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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욱의 medical trivia

로켓 썰매에 몸을 매단 의사 죤 스탭 이야기

박지욱 (제주 박지욱신경과의원)

롤러코스터에 앉아 뼈가 부러지다

외신에 따르면 일본의 한 놀이공원 있는 롤러코스터가 잇따른 사고로 운행이 중단되었다. 트랙을 이탈하거나 중도에 멈춘 사고를 낸 것이 아니라 정상적으로 운행을 했는데 탑승객들이 원인 모를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지름이 40미터에 이르는 롤러코스터 <도도돈파(Do-Dodonpa)>2001년에 설치되었고 2017년에는 성능을 향상시켜 1.56초 만에 180km/h까지 급가속할 수 있었다. 속도로 보면 세상에서 가장 빠른 롤러코스터다. 그런데 이듬 해인 2018년부터 최근까지 탑승객 9명이 등뼈, 목뼈, 팔뼈가 부러졌다. 20218월 초에 운행이 중단되었다.

시속 180km는 강력한 태풍의 풍속(50m/s)과 비슷하다. 하지만 KTX 300km/h보다 느리다. 국제선 여객기들의 속도는 900km/h가 넘으며 국제우주정거장(ISS) 28,000km/h 속도로 지구궤도를 돈다.

내친 김에 인간이 겪은 최고 속도 기록을 살펴본다면 아폴로 10호가 달 궤도에 다녀오면서 세운 40km/h이다. 우리가 익숙한 80km/h5,000배에 달하는 속도다.

하지만 엄청난 속도를 견디기 힘들었을까? 아니다. 아폴로 우주인도 음속 2배로 여행한 콩코드 여객기의 승객도 속도로 힘들어하지 않았다. 뼈가 부러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왜 180km/h에 불과한 롤러코스트에 앉은 채로 목뼈까지 부러졌을까?

관련 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조심스럽게 탑승객의 부적절한 자세나 가속으로 생기는 관성력(G-force)이 원인으로 거론된다. 이 롤러코스터는 운행 중에 3.3G의 관성력이 발생하는 데 우주왕복선을 탄 우주인들이 힘들어 하는 지구 대기권에 재진입 때의 3G보다도 더 크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관성력이 낯설지 않다. 지상에서 우리가 겪는 수준은 1 g(중력 상수로 9.8 m/s2)으로 아무런 느낌도 없다. 재채기를 할 때는 2.9배인 2.9G가 생긴다. 누군가 반가운 마음에 등을 탁 치면 맞는 사람은 4.1G를 느낀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을 때는 무려 10.1G도 겪는다. 아무리 무서운 롤러코스터라 해도 6.3G가 최고다.

실험을 통해 인체가 겪은 최대의 충격은 46.2G였다. 피험자는 무려 중력의 46배 충격을 견뎠고 살아남았다는 말이다. 지금은 이런 실험(human tolerance to dynamic force)이 너무 위험하므로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 어려운데 이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운 피험자이자 실험자는 의사였다. 다시 말하면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실험한 것이다. 가장 잘 참은 사람, 가장 용감한 사람, 지상에서 가장 빨리 달린 사람의[1] 기록을 동시에 세운 이는 죤 폴 스탭(John Paul Stapp; 1910~1999)으로 미 공군 군의관이었다. 아마 의사들 중에 이렇게 대담한 실험의 제물로 자청한 사람이 또 있을까?

 

작가의 꿈을 접고 의사가 된 죤 스탭

죤 폴 스탭은(John Paul Stapp; 1910~1999)1910년에 미국 선교사의 아들로 브라질에서 태어났다. 형제들은 학교 대신 집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현지어인 포르투갈어는 물론이고 독일어, 프랑스어, 라틴어도 익혔다(이 때문에 나중에 그의 일생에 중대한 전환점이 생긴다).

어린 스탭은 항공에 관심이 많아 모형 비행기나 연을 만들어 날리기를 좋아했지만 미국의 대학에 입학한 후로는 작가를 꿈꾸었다. 대학 때 만난 첫 사랑이 교통사고로 죽자 큰 트라우마를 받았고, 어린 친척 아이가 화상으로 죽어가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보았다. 이것이 안전에 대한 관심과 의사의 길을 선택하게 된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 스탭은 동물학 석사와 생물-물리학(biophysics) 박사 학위를 받았고 29세에 미네소타대학교 의대에 입학했다.

2차 세계대전 중인 1943년에 졸업하자 입대하여 육군 항공대(미국은 아직 공군이 독립되지 않았던 시절) 병원에서 전공의 수련을 받았고 자연스레 육군항공의학교에 지원하여 항공 군의관의 길을 시작한다.  

당시는 프로펠러 비행기 시대로부터 제트 비행기 시대로 전환되던 때로 군()의 항공 의학은 고고도 비행에 따른 항공생리학, 호흡생리학, 고압 및 저압 환경, 한랭 환경, 감압병 등등을 중요한 주제로 다루었고 스탭은 이것들을 익혔다. 때론 피험자가 되어 실험에도 참여한다.

