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회사에 근무하는 최모(28)씨. 신입사원인 데다 일도 많아 최근 한달째 야근을 한 최씨는 지난 주말 몸이 으슬으슬하며 열이 나기 시작했다. 몸도 피곤한데 날씨까지 갑자기 추워져 단순 감기려니 생각하고 며칠 쉬었지만 낫지 않았다. 어깨와 가슴이 심하게 결리는 통증을 견디다 못해 병원을 찾은 최씨에게 내려진 최종 진단은 이름도 생소한 대상포진(帶狀疱疹).
갑자기 내려간 수은주 탓에 애, 어른 할 것 없이 감기 비상이다. 하지만 감기인줄 알고 병원에 갔다가 감기가 아닌 대상포진이란 진단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아 주의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환자가 최씨처럼 대상포진이라는 병에 대해 잘 모르는데다 초기 증상이 감기와 비슷해 초기 치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실제 대상포진 환자의 88.2%가 확진을 받기 전까지는 스스로 대상포진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으며, 74.5%는 대상포진이라는 병에 대해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응답했다는 대한피부과의사회의 조사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대상포진을 노인병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도 치료시기를 놓치는 한 원인이 된다. 면역력이 떨어지는 노인층을 중심으로 많이 발병하긴 하지만 젊다고 안심할 수만도 없는 병이 대상포진이기 때문이다. 강한피부과 강진수 원장은 "2004년부터 최근 4년여간 진료한 대상포진 환자 186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5%가 20∼30대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는 현대인의 복잡한 라이프 스타일과 환경오염,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젊은이들의 면역력이 점점 저하되고 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대상포진을 일으키는 병균은 '바리셀라 조스터 바이러스'로 2∼10세 아이에게 수두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다. 어릴 때 수두를 앓고 나면 이 바이러스가 신경세포에 잠복하게 되는데 면역력이 떨어질 때 활동을 재개해 신경가지를 따라 띠를 두르듯 퍼지면서 대상포진을 일으키는 것.
발병률은 수두 경험자 5명 중 1명 꼴. 특히 신체리듬이 깨지기 쉬운 환절기나 스트레스가 심할 때 발병하기 쉽다. 주의할 것은 초기 증세가 감기나 신경통과 비슷해 적당히 쉬면 낫겠지 하는 생각으로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점.
아주대병원 통증의학과 김찬 교수는 "발병 초기에 적절한 치료를 못받게 되면 포진 후 신경통으로 이환, 평생 고질로 자리잡을 위험이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포진 후 신경통이란 대상포진이 치료된 후에도 수주나 수개월, 혹은 수년간 신경통이 계속되는 후유증을 말한다.
대상포진에 걸리면 처음엔 몸의 한쪽 부위가 몹시 아프다가 피부에 반점과 함께 물집이 잡힌다. 통증은 가슴, 허리, 팔, 얼굴 순으로 많이 나타난다. 그래서 신경통이나 디스크, 오십견, 늑막염으로 오진받는 일도 있다. 따라서 평소 경험해보지 않은 통증이 몸의 어느 한 쪽에만 나타날 때는 대상포진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바이러스가 오른쪽 또는 왼쪽으로 한 가닥씩 나와있는 신경 줄기를 따라 퍼지기 때문에 증상이 한 쪽으로만 나타난다. 피부 반점과 물집은 통증이 나타난 뒤 보통 3∼10일 지나서 생긴다. 처음에는 작은 물집이 드문드문 나타나다가 점점 뭉치면서 띠 모양이 된다. 그러다 점점 껍질이 딱딱해지다가 1∼2주가 지나면 딱지가 떨어진다.
진단 및 치료는 피부과 또는 통증의학과 전문의가 한다. 물집 발생 후 3일 이내에 항바이러스제를 주사하면 발진과 통증을 가라앉히고, 포진 후 신경통 발생 위험도 줄일 수 있다. 테마피부과 임이석 원장은 "치료받을 때는 되도록 찬바람을 쐬지 말고 목욕할 때도 물집이 터지지 않게 해야 한다"며 "현재 수유중인 여성은 치료 약물이 모유를 통해 아기에게 전달되므로 모유수유를 중단하고 아기와의 접촉도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메디포뉴스 제휴사-국민일보 쿠키뉴스 이기수 전문기자(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