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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환소연, 제약시장 공정화 범정부 TF 즉각 출범하라

보건복지부는 2026년 3월 26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를 열어 제네릭 및 특허만료 의약품의 약가 산정률을 현행 53.55%에서 45%로 조정하는 국민건강보험 약가제도 개선방안을 심의·의결했다.

이에 대해 의약주권 환자소비자연대는 14년 만의 제네릭 약가 구조 개편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이번 개편안은 리베이트 중심 시장 구조라는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한계가 분명하다고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우리의 입장을 밝히고 정부에 다음을 요구한다.

1. 약가인하는 리베이트 경쟁을 줄이나, 없애지는 못한다

약가인하는 의약품 리베이트 영업의 유인을 어느 정도 축소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약가 수준과 리베이트는 단순한 비례 관계가 아니다. 약가가 내려가더라도 제약시장 내 허가 및 유통 등 전분야에 걸친 불공정한 경쟁 질서가 근본적으로 개혁되지 않는 한, 약가인하만으로는 리베이트 관행을 근절할 수 없다. 약가인하는 필요 조건이지 충분 조건이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2. 10년 유예는 개혁이 아니라 지연, 준혁신형 제도는 또 다른 특혜 

이번 개편안은 기등재 의약품에 대해 최장 약 10년에 걸친 단계적 약가 조정을 예고했다. 충격 완화를 위한 배려는 이해할 수 있으나, 10년에 달하는 유예 기간은 그 자체로 시장 구조 개편을 사실상 무기한 지연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변화 의지가 진지하다면 단계적 조정의 기준과 실행 점검 체계를 훨씬 명확하고 단기적으로 설계했어야 한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번 개편안에 새롭게 포함된 준혁신형 제약기업 제도이다.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 요건에는 미치지 못하나 일정한 R&D 투자 비중을 갖춘 기업에 한시적 약가 우대를 부여하겠다는 취지이다. 

그러나 그 지정 기준과 평가 방법은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다. 이는 실질적인 신약 개발 역량이 없는 기업들을 사실상 준혁신형이라는 이름으로 정부 지원 틀 안에 편입시켜 연명하게 만들 수 있는 모호한 정책 수단이다. 제약산업 생태계의 건강한 재편을 위해서는 오히려 혁신 역량이 없는 기업의 시장 퇴출 경로를 명확히 하는 것이 환자와 국민을 위한 올바른 방향이다.

3. 세금으로 취약 산업을 연명시키는 구조, 성과부터 공개하라

이번 건정심 의결의 기저에는 약가인하를 통해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하고, 한편 제약·바이오 R&D에 투자를 강화해 주겠다는 정부의 구상이 깔려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구상이 자칫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한다고 하면서 적장 세금으로 전망 불분명한 제약기업을 재정 지원하는 구조가 반복된 위험을 우려한다.

한국은 2000년 의약분업 시행 이후 지금까지 26년간 정부 차원에서 제약산업 R&D에 막대한 세금을 투입해왔다. 그러나 이 투자가 실제 신약 허가, 글로벌 매출, 고용 창출, 기술 이전 등 산업 발전에 어떠한 성과를 가져왔는지에 대한 체계적이고 독립적인 평가 결과는 국민에게 제대로 공개된 바가 없다.

우리는 촉구한다. 의약분업 이후 현재까지 정부가 제약 R&D에 투입한 예산의 총규모와 사업별 성과를 즉각 전면 공개하라. 그 평가 결과를 토대로 향후 지원의 효과성과 타당성을 국민 앞에 입증한 이후에야, 추가적인 재정 지원을 논의할 수 있다. 성과 검증 없는 반복적인 재정 투입은 환자와 납세자에 대한 무책임이다.

4. 진짜 문제는 리베이트로 시장을 잠식하는 유령 제약사 구조다

현재 국내 제약 시장에는 독자적인 생산 설비나 유의미한 연구 역량 없이 의약품판촉영업자(CSO) 등을 활용한 리베이트 영업만으로 시장에서 점유율을 유지하는 제약기업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이들은 실질적인 품질 경쟁이나 혁신 투자 없이 불법·편법 영업을 통해 처방 시장을 잠식함으로써, 실제로 연구 투자를 하고 정상적인 영업 활동을 하는 제약기업들의 경쟁 기반을 훼손하고 있다.

약가를 낮추더라도 이 구조가 온존한다면, 경쟁력 있는 제약기업들이 혜택을 보는 것이 아니라 리베이트에 능숙한 기업들만 왜곡된 시장 지위를 유지하게 될 뿐이다. 가격 인하가 아니라 경쟁 질서의 정상화가 핵심이다.

5. 요구사항: 제약시장 공정화를 위한 범정부 조직을 즉각 출범시켜라

이상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우리 의약주권 환자소비자연대는 정부에 다음을 강력히 요구한다. 보건복지부·식품의약품안전처·공정거래위원회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제약시장 공정화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즉각 출범시킬 것을 요구한다.

이 조직은 다음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① 리베이트 근절 및 CSO 관리 강화 — 불공정 처방 유인 행위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 체계 및 처벌 기준을 강화하라. 특히 CSO의 리베이트가 적발되었을 시 관련 제약회사가 공동으로 책임질 수 있는 기전을 마련하라. 

② 실질 생산 역량 없는 제약사 퇴출 기준 마련 — 의약품 제조 실질 역량 평가 기준을 정비하고, 기준 미달 기업에 대한 명확한 퇴출 경로를 제도화하라. 특히 현재 생물학적동등성 시험을 수행하지 않고도 제네릭 의약품을 허가받을 수 있는 위탁생산 허용제도를 ‘위탁생산 금지제도’로 개편하라. 

③ 의약분업 이후 제약 R&D 재정 지원 성과 전면 공개 — 정부 부처 합동으로 투자 규모 및 성과를 독립적으로 평가하고 그 결과를 국민에게 공개하라

④ 실거래가 상환제도 전면 개편 — 의약품 유통시장의 불공정 행위의 온상이 되고 있는 실거래가 상환제를 전면 개선하라

약가인하는 시작일 뿐이다. 약값을 낮추는 것만으로 환자가 더 좋은 약을 더 공정하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리베이트가 구조화된 시장에서는 약가인하의 과실이 환자에게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왜곡된 유통 구조 속으로 사라질 수 있다.

정부는 절감된 건강보험 재정을 다른 방법의 제약산업 지원으로 순환시키기 이전에, 20년 넘게 이어온 세금 투입의 성과를 먼저 국민 앞에 공개하고, 제약시장의 공정한 경쟁 기반을 만드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우리는 환자와 납세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입장에서, 이번 약가 개편이 리베이트 구조 혁파와 제약시장 공정화로 이어지는 진정한 개혁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하며, 그 이행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촉구할 것임을 선언한다.

*외부 전문가 혹은 단체가 기고한 글입니다. 외부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