1945년 미국의 원자폭탄이 전쟁을 끝냈지만 스탭은 가동할 파괴력에 오히려 몸서리를 치며 군에 있는 동안 살상 무기의 연구 개발에는 참여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항공 군의관(flight surgeon)으로 현장에서 잠시 복무하다가 1946년에 군 항공의학 연구의 중심지인 라이트(Wright)항공기지의 항공의학 실험실 (the aeromedical laboratory)에서 연구자가 된다.

급감속 실험

전쟁 중 미 군용기들의 사고를 조사한 보고서는 부실한 좌석과 벨트가 조종사 사망에 큰 몫을 한 것으로 밝혔다. 비행기가 추락한다고 해도 좌석과 벨트가 뜯겨져 나가지만 않는다면 조종사들이 ‘50G’의 감속(deceleration) 충격 견딜 수 있을 것으로 보였는데 좌석과 벨트는 그 보다 훨씬 약한 충격에서 망가진 것이다. 항공 의학 전문가들은 항공기 제작사에 조종석과 좌석의 안전 표준을 강화하라는 압력을 넣었다.

하지만 항공기 제작사들은 인간의 한계를 ‘18G’ 정도로 보았고 그 정도에 맞추어 조종석의 내구성을 설계했다. 비용 때문에 꿈적도 않는 항공기 제조사를 움직이려면 18G를 넘어서는 충격에서도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증거를 내놓아야 했다.    

미국은 몰랐지만 독일은 이미 조종사의 충격 연구를 했는데 종전 후 미군은 독일 공군의 자료를 입수하면서 이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미군 당국은 독일어에 능통한(!) 스탭을 합류시켜 관련 연구를 시작한다.

1947년부터 스탭이 지휘하는 추락 상황 모의 실험(simulation)이 캘리포니아 뮤록(Muroc) 공군기지(지금은 에드워드공군기지)에서 시작한다. 로켓 엔진을 장착한 썰매(rocket sled)를 이용해 최고 속도로 달린 다음 급제동을 걸어 극한의 감속 충격을 만들어 냈다. 이렇게 만든 급감속(충돌) 상황에서 인체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얼마까지 견딜 수 있는가, 탈출의 골든 타임인 5분 동안 의식이 남아있는가를 확인했다. 

<지 휘즈Gee Whiz; 아이구 깜짝이야! 라는 뜻>라는 이름으로 불린 로켓 썰매는 소형차만 한 크기로 84kg 나가는 모형 인체(더미; dummy)를 싣고 각종 측정기를 부착하고 322km/h의 속도를 내며 600미터의 트랙을 달린 후 급제동을 걸었다.

특히 안전벨트를 느슨하게 맨 채로 했던 급제동 실험에서는 더미는 벨트를 찢고 장애물을 돌파해 200미터 넘게 하늘로 높이 솟구쳤다. 급감속의 충격이 얼마나 큰지, 역설적으로 안전벨트가 얼마나 중요한 지 보여주었다. 이렇게 더미를 싣고 32회를 달린 후 썰매의 안전이 확인되자 스탭이 더미 대신 썰매에 앉기 시작했다. 

19471010, 인간 기니피그(실험 동물)’을 붙들어 맨 썰매의 로켓 엔진이 불을 내뿜었다. 썰매는 290km/h에서 급정거했고 인간 기니피그는 10G에 해당하는 충격을 받았다.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다.

이후로 감속 충격의 강도를 조금씩 올려가면서 인체의 한계치로 여긴 18G를 돌파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스탭은 감속 강도를 높여가며 인간 한계치의 두 배로 여겨지는 35G에 도전했다. 다행히 살아남았고(부상은 입었다)고 이후로도 강도는 더 올라갔다. 이렇게 스탭은 뮤록기지에서 4년 반 동안 26번이나 로켓 썰매에 올랐다.

 

소닉 윈드

194710월에 척 예거(Chuck Yeager)가 조종한 <X-1>비행기가 초음속을 돌파했다. 미래의 조종사들은 초음속의 속도로 비행하다가 비상탈출해야 할 상황이 올 것이다. 초음속에서도 조종사는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까? 미 공군은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 초음속으로 달리며 150G의 충격을 만들며 급감속할 수 있는 로켓 썰매 <소닉 윈드(Sonic Wind)>를 개발했다.

<소닉 윈드> 실험은 뉴 멕시코의 홀로먼(Holloman)공군기지에 만든 1Km 트랙에서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더미가 나중에는 스탭이 썰매에 올랐다. 기존의 제동장치로는 세울 수 없어 물을 이용해 급제동을 걸어야 했다. 19543월에 677km/h를 기록해 스탭은 지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the fastest man in the earth)가 되었다.

19541210일에는 대포알처럼 발사된 <소닉 윈드>6초 만에 1,017km/h 로 내달렸다. 45구경 권총의 총알보다 빨랐고 10.6km 상공에서 1,600km/h(음속의 1.5) 속도로 날아가는 것과 맞먹는 속도였다. 스탭은 엄청난 바람에 머리를 두들겨 맞고, 눈알은 마치 마취없이 생니를 뽑는 것처럼 아팠다. 그리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리고 단 1.4초동안의 급정거(1,600km/h 0km/h)46.2G에 해당하는 충격을 받았다.  

