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중독은 치료도 힘들지만 갑자기 술을 끊었을 때 극심한 금단증상을 겪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마지막 음주 후 12시간 후에 발생할 수 있으며, 약 48시간 후 최고조에 이른다. 알코올 금단증상에는 떨림, 불면증, 메스꺼움, 구토, 일시적인 환각 또는 환상, 불안, 경련, 발작 등이 있다.
이 중 경련 및 진전섬망은 가장 심각한 형태의 알코올 금단증상이다. 진전섬망은 전신의 떨림을 동반한 의식장애로 고열과 부정맥, 자율신경 장애까지 나타날 수 있다. 알코올 중독환자 중 많게는 30%가 진전섬망을 경험하며, 알코올중독 입원환자의 약 4%가 이로 인해 사망한다. 진전섬망 발생 후 8년 내 사망률은 30%로 이는 중증 악성질환 환자의 사망률과 비슷하다.
진전섬망은 응급질환으로 빠른 치료가 요구되지만 의식이 뚜렷하지 않은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기 어려워 치료에 어려움이 크다. 이에 한림대학교동탄성심병원 신경과 임희진 교수팀은 알코올 금단성 경련 환자를 대상으로 초기 정량뇌파검사를 시행한 결과 알코올중독 환자의 진전섬망 발생유무에 따라 뇌 활동에 차이를 보인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알코올 금단으로 인한 발작증상 후 정량뇌파검사를 통한 진전섬망 발생 분석(Quantitative electroencephalographic analysis of delirium tremens development following alcohol-withdrawal seizure based on a small number of male cases)’이라는 제목의 이 논문은 SCIE 국제저널인 ‘Brain and Behavior(인용지수 3.405)’ 10월호에 게재됐다.
뇌파검사는 두피에 전극을 부착하고 뇌의 미세한 전기활동을 증폭시켜 파동을 기록하는 검사다. 뇌가 건강할 때는 균형 잡힌 뇌파가 나오지만 인지에 이상이 생기면 균형이 무너지며 특정 뇌파가 많아지거나 줄어들게 된다. 정량뇌파검사는 뇌파의 스펙트럼 등을 디지털화해 빠르고 정확하게 뇌파를 분석할 수 있으며, 최근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치매 등의 예측에 사용되고 있다.
연구팀은 2018년 3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한림대학교동탄성심병원과 한림대학대학교한강성심병원에 알코올 금단성 경련으로 입원한 환자 13명의 초기 정량뇌파검사 결과를 분석했다. 이 중 8명의 환자에게서 진전섬망이 나타났다. 또 건강한 사람의 뇌파와 알코올 금단증상을 겪는 환자의 뇌파를 비교하기 위해 1289명의 대조군을 모집하여 비교했다.
이 결과 알코올 금단성 경련 증상을 겪은 환자의 뇌파는 건강한 사람과 비교해 인지 및 기억 성능과 관련된 알파 파형이 감소하고, 대뇌피질의 각성과 관련된 베타 파형은 증가된 것으로 나타났다. 알코올 금단증상 환자들 중 진전섬망이 나타난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좌측 전두엽 부위에서 판단, 인지, 언어 기능과 관련된 고빈도의 베타3 파형이 감소하고 기억, 불안, 중독 등 뇌기능 네트워크와 연관된 뇌파 파형의 비율이 증가했다. 연구팀은 이 같은 뇌파검사 결과의 차이를 통해 알코올 금단성 진전섬망 예측모델로 발전시켜 조기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임희진 교수는 “이번 연구는 알코올 의존 및 알코올 금단에 의한 섬망현상의 뇌과학적 증거를 제시하고, 정량뇌파검사를 섬망 예측의 바이오마커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며 “알코올 중독환자의 치료 결정에 도움을 주고 사회경제적 부담뿐만 아니라 환자 사망률 감소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이번 연구에서 알코올 금단성 섬망 발생은 정량뇌파검사 외 연령, 성별, 정신과 질환 및 알코올 금단증상 병력 등 다른 임상적 요인으로는 예측이 어려웠다. 단 섬망이 발생한 환자들은 그렇지 않은 환자들에 비해 단기간에 알코올 섭취량이 더 많았다.
이에 대해 임 교수는 “단기간에 폭음을 하고 술을 급격하게 끊는 음주 패턴이 일생에 걸친 총 알코올 섭취 기간보다 섬망을 유발하는 데 더 큰 영향을 끼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