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절 연휴 때면 응급실이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설 연휴기간 서울 종합병원 응급실에는 응급처치를 필요로 하는 환자뿐 아니라 술에 취한 사람과 빠른 응급처치를 요구하는 폭력행위가 비일비재했다. 삼성강북병원 등 시내 55개 종합·대학병원 응급실이 응급의료기관으로 지정됐지만 치안대책은 없었다. ◇응급실에서의 흉기와 폭력=지난 17일 오전 0시30분쯤 서울 도곡동 영동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 수 년전 사고로 왼팔을 잃은 현모(43) 씨가 찾아왔다. 현씨는 왼쪽 어깨 아랫 부분의 고통을 호소하며 “빨리 진정제를 처방해 달라”고 외쳤다. 의료진은 ‘순서를 기다리라’며 주의를 줬으나 현씨는 품안에 있던 흉기를 꺼내 병원 안전요원 박모(24)씨의 팔뚝을 그어 7㎝ 가량의 상처를 입혔다. 이 병원에서는 불과 2시간 전 당직 의사와 안전요원이 환자 일행에게 폭행당하는 일도 있었다. 16일 밤 10시30분쯤 왼쪽 손에 상처를 입은 이모(38) 씨와 친구 김모(38) 씨가 술에 취한 상태로 택시를 타고와 응급실을 찾았다. 김씨는 응급실 문을 열어주는 안전요원을 보자마자 “빨리 치료하라”며 급소를 걷어찼다. 환자 이씨는 응급의학과 전공의 최모(32) 씨를 주먹으로 때리고 병원 집기를 집어던졌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이들을 폭행 혐의로 각각 불구속 입건했다. ◇사실상 사문화한 법조항=16일 오후부터 19일 오전까지 서울 응급의료정보센터(02-1339)에는 모두 5370건의 응급진료 문의전화가 걸려왔다. 이 가운데 구급차가 출동해 실제 환자를 후송한 경우는 18일 자정까지 1572건을 기록했다. 반면 서울 일선서에서 단순 폭력이 아닌 응급의료법 위반으로 입건된 사례는 찾을 수 없었다. 원인은 법조항이 버젓이 있는 데도 일선 병원과 경찰이 이에 따르지 않고 편의적인 사건처리를 하는 데서 비롯된다. 현행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은 응급환자에 대한 구조·이송·응급처치 또는 진료를 방해하거나 의료용 시설을 파괴·손상·점거하는 행위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집기를 부수거나 의료진을 때린 피의자도 단순 폭행으로 입건하고 있다.치안 우려가 예상되는 연휴기간 응급실에 경찰관을 고정배치하는 것에도 부정적이다. 병원측 자체 안전요원이 있기 때문에 인력 낭비라는 판단이다. 반면 병원이 고용한 안전요원들은 상호 폭행으로 말려들 것을 우려해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않는 형편이다.서울아산병원 경호팀원 김모(25) 씨는 “3단봉 등 진압장비가 있지만 실제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면서 “위압감을 줘도 안통하면 사후 경찰에 신고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메디포뉴스 제휴사-국민일보 쿠키뉴스 우성규 김경택 기자(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