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대통령실 앞에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모였다. 약사와 한약사, 서로의 직업은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정부가 문제를 방치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약사 제도가 생긴지 30년이 넘었지만 그 사이 직역갈등은 커졌고 검토 중이라는 정부의 답변이 반복됐다.
한약사 제도는 1993년 도입됐다. 당시 정부는 한약과 약의 구분을 명확히 하겠다며 별도 면허를 만들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업무 경계가 불분명했다. 결과적으로 30년 넘게 제도적 공백만 커졌다.
최근 한약사 개설 약국이 일반의약품 공급을 거부당하며 직역 갈등은 다시 폭발했다. 일부 제약사들은 법적 리스크가 불분명하다는 점을 방패로 내세우며 공급을 중단했고, 한약사 단체는 명백한 차별이라며 반발했다.
복지부는 “공급 거부는 위법 소지가 있다”는 공문을 내놨지만 실질적인 조치는 없었다. 그 사이에 약사회는 처방의약품을 조제한 한약사를 고발했고, 한약사회는 거리 시위로 맞섰다. 정부가 나서지 않으니 직능단체들이 직접 싸우는 모양새가 됐다.
더이상 이 문제는 단순히 직역 싸움으로만 볼 수 없다. 문제의 근본은 제도를 만든 정부가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애초부터 한약사 제도의 목적과 역할을 명확히 하지 않은 채, 현장에 혼란을 떠넘겼다. 이후 갈등이 커질 때마다 정부의 회피만 계속된 탓에 현장은 방치됐고, 국민의 약 선택권과 안전은 흔들리고 있다.
행정의 관성 뒤에 숨어 문제를 외면할 때는 지났다. 약사와 한약사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구분하고, 업무현장을 반영한 실질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법이 모호하다면 개정으로 바로잡고, 행정이 늦다면 명확한 지침으로 현장을 지원해야 한다.
거리로 나선 흰 가운 위에는 정부가 외면한 30년의 시간과 방치된 제도의 무게가 그 위에 덮여 있다. 정부가 “검토 중”이라는 말로 시간을 버는 동안, 현장은 이미 싸움터가 됐다. 대한약사회는 오는 15일부터 한약사 문제 해결 촉구를 위한 2차 릴레이 시위를 이어가겠다고 했다. 정부가 또 다시 이 문제를 미루려 한다면, 다음번에 거리 위로 내몰리게 되는 것은 국민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