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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의원

100번째 환자 이송, 하늘 위 응급실 ‘닥터헬기’

“삐삐삐삐. 운항통제실입니다. 닥터헬기 출동하겠습니다”


지난 23일 오전 11시58분. 가천대 길병원(병원장 이명철) 운항통제실에는 한 통의 긴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강화도에서 물에 빠진 응급환자가 발생해 응급의료 전용헬기 ‘닥터헬기’의 출동을 요청한 것.

이날 오전 주말을 맞아 가족과 함께 펜션으로 놀러간 이모(3・여)양은 수영장에 빠진 상태로 발견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구조대원들은 즉각 심폐소생술을 실시한 뒤 인근 강화병원으로 이양을 이송했다. 하지만 이양의 상태가 좋지 않자 강화병원은 길병원으로 환자 이송을 요청했다.

길병원 의료진을 태운 닥터헬기는 지체 없이 현장으로 날아갔고 낮 12시20분 인계점인 안양대 강화캠퍼스에 도착했다. 이양은 가까스로 의식은 잃지 않고 있었으나 숨을 잘 쉬지 못했고 호흡도 불안정한 위급한 상태였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길병원 응급의학과 조진성 교수는 “이양은 움직이기만 할 뿐 반혼수상태였다”며 “혈액 내 산소포화도의 경우 보통 96% 이상이 정상인데 90%까지 떨어지는 등 거의 죽기 직전 상태였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간단한 기도호흡 처치와 약물 투여 등이 이뤄진 뒤 낮 12시48분 환자와 보호자를 태운 닥터헬기가 출발했고, 11분 만인 낮 12시59분 길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이양에게는 신속한 저체온치료가 실시됐고 결국 다음날인 24일 오후 이양은 안정을 찾고 눈을 뜰 수 있었다.

조진성 교수는 “현장에서 바로 심폐소생술을 잘 했고 닥터헬기를 통해 적절한 처치를 하면서 신속히 이동했으며 응급실에서 저체온치료를 했다. 이 세 가지가 잘 돼서 의식이 회복됐다”며 “아마도 셋 중 하나라도 잘 안 됐으면 목숨이 위험하거나 식물인간이 됐을 것”이라고 전했다.



길병원 응급의학과 양혁준 과장은 “신속한 처리를 한 덕분에 환자가 깨어날 수 있었다”며 “환자가 거의 후유증 없이 깨어난 것은 대단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이양의 이송으로 길병원의 하늘 위 응급실 닥터헬기가 100번째 환자를 후송했다. 지난해 9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응급의료 전용헬기가 도입된 후 9개월여 만이다.

길병원, 지난해 9월 닥터헬기 국내 첫 도입
닥터헬기는 길병원이 보건복지부의 응급의료 전용헬기 사업 수행 의료기관으로 선정된 후 지난해 9월24일 첫 환자를 이송하면서 본격적인 임무 수행에 나섰다.

당시 길병원 의료진은 작업 중 사다리에서 떨어져 심장이 정지한 상태로 발견된 윤모(63)씨를 닥터헬기에 태워 이송했다. 이송 과정에서 윤씨의 혈압이 떨어지는 등 아찔한 상황도 연출됐지만 윤씨는 결국 구조 요청 40여분 만에 저체온치료를 통해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지난 2월 엽총 난사 사건 때도 닥터헬기의 강점이 발휘됐다. 길병원 의료진을 태운 닥터헬기는 충남 서산에서 발생한 엽총 난사 사건으로 중상을 입은 임모(29)씨를 이송하기 위해 출동했다. 닥터헬기를 통해 길병원 응급실로 후송된 임씨는 대량 출혈로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었지만 빠른 이송과 의료진의 효율적인 대처로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신속한 대처로 생명을 살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닥터헬기는 섬 지역 등 의료 취약지 응급환자의 신속한 이송을 위해 도입됐다. 안전상의 문제로 일출부터 일몰까지 운항하고 있으며 60km 정도 떨어진 지역까지 출동하고 있다.

