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최근 발표한 원격의료 확대 추진안은 의료전달체계를 무너뜨리고 국민 건강권을 위협하는 중대한 정책적 오류다.
특히 이번 발표에서 소아청소년 초진까지 원격진료 허용 가능성을 열어둔 것은 소아 진료의 특수성을 무시한 졸속이며, 안전성 검토조차 생략된 정치적 결정에 불과하다.
원격의료는 단순한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의료의 본질인 정확한 진단과 안전한 치료의 기반을 위협하는 행위이며, 특히 소아 환자에게 적용될 경우 그 위험성은 배가된다.
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이미 지난 정부 시절부터 일관되게 소아 초진 원격진료에 대해 명백히 반대 입장을 밝혀왔으며, 그 이유는 명확하다. 소아는 스스로 증상을 표현하기 어려우며, 보호자의 진술만으로는 정확한 진단이 불가능하다. 시진, 촉진, 청진 등 직접 진찰은 필수적이다.
발열, 호흡곤란, 경련, 발진, 복통 등 비전형적 증상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소아에서 원격진료는 오진과 진료 지연의 직접적 원인이 되며, 이는 곧 생명과 직결된 의료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2023년, 폐쇄성 후두염이 의심되는 환아가 원격진료만 받은 채 적절한 응급조치를 받지 못해 생명이 위태로웠던 사례는 소아 원격진료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중증 환자가 아니더라도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오늘도 매일 원격진료로 잘못된 처방전을 마주하고 있다.
지난 2015년 국정감사 결과보고서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조차도 천식, 세기관지염, 후두염 등 소아 호흡기질환은 중증도와 증상 변화에 따라 진료 기준이 다층적이며, 대면 환경에서의 신속한 진단과 처치가 필수라는 점이 명확히 확인한 바 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에서 발간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한시적으로 초진 원격진료를 허용한 국가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 환자의 건강을 침해할 수 있는 위험성이 높으므로 비대면 진료 시 초진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외에도 의료계의 광범위한 우려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의학적 근거와 환자 안전을 외면한 채 정치적 수단으로 원격의료를 강행하는 것은 의료계를 배제한 독단적인 결정으로, 국민 건강에 대한 무책임한 행위이다.
더욱이, 현재 진료 환경에서는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진에게 과도한 법적 책임이 전가되는 구조가 고착화돼 있으며, 진료권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원격진료 상황에서는 환자 상태를 직접 확인하기 어려운 만큼 오진·지연 진료에 따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의료인에게만 전가하는 것은 명백히 부당하다.
특히 플랫폼 기반으로 진행되는 원격진료의 경우, 정부와 플랫폼 운영 기업 또한 환자 안전에 대한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는 법적·윤리적 논의가 선행돼야 하며, 이에 대한 제도적 장치 없이 추진되는 정책은 의료와 국민 모두에게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힌다.
첫째, 소아 초진 원격진료는 절대 불가하며, 정부와 국회는 이 사안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
둘째, 소아 진료 특성상 원격진료는 진료의 질과 환자 생명에 중대한 위해가 되며, 이는 어떠한 편의성이나 상업적 목적보다 우선돼야 한다.
셋째, 원격진료 정책 추진 이전에 반드시 의료계, 학계가 참여하는 독립적 검토기구를 통해 안전성, 효과성, 법적책임 구조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소아청소년 환자의 건강권과 안전을 위해 단호히 대응할 것이며, 정치적 타협이나 절충 없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국민과 함께 이 잘못된 정책을 막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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