193km/h로 벽돌담에 충돌하거나 4톤 물체가 부딪히는 것과 같은 충격으로 스탭의 폐는 짜부라지고, 안구는 돌출되고, 눈은 충혈되고 눈두덩이는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벨트로 결박한 자리에도 멍이 들었고 그리고 앞을 볼 수 없었다. 

스탭은 병원으로 실려갔고, 다행히 시력은 회복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스탭에겐 마지막 로켓 썰매 체험 실험이 되었다. 30회에서 한 번 모자라는 숫자였다. 29회의 실험에 기니피그로 참여하면서 스탭은 여기저기 손목, 늑골, 척추 골절, 탈장, 망막 출혈과 뇌진탕을 겪었다.

스탭은 이후에 개발된 <소닉 윈드2>에도 탑승하려 했다. 1,609km/h의 속도를 내며 1킬로미터가 넘는 트랙을 불과 1.8초만에 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스탭은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실험 중 설매가 트랙을 벗어나는 사고도 있을 정도로 위험했기에. 하지만 급감속 실험은 1956년 연말까지 이루어졌다.

스탭은 1955년부터 항공과 자동차 안전 캠페인도 시작했다. 급감속 실험은 원래 조종사 안전을 높이려는 실험이었지만 매일매일 수 없이 많은 충돌 사고를 내는 자동차에 적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 해부터 스탭은 자신의 이름이 붙은 Stapp Automobile Safety Conference를 이끌었다(지금도 매년 열린다). 1968년부터 미국내 시판 모든 차에 안전벨트를 강제한 <고속도로안전법>이 시행되는데, 이 법의 제정에도 스탭은 큰 역할을 했다.   

 

스탭의 로켓 썰매타는 무엇을 입증했을까?

스텝이 지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이 된 이유는 속도 기록 때문이 아니었다. 가장 큰 감속 충격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 힘든 실험대에 직접 올라 그가 밝혀낸 것은 사람 몸은 의외로 엄청난 충격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행기가 추락한다고 해도 조종사를 안전벨트가 단단히 붙들고 있고 조종석이 기체에서 튕겨져 나가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면 조종사를 살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중에 인간은 5톤의 힘을 1/4초 동안은 견딜 수 있다고 밝혀졌다. 중요한 것은 아주 짧은 시간만(!)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로켓 썰매에서 내려왔지만 그의 도전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1957년에는 우주의 문턱에서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맨하이(Manhigh)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직접 31km 상공까지 날아올랐다. 나중에는 라이트기지의 항공의학연구실장을 맡으며 항공 우주 환경과 관련된 생명과학 연구를 이끌었다.

그는 1999년에 89세로 세상을 떠날 정도로 오래 살았다. 기니피그의 체험으로 얻는 후유증은 눈이 조금 나빴다는 것 정도였다고 전한다.

스탭 덕분에 초음속 비행 중에도 조종사는 사출(ejection) 좌석으로 비상 탈출을 할 수 있었다. 조종사들은 여압복(G-suit)을 입어 비행중에 기절하지 않게 되었다. 또한 자동차는 탑승자의 충돌 충격을 줄이기 위해 안전벨트는 물론이고 에어백까지 장착하게 되었다.

2020F1 시합 중 충돌 사고가 발생해 운전자는 무려 67G의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운전사는 부상을 당했지만 목숨은 건졌다. 운전석을 보호하는 특수 설계 덕분이었다. 반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다이애너 비()는 가슴과 머리에 각각 70G100G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 정도면 심장에 붙은 폐동맥이 찢겨나갈 정도로 살 수 없다. 하지만 만약 안전벨트를 했다면 충격이 35G 정도로 줄었을 것이고 목숨도 건질 수가 있었을 것으로 보여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오늘도 우리는 차를 탄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안전벨트를 맨다. 때로는 번거롭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글을 읽은 독자라면 이제 벨트가 달리 보이지 않을까? 그런 의미로 오늘은 벨트가 딸깍하며 채워지는 그 짧은 시간에 죤 스탭의 숭고한 헌신을 기억하면 어떨까?


 [1] 지금 지상 최고 속도 기록은 1997년에 영국의 제트추진 자동차 Thrust SCC 가 세운 1,228km/h으로 초음속 기록이다.   

참고 자료 출처

1.Sonic Wind: The Story of John Paul Stapp and How a Renegade Doctor Became the Fastest Man on Earth/Craig Ryan/ Liveright/2016 

2.기니피그 사이언티스트/레슬리 덴디, 멜 보링 지음/CB 모단 그림/최창숙 옮김/다른/2006

3.실험 장면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JeC1ekTjoy8

4.실험 장면 영상 https://www.military.com/video/forces/air-force/air-force-colonel-rides-600mph-rocket-sled/3615589845001

5.실험 장면 영상 https://airandspace.si.edu/stories/editorial/man-behind-high-speed-safety-standards 실험 사진, 스미소니언 국립항공우주박물관.

출처디아트리트 VOL. 21 NO.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