의료진과 조종사, 환자 등 최대 6명까지 탑승 가능하다. 닥터헬기는 병원 인근 헬기장에 대기하다가 환자 발생 시 의사를 태워 5분 이내에 발생지로 날아간다. 의사의 동승 없이 구조 요청지로 날아갔다가 병원으로 다시 돌아와서야 치료가 이뤄지는 소방헬기와는 달리 의사와 구조사가 출발부터 동승하기 때문에 신속한 응급처치가 이뤄진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닥터헬기는 ‘날아다니는 응급실’로 불려도 손색없을 정도의 장비를 구비하고 있다. 자동심폐소생기, 인공호흡기, 심장초음파기는 물론이고 필요한 경우 전문의가 헬기에서 내려 현장에서 간단한 수술을 할 수 있는 장비도 갖추고 있다.

환자가 병원에 도착해서 치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현장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은 닥터헬기의 최고 강점으로 꼽힌다.

지난해 12월부터는 국립중앙의료원, 경찰청, 한국도로공사, (주)대한항공 등과 응급의료 전용헬기 고속도로 이착륙장(인계점) 설정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면서 충남 서해안권 중증 환자들의 이송이 신속히 이뤄지고 있다. 서해안, 영동, 경부, 중부내륙 등 수도권 고속도로의 일부 구간 톨게이트 및 휴게소 등 100여개 소가 닥터헬기 인계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닥터헬기 100회의 기록
닥터헬기는 100회의 운항을 넘기면서 수많은 생명을 살렸다. 평균적으로 매달 10회 이상 출동해 환자를 이송했다. 지난해의 경우 9월 1건 이후 10월 11건, 11월 9건, 12월 10건 등 출동했다.

올해는 1월 10건, 2월 15건, 3월 8건, 4월 12건, 5월 10건, 6월 17건 등으로 집계됐다. 6월25일 현재까지 총 103회의 환자 이송을 완료했다. 환자 유형별로는 중증외상이 43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뇌혈관질환 17건, 심혈관질환 16건 등이 뒤를 이었다.

양혁준 교수는 “도서지역 응급환자, 교통사고, 중증외상, 심정지 환자 등이 대부분”이라며 “시간이 곧 생명인 환자들인데 닥터헬기를 통해서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의료기관으로 바로 갈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길병원 닥터헬기팀은 전문의 4명, 간호사 4명, 구조사 4명을 비롯해 조종사, 부조종사, 운항 관제사, 정비사 등 총 21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24시간 대기하며 응급상황에 신속히 대처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 발생할 지 모르는 응급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항상 긴장 속에서 살고 있는 이들이지만 부족한 인력과 장비 등 많은 어려움도 겪고 있다.

안전상의 문제로 야간에 닥터헬기 운항이 불가능하고 안개가 끼거나 바람이 부는 등 좋지 않은 날씨에도 운항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닥터헬기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있지 않은 점이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다.

양 교수는 “닥터헬기를 처음 도입하다 보니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있지 않다. 헬기가 도심에서 이・착륙할 경우 소음으로 인한 민원이 상당히 많은 상황”이라며 “아직 충분히 알려지지 않아 사람들의 인식이 불충분한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고 지적했다.

닥터헬기는 향후 활동 반경을 넓히고 중형 헬기를 도입하는 등 더 나은 응급의료를 위한 다양한 계획을 추진할 예정이다.

양 교수는 “일각에서 ‘닥터헬기가 필요하냐’, ‘쇼 아니냐’ 등 따가운 눈초리도 있지만 우리는 오로지 환자의 목숨을 구하고 시스템을 갖추는데 최선을 다할 뿐”이라며 “생명을 살리는데 기여했다는 것에 만족하고 보람을 느낀다. 닥터헬기는 응급의료에 있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고 국민 인식을 전환시키는 의의가 있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