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유형별 수가계약이 시작된 이후 매해 반복된 의원급의 수가협상 결렬.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수가계약이 결렬된 의원급 수가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부대조건이라는 단서를 달고 수가가 결정됐다.
이에 회원들은 수가를 구걸해 얻은 결과라며 의협 집행부에 강한 불만을 제기했고, 가입자단체는 정부의 퍼주기라고 규정하며 날선 비판을 내놓는 현상이 매해 반복되는 형국이다.
의사협회 역시 수가협상이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며 개선을 요구한다. 여기서 의사협회를 비롯한 모든 공급자단체는 수가협상의 구조적 문제점으로 무엇보다도 “수가협상이 공단의 재정영위원회에서 수가인상 범위를 사실상 결정해 놓고 그 범위 안에서 수가계약이 체결된다”점을 꼽고 있다.
즉, 구조적으로 당사자 간 협상이 불가능한 형태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러나 수가계약으로 인해 나타나는 문제점은 단순한 ‘수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여기엔 재정운영위원회, 환산지수, 지불제도 등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수가협상 아닌 수가고시제?…병원, 규모별 환산지수 차등화
그동안 수가계약 과정에 대해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이상돈 교수는 ‘수가계약의 이론과 현실’이라는 책을 통해 “2005년을 제외하고 단 한 차례도 완벽하게 계약이 체결된 경우가 없다”며 사실상 수가계약제가 아닌 ‘수가고시제’로 명명했다.
이상돈 교수의 지적은 공급자측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올해도 마찬가지로 의사협회의 수가는 공단과의 협상결렬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결정된 것이 예라할 수 있다.
허나 수가협상 과정을 놓고 보면 ‘수가고시제’라고 단언하기엔 무리가 있다. 건보공단은 재정운영위원회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각 유형에 따른 협상을 벌이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서 또 다시 제기되는 것이 ‘수가결정의 구조적 문제’로 귀결된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고 보다 나은 수가협상이 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환산지수 공동연구, 비급여 규모의 파악, 병원에 대한 유형 세분화, 재정운영위원회 권한 등과 함께 장기적으로는 지불제도 개편 등이 거론되고 있다.
병원 유형의 세분화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매해 업무계획에 넣을 정도로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이다. 또한, 병원 유형의 세분화는 건보공단 환산지수 연구에서도 매번 개선 사항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의료계로선 그리 반길만한 상황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지난 2010년 유형별 환산지수를 연구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형웅 박사는 “현행 병원급을 하나의 환산지수로 계약하는 방식에서 요양기관 규모별 환산지수로 분류해 차등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가 이처럼 유형의 세분화를 제언한 것은 상대가치가 행위의 투입자원원가와 난이도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면 단일 환산지수를 적용할 수 있으나 병원급의 현실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형 세분화, 병원 간 격차 개선위한 방안으로 바라봐야
또한, 병원급은 종별가산율로 보정한 상대가치에 단일 환산지수를 곱한 보상금액이 요양기관 유형별 경영수지를 균형있게 보전하지 못함에 따라 환산지수를 유형별로 달리해야 한다고 보았다. 여기에 보태 비급여 행위원가를 산출해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아마로 이런 문제들 탓인지 올해 수가결정에서 건보공단과 공급자측은 ‘회계자료 제공’을 부대조건으로 전제하고 합의를 이룬 것으로 보여진다.
병원의 유형 세분화에 대해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유형의 세분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상대가치점수가 모든 유형 간에 동일하다면 문제가 안되지만 실질적으로 차이가 크다”면서 “상급병원에서 조차 Big5를 제외하곤 격차가 크다. 이렇게 병원 유형에 대한 수가인상률을 평균적으로 적용하면 중소병원이나 기타 힘든 병원들은 계속 힘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박재용 교수는 지난 대한병원협회가 주최한 ‘우리나라 건강보험 살리기’ 워크숍에서 수가계약제도 개선방안과 관련해 “유형별 계약대상을 상급종합병원, 종합병원 등 유형의 세분화를 통한 계약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시민단체 역시 수가계약에서 병원의 유형 세분화가 올바른 방향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경실련 사회정책국 김태현 국장은 “병원의 유형 세분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구조에 맞는 적정수가를 산출하는 것이 어렵다”며 “건강보험구조 계획 당시부터 병원의 유형 세분화가 필요했다. 다만, 병원의 유형 세분화 시점이나 총진료비 규모에서의 분배가 문제이다. 따라서 세분화와 함께 기능 정립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형 세분화 협상력 쪼개기…공급자도 재정소위 참여 필요
병원의 유형을 세분화할 경우 협상 당사자를 유형을 나눈 당사자와 계약을 할 것인지 등과 함께 의료계가 이를 긍정적으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병원의 유형 세분화가 현재의 수가계약이나 병원간의 격차를 줄이는데에 의료계는 다소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병원의 유형 세분화에 대해선 검토한바 없다”고 잘라 말라며 “유형을 세분화하는 것에는 병원계도 반대할 것이다. 이처럼 유형을 세분화하는 것이 종국엔 수가협상에서 병원계의 협상을 쪼개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이 관계자는 “공급자도 공단 재정운영위원회 소위원회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 건강보험재정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알아야하기 때문이다. 분명 재정에 대한 폐해가 크다고 본다”고 말하며 “향후 이에 대한 제도개선을 공급자측과 논의해 건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병원의 유형 세분화와 관련해 대한병원협회 박상근 부회장은 한 마디로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병원협회 박상근 부회장은 “병원의 유형 세분화는 단기적으로 그렇고 장기적으로도 맞지 않다”면서 “유형을 세분화 하려는 시도는 병원계의 협상력을 나누기 위한 일종의 수단으로 이해된다”고 말했다.
이어 박 부회장은 “문제를 병원의 유형 세분화가 아니라 ‘종별가산률’로 풀어야 할 것으로 본다”며 “병원이 병상별로 과별로 각기 다 다른 상황에서 유형을 세분화한다면 정부가 각각의 기관과 계약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 문제는 단순하게 볼 수 없는 것으로 심도있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박상근 부회장은 “병원협회의 기능이 단순한 수가계약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회원들을 관리, 수련 등등 여러 가지의 기능을 하고 있다. 그런데 유형을 세분화할 경우 여기에 어려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보이며 “유형 세분화를 단순한 수가계약 측면으로만 보는 것은 타깃팅만 바꾸자는 논리로 이는 맞지 않는 대안이다. 정책적으론 탄력적인 종별가산이 맞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영석 박사는 매번 반복되며 지적되고 있는 수가 결정 구조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며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신영석 박사는 “당사자 간 정당한 게임의 법칙이 성립할 수 있어야 한다. 유형별 계약제 하에서는 협상 기회를 단일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동시에 매년 반복되는 연구결과 불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