지해라'와 같은 말을 교수가 흔히 한다고 했다. 

최 교수는 "특정과에서 여성을 받지 않는 전통을 만들고, 이를 학생에게 공공연하게 주입한다."며, "의료계 내 성차별 구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이에 대한 발화가 성차별이라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교수가 상당하다."고 했다. 

응답자들은 '선배들이 술자리에 불러내서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하는 일은 다반사로 일어난다', '기숙사 통금시간 전에 여자 후배를 자취방에 부르는 사건도 비일비재하다', '화장실 몰래카메라(이하 몰카) 사건이 발생했는데 학교에서 막았다', '댄스동아리에서 야한 춤을 선배가 강요했다'고 토로했다. 심지어 한 학교에서는 여자 동기의 화장실 몰카 사진을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올린 사건도 발생했으나 학교 측은 사회봉사 몇 시간 · 반성문 몇 장 정도의 징계로 사건을 축소하려 했다. 

교수가 가해자인 경우 '학생은 치마를 입으니까 보기가 좋네', '너는 겨드랑이털 밀고 다니니' 등의 성희롱 발언이 언급됐다. 

최 교수는 "학교에서는 기본적인 성평등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다. 심지어 특정 동아리가 특정과를 장악하여 교수 · 레지던트 · 해당 동아리 학생까지 연결된 견고한 구조를 갖추고 성폭력을 양산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성추행 · 성폭력을 신고 · 해결하는 과정도 순탄치 않다. 응답자들은 '학장이 언론 기사가 날까 두려워한다', '신고한 학생이 오히려 학교를 나갔다'고 증언했다.

피해 사실을 신고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시험 성적을 매기고 유급 · 진급을 결정하는 것이 가해자 교수 권한이기 때문에 바로 문제 제기가 어렵고, 의대 내 상담센터도 교수가 주관 · 관장하여 상담 내용의 비밀 보장을 믿기 어렵다고 했다. 피해자 학생들은 오히려 자기가 문제를 일으킨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가져서 △동기에게 배척되고 △향후 인턴 · 레지던트 때 평판에 영향이 갈 거라고 인식했다.

사건 해결 과정에서 나타난 가장 큰 문제점은 신고해도 학교 차원에서 제대로 된 조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부 학교에서는 몰카 등 사법 조치가 필요한 성범죄도 학교 이미지 · 실익을 따지며 문제를 덮었다. 기본적인 대응 매뉴얼이 부재한 점도 지적됐다. 

최 교수는 "다행히 미투 운동 등 사회 변화 속에서 이제는 덮는다고 되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을 그나마 인지한 학교들은 상담센터를 만들어 대응하고 있는데 상담센터에 대한 학생들의 불신이 상당했다. 아무것도 없고, 있더라도 운영이 잘 안 되는 상황이다. 이 같은 문제는 전문가 개입을 통해 합리적으로 사건이 해결되는 사례를 빨리 축적해야만 해소된다."고 말했다.

또한, "워낙 기존 구조가 견고하다 보니 의대 인증평가 · 병원 인증평가에 관련 사항을 명확하게 삽입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 폭력 사례가 없었다고 끝내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런 사례가 왜 없는지를 의문시하고, 제대로 처리된 사례에 높은 점수를 부가하는 외적 개입이 필요한 게 아니냐는 언급이 많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