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의료시장주의자로 분류되는 정기택 교수가 신임 보건산업진흥원장에 임명돼 의료계의 반발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원격진료와 영리자법인 허용 등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발한 의사협회가 총파업을 앞두고 있는 현 시점에서 보건복지부가 의료계의 반발을 무시하고 정 교수를 임명한 것이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제6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장에 정기택 경희대 의료경영학과 교수를 임명했다고 3일 밝혔다.
정 교수는 지난 3일 오전 9시 보건복지부 세종청사에서 문형표 장관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보건산업정책국을 들러 직원들과 인사를 나눴고 이태한 인구정책실장(전 보건의료정책실장)과도 만나 환담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 고경화 전 원장의 사임 이후 공석이었던 보건산업진흥원장 선출 공모에는 정기택 교수 외에도 이신호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보건의료정책본부장, 선경 고대의대 흉부외과 교수가 지원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복지부는 3인의 지원자에 대한 검증작업을 진행한 끝에 최종적으로 정기택 교수를 선택했다.
현재 새누리당 국민건강특별위원회의 민간위원을 맡고 있는 정 교수는 그동안 의료산업을 육성하고 규제를 완화할 것을 강력히 주장해 온 대표적인 의료민영화론자로 분류된다.
특히 정부용역 연구를 주로 맡으며 영리병원 도입, 병원경영지원회사(MSO) 확대, 원격의료 허용, 네트워크치과의원 활성화, 민영의료보험 활성화, 의료산업화 등 주요 보건의료정책들의 이론적 근거를 세우는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또한 IT-헬스산업의 일자리 창출, 의료산업 선진화방향, 건강보험의 진화와 미래 등 일련의 저서들을 통해 원격의료와 병원의 영리자법인을 도입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보건의료산업을 육성하고 지원해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역할을 하기 위해 한국보건산업진흥원법에 근거해 지난 1999년 설립된 준 정부기관이다.
이런 조직의 특성상 정 교수의 임명으로 그동안 의료계가 강력히 반대하며 총파업까지 불사하는 계기가 됐던 원격의료 도입과 의료법인의 영리자법인 설립 허용 등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치과의사협회, 보건의료노조 등 보건의료단체들은 정 교수가 진흥원장직에 지원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부터 크게 반발해왔다.
지난 2월 10일 의협과 치협은 “의료의 가치를 중심에 두기보다는 재벌과 자본의 이해를 대변해 온 정기택 교수가 진흥원장에 공모에 지원한 것은 매우 부적절한 일로 판단한다”며, 정 교수 본인이 자진 철회할 것을 권고했다.
보건의료노조도 “의료민영화론자이자 새누리당 의료민영화정책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는 정 교수가 진흥원장에 임명될 경우 의료민영화정책을 강력히 추진할 것”이라며 자진 철회를 촉구했다.
의료계는 정부의 이번 진흥원장 임명이 의료민영화정책 전면 추진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정부가 그동안 의료민영화를 반대한다고 해명해온 것 역시 이번 임명으로 인해 대국민사기극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렇잖아도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에 대한 불만이 한없이 높아져 의료계가 총파업까지 불사한 마당에 정부가 입맛에 맞는 대표적인 의료시장주의론자를 보건산업진흥원장직에 앉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고 만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송형곤 상근부회장 겸 대변인은 “현재처럼 복잡한 상황에 정부가 정 교수를 진흥원장에 임명한 것은 의료계와 전혀 대화할 의지가 없이 마음대로 가겠다는 것으로 보인다”며 강력한 유감의 뜻을 나타냈다.