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이하 국시원) 김문식 원장(61)은 알려진 그대로 소박하고 열정적이었다. 대단한 달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2시간 가까운 인터뷰가 짧게 느껴질 정도로 논리에 막힘이 없었다.
의사국시를 비롯한 국가시험 선진화, 주관기관의 발전방향, 그리고 최근 논의의 중심이 되고 있는 의학전문대학원 졸업예정자의 응시자격 문제까지 김문식 원장의 의견을 정리했다.
상대평가제 도입 추진중
▲ 2007년과 2008년 의사국시 합격률이 8%나 차이가 나면서 이른바 “널뛰기 합격률”이라는 지적이 있는데...
-기존의 절대평가제는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난이도에 따라 합격률이 크게 요동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국시원에서는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상대평가제로의 전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난이도에 상관없이 일정수준의 합격률을 유지할 수 있고, 이는 일정 수준의 보건의료인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미국을 비롯한 의료선진국에서는 대부분 상대평가제를 채택하고 있다. 내가 25년 전에 미국 의사시험 볼 당시, 절반도 맞추지 못한 것 같아 실망하고 있었는데 합격통지가 왔다. 상대평가제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 상대평가제의 전환에 걸림돌은 무엇인가?
-현재 의료법 시행규칙 제2조의 별표(국가시험의 합격자는 전 과목 총점의 60퍼센트 이상, 매 과목 40퍼센트 이상을 득점한 자로 한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어, 이를 개정하는 것이 1차적인 목표다.
아울러 주관기관의 신뢰를 강화해 상대평가에 대한 오해의 소지를 없애는 것도 선결과제다. 최대한 전문화-객관화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될 것이다.
아시아 최초로 의사 실기시험 도입
▲ 의사 국가시험에 실기시험을 도입하는 이유는?
-2009년부터 의사국시에 실기시험이 포함된다. 단적인 예로 인체 모형에 주사를 놓고, 가상의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다.이를 위해 현재 ‘표준화 환자’,
즉 실제 환자처럼 연기하는 지원자를 모집하고 있다. 이들에게도 일정 수준의 교육이 필요하다.실기시험은 점수를 계량화해서 필기시험 점수에 산입하는 것이 아니라, 합격과 불합격만을 판정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 실기시험 도입은 그야말로 패러다임의 변화로 보여지는데 문제점은 없는가?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은 역시 대부분 실기시험을 채택하고 있다. 환자를 진료해야 할 의사에게 실기시험은 당연한 것 아닌가?
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가 최초의 경우가 될 것이다. 일본은 본과 3학년 진급시, 즉, 임상실습을 나가기 전에 실기시험을 치르도록 하고 있지만, 면허시험에는 실기시험이 포함되지 않고 있다.
한편 실기시험은 하루나 이틀에 마칠 수가 없다는 문제가 있다. 미국에서는 1년에 360일, ‘연중으로’ 실기시험이 진행된다.우리도 최소한 연간 100일 이상의 실기시험 기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먼저 시험을 본 응시자와 나중에 시험을 치르는 사람과의 형평성 문제가 거론될 수 있다. 따라서 실기시험은 철저하게 상대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따라서 “실기시험을 치르되, 상대점수화 하는 것은 국시원 원장이 정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시행규칙 개정을 추진하고자 한다.
의전원생 불이익 없도록 최선
▲ 의학전문대학원 졸업예정자의 국시 응시 자격부여 문제는?
- 의전원 문제는 복지부에서 입법예고를 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의료법 제5조 1항에 “의학이나 치과의학을 전공하는 대학을 졸업하고 의학사나 치과의학사 학위를 받은” 사람에 “의치의학전문대학원 졸업예정자”를 포함시키는 개정이 최대한 빨리 이뤄지기를 바란다.
최악의 경우 (사견임을 전제로) 경과조항을 달아서라도 일단 의전원 졸업예정자에게 응시자격을 부여해야 한다. 시험 후에 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소급적용해서 응시자격을 인정하는 방식이다.
물론 법치주의 적인 관점에서는 어긋나는 것이지만, 이것은 너무나 상식적인 사안이다.
복지부가 결정할 사안이지만, 최악의 경우에도 피해가 없도록 하는 것이 시험주관기관의 자세라고 본다.
컴퓨터 이용한 시험방식 준비중
▲ 시험 선진화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는데?
-선진국에서는 시험문제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이 많다.
“어떻게 출제하는 것이 정확한 평가인가”, “가장 변별력 높은 문제는 무엇인가” 등을 연구하는 것이다. 좋은 문제가 많이 개발되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실행에 들어간 것은 “문제 해결형”의 확대다. 예를 들어 “53세 환자가 무엇무엇을 주소로 내원했고, 병력이 뭐고, 혈액검사 결과는 어떻고…” 등의 지문을 제시하고, 한 지문에 여러 가지의 질문을 부과하는 것이다.
