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산업 분야의 가장 성공적인 모델로 손꼽히는 싱가폴 레플즈메디컬그룹의 루춘용 회장이 의료산업에 대한 정부규제가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라고 말했다.
의료의 특성을 고려할 때, 정부의 의료공급확대를 위한 노력과 의료행위를 통해 수익을 창출해야만 하는 병원계의 이해상충 문제는 한국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들도 겪고 있는 문제이며, 무엇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회주의적 성격을 가진 전국민 의료보험제도를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한국의료수출협회(회장 이왕준)는 가장 성공적인 병원운영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세계적으로 받고 있는 싱가폴 레플즈메디컬그룹의 루춘용 회장을 한국으로 초청해 한국 의료수출의 업그레이드 전략에 대해 논의하는 토론회를 5일 여의도 렉싱턴 호텔에서 개최했다.
루춘용 회장은 이날 행사의 기조강연자로 나서 철저한 시장조사와 탁월한 현실 분석, 그리고 보건의료산업 발전을 위한 국가의 지원이라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레플즈메디컬그룹의 병원경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을 이날 행사에 참석한 우리나라 의료계 관계자들에게 전수했다.
레플즈메디컬그룹이 운영하는 레플즈병원은 현재 60여개 클리닉과 350병상을 운영하고 있는 복합의료 그룹으로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미래 신성장동력 병원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싱가폴에서 레플즈메디컬그룹은 내과의사 출신인 루춘용 회장이 지난 1976년 동료와 함께 개인클리닉을 설립해 성장가도를 거듭하여 97년 주식회사로 전환하고 현재는 연 3000억 이상의 매출을 올리며 상장된 주식 시가총액만 약 1조가 넘는 굴지의 회사로 성장했다.
루춘용 회장은 국내에서는 보기드문 의사출신의 병원재벌로 현재 레플즈메디컬그룹 회사 주식의 과반수 이상을 소유한 대주주이며 개인 자산만 약 7억달러를 보유해 싱가폴 부호순위 33위를 기록하고 있다.
메디컬 그룹의 수장이면서도 인구 500만의 작은 나라 싱가폴의 특성상 국회의원을 역임했고 싱가폴 개발공사 사장, 주이태리 대사 등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152개가 넘는 병원 관계자들이 벤치마킹을 위해 매년 싱가폴을 찾아 레플즈메디컬그룹이 운영하는 병원의 노하우를 배우고 있다.
루춘용 회장의 강연이 끝나자 이날 행사에 내빈으로 참석한 대한의사협회 노환규 회장은 “루춘용 회장이 한국 의료제도의 특성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만약 레플즈그룹이 우리나라와 같이 병원이 정당하고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없는 것은 물론, 투자한 만큼의 회수 조차 힘든 구조적 한계를 가진 의료환경에서도 지금과 같은 성공을 장담할 수 있는가?”라고 루춘용 회장에게 질문했다.
이에 루춘용 회장은 “매우 어려운 질문이다. 사실 그러한 문제는 한국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들도 겪고 있는 문제”라며 “어디까지나 의료공급에 있어 정부가 꼭 해야 할 의무는 교육과 같은 필수 재화인 보건의료서비스의 공급을 최대한 확대 제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그렇다고 영국처럼 모든 의료비를 국가가 부담하는 것은 결국 간접세를 부과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종국에는 모두 국민이 부담을 떠안게 될 것”이라며 “분명 보건의료서비스 비용을 지불해야 할 사람은 다름아닌 서비스를 제공받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루춘용 회장은 “국가가 의료비를 부담하는 사회주의 성격을 갖고 있는 공보험 제도의 지불방식과 개인이 직접 의료비를 공급자에게 지불하는 방식이라는 양 극단의 중간 지점에서 한 쪽에 치우치지 말고 적절한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얼마나 많은 의료비 부담을 져야 하는지, 또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라며 “의료비를 세금으로만 해결한다면 국민부담이 너무 많아질 수 있기 때문에 고용주와 피고용주가 같이 지불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루춘용 회장은 “싱가폴도 그러한 문제에 있어 미세한 조정을 통해 양 극단의 균형을 찾고 있다”며 특히 “영리병원을 허용하고 의료시장을 인정하는 싱가폴에서도 고령층의 의료비를 국가가 지원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또 “의료비 지불방식의 문제는 결국 정치적 문제로 사회적 동의를 필요로 하지만 병원과 의료진이 국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있을 것”이라며 “건강보험제도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의료보험재원을 낭비해서는 안된다. 세금이든 개인비용이든 우리는 좀 더 창조적인 재원마련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는 결국 의료보험 제도 운영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방안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환자요구에 부응하며 어떻게 나라에 기여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노환규 의협회장은 루춘용 회장의 강연에 앞서 이루어진 이날 행사의 격려사에서도 정부의 의료정책이 시대에 역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언젠가 한국은행장으로 내정된 인사가 인터뷰를 통해 “우리나라의 여러 직종들이 해외 여러 나라에 진출해 경쟁을 통해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는데 유독 의사를 포함한 몇몇 직종들만이 해외진출을 포기하고 벌어들인 달러를 국내에서 쓰고만 있다”고 비판한 것을 거론하며 의료인의 한사람으로서 굉장히 화가 났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먹여 살렸던 IT산업이나 자동차 산업의 호황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가늠하기 힘든 현실에서 사실 누구보다 해외에 진출해 성공하고 싶고 그럴만한 경쟁력이 있는 직종이 바로 의사 직종이었다는 것.
그럼에도 정부가 보험자 역할을 하며 의료비를 일방적으로 통제하는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가 지나치게 의료인들의 희생만 강조해 지금의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노 회장은 “현재는 우리나라 국민 누구나 우리의 미래 먹거리가 되는 신성장동력 산업이 바이오헬스케어 분야가 될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며 이를 위해서는 “정부에서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고 의료의 질을 높여 보건의료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과 환경을 만드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서는 루춘용 회장 외에도 다양한 연자들의 강의가 이어졌으며, 한국의료의 성공적 해외진출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내외빈으로는 이왕준 의료수출협회 회장, 박인석 보건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장, 오제세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문정림 국회의원, 김성덕 중앙대 의료원장, 백남선 이화여성암병원장, 박문석 강동경희대병원장, 원주 세브란스병원 윤여승 병원장, 박우성 단국대병원장, 배기수 경기도의료원장, 송재성 전 복지부 차관, 정형선 연세대 교수 등을 비롯해 약 200여명의 청중들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