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갖가지 규제정책으로 인해 얼어붙었던 제약시장이 올 하반기에는 서서히 녹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 있는 제약업계 관계자들은 ‘목이 졸리는 상황’이라는 표현을 쓸 만큼 하반기의 환경도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다.
◆상반기=제네릭 호황기 ‘저 멀리’, 정부규제 압박 가중
특허만료 되는 오리지널 의약품이 속출하는 2011년은 국내 제약업체들에게 제네릭 출시 호재가 되는 듯한 모습이었다.
2004년 이후 특허만료 되는 오리지널 의약품의 시장 규모가 2000억원을 넘는 해였기 때문이다. 올해 특허만료 된 의약품은 가스모틴(3월), 아타칸(4월), 자이프렉사(4월), 아프로벨(6월) 등이다.
그러나 제약업계의 기대감은 정부의 각종 규제정책으로 인해 오래 가지 못했다. 연초부터 정부가 리베이트 합동조사단을 꾸려 업체들을 압박하는 한편, 기존의 약가인하 정책에 더해 또 다시 일괄적인 약가인하 움직임이 일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리베이트 조사가 올 들어 더욱 강력하게 실시되면서 영업활동이 급격하게 위축됐고, 이는 매출감소로 직결됐다.
금감원 공시자료를 기준으로 상위 10개 업체의 1분기 매출액을 분석한 결과, 10곳 중 녹십자, 한미약품, 중외제약, 일동제약 등 4곳의 매출액이 전년 동기보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웅제약과 유한양행 2곳은 1%에도 못 미치는 미미한 증가율을 보였다.
결국 전년 1분기보다 올 1분기에 실질적으로 매출이 증가했다고 볼만한 곳은 4개 업체 정도에 불과한 것. 이마저도 5%이상 증가한 곳은 제일약품(+9.80%)과 LG생명과학(+8.09%)뿐이었다.
여기에 리베이트 약가인하 연동제가 시행되면서 직접적인 매출타격이 가중됐다. 철원지역 공보의 리베이트 사건으로 약가인하가 결정된 7개 제약사의 경우 한 업체가 400억원대의 손실이 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올 만큼 피해규모가 상당하다.
또 최근 공정위로 부터 불법 리베이트 혐의가 입증된 9개 제약사 가운데 5개 업체가 약가인하의 대상이 될 예정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악화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약가인하를 강행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지난 10일 열린 한-일제약협회 공동세미나에서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류양지 과장은 “제네릭 가격이 높다는 여론이 많아 특허만료 오리지널 및 제네릭 가격을 인하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공식화한 바 있다.
제약협회는 “더 이상의 추가인하는 안 된다”며 반발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정부가 ‘인하’에 무게를 두고 방법과 수준 등 세부사항을 논의하는 단계라는 점에서 협회 의견이 반영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하반기=연구개발 투자가 ‘최선책이자 유일책’…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권가에서는 제약업계의 하반기는 그리 어둡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을 잇달아 내놓고 있어 눈길을 끈다.
리베이트 근절 등 정부 규제로 다수의 중소형업체가 시장 경쟁에서 도태되는 데 반해 상위업체의 시장점유율은 더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상위업체들은 해외 제약사 및 바이오 벤처 인수를 통한 파이프 확보가 가능하다는 것.
업황둔화에도 불구하고 하반기 제약주를 눈여겨 봐야하는 요인에 대해 대신증권 정보라 애널리스트는 “상위제약사들의 실적이 신제품출시와 기저효과로 3분기부터 턴어라운드 할 것으로 추정된다”며 “2012년부터 본격화될 해외진출 성과에 대한 기대감도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정 애널리스트는 “최근 주가하락 및 7, 8월경 리베이트 이슈와 제네릭 약가인하 정책들로 인한 주가 조정기는 매수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주요 상위사의 하반기 전망을 보면,
동아제약-천연물신약 위장운동촉진제(DA-9701)이 해외 판권을 체결한데 이어 발기부전치료제 ‘자이데나’는 내년 하반기 마국내 시판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레이노증후군’에 대한 국내 임상에 들어간 상태다.
또 슈퍼항생제(DA-7218)은 피부연조직 두 개 경로에 대한 임상3상이 진행중으로, 2013년께 발매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약품-올 5월 ‘아모잘탄’으로 머크와 2조원대의 수출계약을 맺었다. 단일 품목으로는 국내제약 업계 최대 규모다.
이와 함께 북경한미약품의 성장도 큰 역할이 될 전망이다. GSK 중국법인으로부터 신제품을 도입해 주력 18개 품목이 작년 4분기 대도시 중심의 입찰에 성공한 사례가 이를 뒷받침한다.
유한양행-올해 특허만료 되는 대형 블록버스터의 제네릭 출시와 작년 도입한 바이엘사의 트윈스타, 최근 길리어드사로부터 도입한 비리어드 등 신제품 매출이 400~450억원가량 발생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러나 이는 상위 업체들에게서 극히 한정된 부분이며, 앞으로의 시장점유율에 있어서도 대기업의 점유가 더 막강해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전반적인 제약업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R&D투자율을 높이는 것’이 경쟁력 강화를 위한 ‘최선책이자, 유일책’이라는 지적이다.
현재 국내 상위 10개 업체의 연구개발비용은 6.6%다. 이는 일본 19%, 글로벌 제약사 10개 업체의 평균 16.7%와 비교했을 때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해외매출 비중도 10~15% 수준으로 대부분이 원료의약품 수출과 동남아 및 제3세계 수출이 차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제약업계 관계자는 “제약업체들의 판관비와 투자비를 비교하는 수치를 숫자로 넘길 일은 아니다. 우리도(투자가 부족한 점은) 느낀다”며 영업보다 투자에 소홀한 업계상황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정부 정책이 무리하다는 점에서는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업계 사람들이 만나 얘기를 해봐도 변화해야 한다는데 동의하고, 자정해야 한다는데 뜻은 함께 한다”며 “그래도 업계 생존이 걸린 ‘가격’에 대한 얘기가 계속되니까 우리는 정말 목이 졸리는 상황이다. 이러면 투자는 둘째 얘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