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도중 갑작스런 장비고장으로 기계가 멈춰 수술받던 환자에게 상해를 초래했다면 과연 그 책임은 누구의 몫일까?
이에 대해 의사가 주기적인 장비점검을 철저히 해왔다는 전제로, 업무상 과실치사에 대한 형사상 책임은 받지 않지만 민사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대한의사협회 중앙윤리위원회는 ‘개원의를 위한 의료윤리사례집’을 통해 라식수술을 받다 장비고장이 생겨 각막혼탁과 부정난시가 생긴 사례를 소개했다.
사례에 따르면, 시력교정술을 전문으로 안과를 운영하는 K원장은 라식수술을 받으러 내원한 22세 여성 L씨에 대해 시력검사 및 각막검사 등을 거쳐 라식수술에 적합한 것으로 판단하고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오른쪽 눈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왼쪽 눈을 시술하던 도중 갑자기 라식 장비에 고장이 생기면서 기계가 멈췄다.
K원장은 급하게 장비를 수리한 후 수술을 마쳤지만 이미 L씨의 눈에는 각막혼탁과 부정난시가 생겨버린 후였다.
L씨는 K원장을 의료과오로 고소했고, K원장은 수술장비의 갑작스런 고장은 불가항력적인 일인데다 제조사와 대리점이 권장하는 바에 따라 유지보수업체를 통해 주기적으로 장비를 점거해 왔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윤리위는 “의료과오로 인해 환자가 사망하거나 상해를 입은 경우에는 형법 제268조의 업무상 과실치사상의 죄로 처벌된다”고 전제하고 “하지만 이 사례에서 K원장이 라식장비에 대해 의사로서 과실을 범했는지는 불분명하고 수술장비의 갑작스런 고장이 불가항력이었다면 과실치상죄의 책임을 받지 않는다”고 법적 결론을 내렸다.
이어 “이 죄의 핵심은 업무상 과실의 인정여부인데 업무상 과실에 대해서는 일반인이 아닌 통상의 의사의 정상적인 기술 내지 주의의무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며 “따라서 의료장비의 고장이 K원장의 과실에 의한 것이라면 K원장은 형법상 책임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윤리위는 민사적 부분에 대해서는, 민법 제758조 제1항 ‘공작물의 설치 또는 보존의 하자로 인해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는 공작물점유자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고, 점유자가 손해의 방지에 필요한 주의를 해태하지 않은 때는 소유자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근거를 들어 K원장에게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다고 규정했다.
이어 “K원장이 병원의 소유자라면 그는 의료기기의 점유자이면서 소유자가 된다”며 “소유자는 본인의과실이 없더라도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어 K원장은 L씨에게 손해배상을 해줘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의사의 윤리적 측면에 대해서는 “K원장의 말대로 제조사와 대리점이 권장하는 바에 따라 주기적으로 장비를 보수하고 있었다면 장비가 갑자기 고장이 난 것은 K원장에게 직접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며 “K원장은 시력교정술 안과의 총괄 책임자로서 총체적인 법적 책임을 질 수는 있어도 윤리적인 잘못을 범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류장훈 기자(ppvge@medif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