소위 ‘족보’만 달달 외운 암기형 응시자는 이러한 유형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이러한 문제해결형 문항의 비중을 확대함으로써, 암기가 아닌 질병에 대한 이해를 가진 의료인을 양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의대생들의 공부 방식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줄 것으로 믿는다.
▲ 컴퓨터를 활용한 시험방안을 준비하고 있다는데?
- 보건의료 국시야말로 컴퓨터 활용이 요구되는 시험분야다. 이는 운전면허나 토플시험과는 차원이 다르다.
일단 컴퓨터를 활용하면 다양한 지문을 구성할 수가 있다. 질병부를 절개한 동영상, 심전도 그래프 동영상, 청진을 위한 심장음 등을 모두 구현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종이시험도 예전보다 많이 나아지긴 한 것이다. 도표나 엑스레이 사진 등이 컬러로 구현돼 있다. 그러나 이를 동영상과 비교할 수는 없다.
컴퓨터를 이용한 동영상-시청각 시험은 그 자체로 ‘준 실기시험’의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또다른 장점을 갖고 있다.
▲ 컴퓨터 시험 이행이 쉬운 일로 보이지는 않는데?
- 현재 우리나라의 IT 기술로 컴퓨터화된 시험 정도는 충분히 구현이 가능하다. 적어도 하드웨어적인 측면에서는 그렇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소프트웨어다. 일단 수천 문항의 문제가 개발돼야 하고, 이들 문제는 모두 균질의 수준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이 같은 수준의 문항을 확보하는 데는 장기간, 10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이것은 하나의 지향점이다. 내 임기에 끝날 일이 아니기도 하다.그러나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미 준비작업에 착수한 상태로, 최적의 틀을 세우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의사국시 민간기관 이양, 아직은 더 기다려야
▲ 일부에서 의사국시 민간 이관문제가 거론되는데?
-실제로 미국에서는 민관기관이 이를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별도의 (민간)기관에서 국가시험을 주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컨센서스의 부재가 가장 큰 문제다. 준국가기관에서 주관을 해도 이견과 우려의 목소리가 많은 것이 국가시험인데, 사회적 합의도 없이 (민간)기관에서 이를 담당할 경우, 공정성-객관성 확보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쇠고기 문제에 대해 수입업자들이 “우리가 책임지고 광우병 우려가 없는 고기만을 수입할 테니 믿어달라”고 주장한다면, 누가 귀를 기울이겠는가?
완전한 사회적 합의, 혹은 신뢰가 구축되기 전까지 민관기관 이양은 보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그외의 문제점은?
-여기에는 ‘규모의 경제’ 논리가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미국처럼 많은 인원을 대상으로 시험을 치른다면 모를까 3천5백명의 의사국시 응시자를 대상으로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수험비용의 상승은 불을 보듯이 뻔한 것이다.한발 물러나 의사국시는 그렇다고 친다 해도, 한의사를 비롯한 다른 보건의료 직종의 국가시험은 어떻게 할 것인가? 연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시험주관은 엄청난 비용을 수반할 텐데, 직종간 형평성을 맞출 수가 없다.국시원은 그간의 노하우와 20개 직종이라는 ‘규모’가 확보돼 있기 때문에 그나마 일정수준으로 수험료를 억제할 수가 있게 된 것이다.
▲ PEET 관할을 요청받았다는데?
- 의학교육 입문검사(MEET)와 치의학교육입문검사(DEET)을 주관하는 교육과정평가원에서 약학교육입문검사(PEET)까지 담당하는 데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이 기관은 대학입시 업무만으로도 엄청난 곳 아닌가?
교육부에서 국시원에 PEET 주관을 요청한 상태다. 엄밀히 말해 국시원은 이를 주관할 능력은 있지만, 단순한 시험이 아닌 사회적 파장이 큰 사안인 만큼, 시간을 갖고 기다려야 할 문제다.
만약 국시원이 이를 주관한다면 “수익 없는 수익사업”의 형태가 될 것이다(웃음).
보건의료 관련 정부기관의 시험을 많이 주관하는 편인데, 정부예산 쪼개 쓰는 입장에서 많은 비용을 지불할 수 없다. 그래서 대부분 수익을 낼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예산문제로 시험의 질을 떨어뜨릴 수는 없다.
▲ 그외에 국가시험 수준 향상을 위한 의견이 있다면?
-현재 국시 출제위원들은 그야말로 ‘자진봉사’ 수준의 보수를 받으며 일을 하고 있다.출제위원이라면 각 병원에서 어느 수준 이상의 선생님들인데, 그들이 일주일간 호텔에 ‘감금’돼 출제업무를 하는 대신, 병원에서 진료를 한다면 얼마나 많은 수익의 차이가 발생하겠는가?
현재까지 사명감과 봉사심으로 꾸려 왔지만, 언제까지 이를 계속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보수의 현실화가 추진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